노령묘 집사에게 최근 더해진 고민거리, ‘항문낭염’ 극복기
저보다는 우리 고양이가 고생이 많았죠. 처음 생긴 병 때문에 생전 처음 맞지도 않는 항생제를 먹고 토하고 그랬으니까요.
최근 우리동생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고양이 ‘다범이’(10) 보호자 정다희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범이가 앓은 질병은 항문낭염. 심각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질병이지만, 다희 씨와 다범이에게는 꽤나 스트레스가 됐었던 듯했습니다.
항문낭염은 고양이에게 잘 나타나지 않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다범이를 진료한 우리동생 김재윤 원장은 항문낭의 원리부터 설명했습니다. 개와 고양이 모두에게 있는 항문낭은 항문낭액을 보관하고 있는 저장소입니다. 항문낭액은 항문에서 대변이 원활하게 배출되도록 윤활제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고양이에게 항문낭염이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고양이와 개의 식성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개의 식성은 상대적으로 잡식성에 가까운 반면, 고양이는 육식동물입니다. 이런 이유로 고양이의 대변이 조금 더 단단한 편입니다. 김 원장은 “단단한 대변이 직장에서 항문으로 넘어가는 만큼 자연스럽게 항문낭이 압박을 받아 항문낭액이 잘 나온다”며 “개에 비해 고양이는 잡식화가 되지 않아 여전히 대변이 단단한 편이고 항문낭액이 잘 배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다범이가 항문낭염으로 고생을 한다는 게 다소 의아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다범이는 이번이 처음 걸린 항문낭염도 아니었습니다. 2021년에도 다범이는 항문낭염으로 한차례 고생을 했던 겁니다. 대체 왜 이렇게 다범이는 항문낭염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요? 사실 여기엔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김 원장은 “보호자의 관리가 잘못되었다는 방향으로 원인을 찾을 순 없다”며 “원인이 있다면 다범이 항문낭의 태생적인 구조가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김 원장이 치료를 위해 다범이의 항문낭을 짜냈을 때, 평범한 고양이에 비해 항문낭액 배출이 많은 편이었다고 하네요.
건강 체질이라 외려 몰랐던 다범이의 ‘은밀한 질병’
다범이가 다희 씨와 묘연을 맺은 건 11년 전인 2012년입니다. 처음 만날 때 다범이는 길고양이였는데, 다희 씨는 고양이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을 때였다고 합니다. 애정을 먼저 표현한 것은 다범이 쪽이었다는 게 다희 씨의 기억입니다.
그때 다범이는 굉장히 야윈 상태였었어요. 그런데 저를 자꾸 따라와서 처음에는 놀랐죠. 그래서 먹을 것도 찾아서 주고 그러니 더 따라오는 거예요.
그해 여름은 강력한 태풍 ‘볼라벤’의 상륙이 예고된 때였습니다. 당시 예보를 보던 다희 씨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작고 마른 아기 고양이였습니다. 아직 채 한 살이 되지 않았을 아깽이가 과연 강한 태풍을 견뎌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다희 씨는 그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다범이는 다희 씨의 반려묘가 되었습니다.
덜컥 결정한 입양이었지만, 다범이는 다희 씨의 속을 썩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족했던 영양이 채워진 덕인지 토실토실 살도 찌기 시작했고, 털도 풍부해졌습니다. 집에서 밥을 잘 먹고 지내면서 건강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다범이가 8세가 될 무렵 발병한 항문낭염 역시 약을 먹고는 곧 괜찮아졌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항문낭을 짜주고 처방받은 약을 1주일 간 먹이고 나니 곧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여전히 건강 체질이다, 하면서 가볍게 넘어갔었죠.
항문낭염 만큼이나 심각했던 ‘맞는 약 찾기’
그러나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항문낭염 증상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항문 부위가 붉게 부어오르고 조금씩 진물이 나오곤 했던 겁니다. 다행히 그 무렵 실시했던 건강검진을 통해 항문낭염이 재발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도 발견을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수의사 선생님이 항문낭을 짰을 때 검은색 덩어리도 함께 나온 걸 보여주면서 ‘좀만 더 방치됐으면 심각한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죠.
이번에도 약을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약에 있었습니다. 다범이가 약을 먹을 때마다 구토 증상을 보인 겁니다. 다희 씨는 “예전에는 간식에 섞어주면 잘 먹는 편이었는데, 이번에 사용한 약이 좀 쓴 편이었는지 간식조차도 거부했다”고 돌아봤습니다.
약을 먹이기 위해 다희 씨 가족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한 사람이 안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물이나 식용유를 묻혀서 목으로 미끄러지듯 알약을 넘기는 방법도 사용해 봤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다범이는 약을 먹고 난 지 1시간 이내에 모두 토해내곤 했습니다. 김 원장은 “처음에는 치료 반응이 보이지 않아 약을 교체했는데, 그 약으로 위장 장애가 생겼다”면서 “결국 다범이에게 맞는 약을 찾아주기 위해 항생제 감수성 검사까지 실시해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범이에게 맞는 항생제를 찾는 데 성공했고, 다범이는 다시 항문낭염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다만, 이제는 항문낭을 짜는 주기가 좀 짧아졌습니다. 앞으로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항문낭을 직접 짜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희 씨에게 고생이 많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제부터 다범이가 고생이죠. 영문도 모르고 계속 잡혀서…
최근 들어 고양이의 항문낭염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김 원장은 “명확하게 숫자로 말할 순 없지만 조금씩 항문낭염 증상을 보이는 고양이들은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원인을 노령화로 꼽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장 근육의 힘과 탄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대변을 밀어내는 힘이 떨어지면서 항문낭액이 축적되고, 곧 항문낭염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죠.
결국 이제 노령묘와 함께 사는 보호자들에게 항문낭염은 염두에 둬야 할 질병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항문낭의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다희 씨에게 묻자 그는 “그루밍 양상을 잘 보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특히 항문 쪽으로 그루밍을 시도하려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면 잘 살펴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이때 항문이 부어있거나 진물이 보인다면 지체하지 말고 동물병원을 찾아가라는 조언을 남겼습니다.
젊을 때 건강하던 다범이 덕분에 편한 반려생활을 했다는 다희 씨. 지금도 다범이는 1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의 바람도, ‘지금처럼’입니다.
다범이가 우리 가족들 몸을 타고 오르내리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우리도 우스갯소리로 ‘우리를 가구라고 생각하나 봐’라고 말하죠. 앞으로도 그렇게 좋은 가구가 돼 줄테니, 다범이도 건강하게 지금처럼 오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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