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에 가려진 ‘간호사당 환자수 법제화’···진짜 싸움 남아있어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껍데기 같은 법에 다들 왜 이리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합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 하면 ‘의사 편이냐’ 묻더군요. 저는 간호법에 가려진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안(간호인력인권법안)’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간호사가 너무 부족해 내 손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면 얼마나 구르고 싸워야 할까요.
[주간경향] 간호인력에 관한 사항을 의료법에서 떼 내 독자적으로 규정한 ‘간호법’이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보건의료계의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의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촉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5월 3일 ‘반차’를 쓰는 방식의 1차 부분파업을 벌인 데 이어 5월 11일에는 2차 부분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17일 총파업’도 거론 중이다.
간호법의 내용이 어떻기에 ‘간호사 대 나머지 직역’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걸까. 간호법은 간호사의 법적 활동영역에 ‘지역사회’를 추가하고 간호인력의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국가·지방자치단체 책무 등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긴 법이다. 지역사회라는 단어가 추가됐지만, 방문간호 등 ‘병원 밖 간호’을 활성화하기엔 내용이 추상적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감대가 형성된 ‘간호사 처우 개선’ 관련 조항은 2019년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과 유사한 데다 구체적 방안 없이 선언적 내용이라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한 마디로 간호법은 내용보다는 간호인력의 독립된 법이 존재한다는 ‘형식’이 더 중요한 법이다. 보건의료계는 알맹이 없는 형식을 두고 극한 대치 중인 셈이다.
간호법을 둘러싼 입장은 찬반으로 나뉜다. ‘간호협회(찬) vs 의사협회·간호조무사협회(반)’, ‘더불어민주당(찬) vs 국민의힘(반)’이라는 구도 속에서 ‘어느 편이냐’를 강요받게 된다.
주간경향은 간호법 찬반을 넘어 간호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소개한다. 간호사들의 혹독한 노동 현실을 핍진하게 담은 책 <밑바닥에서>(올해 2월 글항아리 출간)를 쓴 김수련 간호사는 간호법 논란을 바라보며 “알맹이 없는 법을 가지고도 대통령 거부권 얘기가 나오고 총파업 얘기까지 나오는데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법을 만들려면 얼마나 지옥같이 구르고 싸워야 할까 생각했다”고 한다.
김 간호사는 간호법 논란 속에 묻혀버린 간호인력인권법안(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안)을 얘기했다. 간호인력인권법안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10만명 동의’를 달성한 법안이다.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보건복지위에 상정됐지만, 보건복지위가 “입법 취지가 간호법 제정안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현재 청원심사소위에 계류된 상태다.
김 간호사는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법으로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법안”이라면서 “간호사가 너무 부족해 내 손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 하는 간호사들의 진짜 싸움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5월 2일 미국 뉴욕에 있는 김 간호사와 줌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7년간 일했던 김 간호사는 2021년 병원을 그만뒀다. 지금은 미국 적십자 재난의료팀 멤버로 뉴욕 시립병원 외과계 외상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다. 재난 현장의 파견 인력이 되기 위한 자격을 추가로 취득 후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제3세계에서 간호활동을 펼치는 것이 목표다.
-인력 부족 속에서 짓이겨지는 듯한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간호사들의 현실에 대해 썼습니다. 간호법은 간호사를 위한 최초의 단독 법률이고 처우 개선 관련한 조항도 담겼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간호법 통과 이후 의사, 간호조무사 등의 반발은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어떻게 보세요.
“사실 의아합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껍데기 같은 법에 각 협회가 왜 이렇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해요. 간호노동을 연구하는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본질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았다’고요. 그 말씀이 딱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언론에선 이렇게 되묻는다고 하더군요. ‘너 의사 편이지?’, ‘어느 편이세요’라고 묻는 이 상황에선 그냥 얘기를 안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소속된 ‘행동하는 간호사회’도 같은 이유로 간호법에 대한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간호인력인권법안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법에 입법 취지가 반영돼 있다는 이유로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간호법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간호인력인권법을 대체할 수 없어요. 둘은 다른 법입니다.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병동 특성, 병원 특성에 따라 상세하게 분류했고, 병동별로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간호사 최저 인원, 이런 기준을 어겼을 경우의 벌칙 조항(○년 이하의 징역, ○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담았어요. 이제까지 간호사 인력 기준을 어겼을 경우 벌칙이 들어간 법은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간호사의 수련환경과 관련한 국가·병원의 책무,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한 지방 중소병원 간호사들을 위한 지원책도 담았습니다. 간호법 논란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껴요. 알맹이 없는 법을 가지고도 대통령 거부권 얘기가 나오고 총파업 얘기까지 나오는데,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는 법을 만들려면 얼마나 지옥같이 구르고 싸워야 할까 싶어서요.”
김수련 간호사가 쓴 <밑바닥에서>는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헌신을 강요받는 간호사가 얼마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고발하듯 써 내려간 책이다. <밑바닥에서>가 그려낸 간호사들의 ‘극한 노동’은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도저히 끝마칠 수 없는 업무들을 등에 이고 환자, 보호자, 의사, 선배 간호사 등 누군가에게 늘 죄송해야만 했다. 특히 신규 간호사들은 신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벼랑 끝으로 떠밀릴 수밖에 없었다.
“벌을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밤 근무가 끝나면 동도 트지 않은 얼어붙은 거리를 헤매다가 인적 드문 곳에서 장갑을 벗고 내 뺨을 때렸다. …가끔 이불이 너무 포근하게 느껴지면 내가 그런 것을 느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 서랍들을 꺼내 침대 위로 올리고 그 빈 자리에 들어가 누웠다. 바닥에 누우면 마치 죽는 것처럼 편안했다. 나는 그때 인간도 영혼도 아닌 반쪽짜리 존재였다. …나는 빠져나갈 뒷문을 열어두듯 어떻게 죽을지 계획을 세웠다. …이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그 날들에 나는 누구보다 더 강바닥 같은 죽음에 가까이 가 있었다. 거기서 나를 건진 것은 내가 아니고 내 근성도 아니고 그저 운이다. 나는 내 밑바닥을 봤다.”
-<밑바닥에서>를 통해 간호사들의 처절한 현실을 전하면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사실은 이것보다 나을 수 있었다. 단순하다. …그냥 간호사를 조금 더 충원하면 된다. 그럴 수 있는 법을 만들 기회가 수십 번 있었다. 그걸 놓쳐서 지금 간호사의 절반은 일을 그만두고 나머지 절반은 반인반수가 된다.’ 현장의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가 대안으로 오래 얘기돼왔던 건가요.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즈음인 2018년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2019년엔 고 서지윤 간호사가, 2021년엔 을지대병원의 신규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사실 알려진 사례 말고도 많은 비극이 있었습니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는 수십 년간 일선 간호사들이 얘기해왔던 것이긴 한데요, 아마도 박선욱 간호사의 사건을 접하고부터 강력하게 얘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최전선’이었던 대구의 한 병원에 자원해 일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담은 SNS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책에선 이렇게 썼더라고요.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간호사가 너무 모자라서, 훈련돼 있지 않아서, 아무리 애써도, 매일 녹초가 되도록 진을 빼도 도무지 닿을 수가 없어서 속절없이 환자들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못했다는 것, 다른 환경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멈추기 위해 우리와 힘을 모아주시면 좋겠다.’ 숙련된 간호사의 부족으로 환자가 죽어간 사례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데요.
“제 경험에 한해 말씀을 드리면, 코로나19 초기 제가 파견됐던 대구 동산병원은 야전병원 같았어요. ‘간호사가 정말 없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게다가 코로나19 증상은 순식간에 진행됩니다. 폐가 살짝 안 좋아져 중환자실에 들어왔는데 다음날 투석을 해야 하고, 그다음 날 에크모(ECMO·심폐기능보조장치)를 달아야 하는 식이었죠. 그래서 중환자실 경력이 있는 간호사가 절실했는데, 파견 온 인력들은 요양병원에서 일했거나 오래 일을 쉬어서 그런 경험이 부족했어요. ‘빅5’라 불리는 서울의 큰 병원들조차 자기 병원을 돌리는 간호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소수만 파견했거든요. 간호사가 더 있었더라면, 특히 중환자실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더 있었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 죽음들이 있었습니다. 죽을 듯이 온힘을 다해 쥐어짜서 일한 간호사 개인들에게 죽음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1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의 사망률은 7% 증가한다. 1명 더 늘면 14%, 거기서 1명 더 늘면 31% 증가한다(2008년, 환자 사망률과 간호 인력에 관한 병원 치료 환경 연구, 린다 에이큰 등). 김수련 간호사는 <밑바닥에서>를 이 통계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퍼센티지가 사람 목숨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4월 25일 간호인력 확충 대책을 내놨습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간호대 정원을 늘리고 간호등급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해 계속해온 건데요, 지금 간호사 면허자의 절반은 ‘유휴 인력’입니다. 배출 인력을 늘려도 병원 밖으로 다시 빠져나가면 의미가 없어요. 간호관리료 차등제(간호등급제)는 병동에 간호사를 많이 배치하면 인센티브(수가 차등)를 주는 제도인데 이런 보상을 아예 포기한 의료기관은 어떡할 건가요. 간호등급제로는 보상만 있을 뿐 제재가 없어요. 간호사 1인당 환자 5명은 지향점일 뿐이고요. 정부 대책엔 강제력이 없습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공론화된 이후 유사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에서 ‘태움’ 대책을 여러 번 내놨습니다. 주로 간호등급제 강화를 통한 개선이었습니다. 2019년에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인력 종합대책을 세우도록 하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도 제정됐지요. 그동안 마련된 정책들의 효과는 없었나요.
“그런 것들은 처벌조항과 구체적인 방도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현장의 업무강도가 경감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어요.”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의 태움은 심각한 인력 부족 때문에 생겨난 악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왜 태움이 간호사의 ‘문화’로 다뤄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셨더라고요.
“범인은 항상 병원이었어요. 그런데 가해자는 직접 괴롭힘을 가한 선배 간호사들의 ‘얼굴들’로만 특정됐습니다. ‘태움 문화’로 불리는 동안 고용주의 역할이 쏙 빠져나가는 현실이 절망스러웠습니다. 정부에서도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강력히 밀어붙이기 어려운 사정이 있긴 할 겁니다. 우리나라의 병원 95%가 사립이에요. ‘공공 반 사립 반’이면 게임이 될 수 있겠지만 자칫 사립병원들이 들고일어났다간 의료 대란이 오겠죠. 그래서 공공병원의 확충도 꼭 필요합니다.”
-현재 미국 적십자 재난의료팀 소속으로 뉴욕의 공공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곳의 인력 배치는 어떤가요.
“주 3일 12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제가 원하는 날짜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근무표가 짜여야 하고요. 만약 인력이 부족하면 병원에선 에이전시 소속의 비정규직 간호사를 써서 환자·간호사 비율을 맞춥니다. 비정규직 간호사의 임금은 우리의 두 배입니다. 이곳에선 중증 환자 1명을 간호사 1~2명이 돌봐요. 한국의 중환자실이었다면 이런 중증도의 환자 2~3명을 간호사 1명이 봤을 겁니다.”
중증 환자의 경우 한국의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대략 미국의 3배 안팎 된다는 설명이다. 2016년의 간호행정학회 연구에 따르면 일반병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도 한국 상급종합병원의 간호사 1인당 환자수(16.3명)는 미국(5.3명), 일본(7명), 영국(8.6명), 독일(13명)의 2~3배가량 된다. 간호인력인권법안은 병동 특성별 인력배치기준을 설정했는데, 일반병동은 병원 규모와 관계없이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12인으로 하도록 했다. 또한 근무조별 최소인원(2~3명) 기준도 별도로 명시했다.
-간호법을 둘러싼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을까요.
“실은 간호협회 편을 들어달라고 할 수도 없어요. 공허할 뿐인 껍데기 간호법에 대해 저조차 기대가 없는데 시민들께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간호사가 너무 부족해 내 손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 하는 일선 간호사들의 진짜 싸움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간호법 논란이 지나가면, 간호인력인권법이 논의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간호사회’ 등이 노력할 겁니다. 내년 5월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폐기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제3세계에 파견되는 것이 목표지만 저도 몸이 어디에 있든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일선 간호사들은 밥그릇이고 뭐고 그냥 환자가 죽어나가는 현실을 바꾸고 싶을 뿐입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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