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울스의 ‘요즘 가곡’…“올드하지 않은 팝으로의 변주” [인터뷰]

2023. 5. 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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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밴드와 만난 한국가곡
M 한국가곡 시리즈 ‘모던가곡’
“생전 처음 듣는 한국가곡들…
지금 음악과는 다른 구성 생소”
원곡 해치지 않고 팝처럼 편곡
인디밴드 더 보울스가 마포문화재단의 M 한국가곡 시리즈 ‘모던가곡’의 첫 주자로 나서 요즘 가곡을 들려준다. “현재 인디신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밴드”이자, “어느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밴드”라는 점이 한국가곡을 변주한 첫 주자로 낙점된 이유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곡과는 생전 ‘초면’이었다. “가곡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장르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박준성) 94년생 맏형부터 96년생 막내까지. 굳이 구분하자면, 완전한 MZ세대로 구성된 인디밴드 더 보울스(서건호 (기타, 보컬), 박준성 (기타), 윤현섭 (베이스, 트럼펫), 이학수 (드럼), 임성현 (건반)). “‘그리운 금강산’이 교과서에 실렸던 것은 같은데, 수행평가 때 해본 적은 없었다”(임성현)고 돌아봤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는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 ‘검정 고무신’에 나온 푸시킨의 시로만 알았다고 한다.

‘한 때’ 가곡은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1970~80년대 TV만 틀면 가곡 뮤직비디오가 나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 자리를 대중음악이 차지한 뒤, 가곡은 음악 교과서 안에 ‘유물’처럼 자리하게 됐다.

‘의외의 만남’이다. 짧고 찬란했던 ‘전성기’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디밴드와 가곡이 만났다. 2018년부터 마포문화재단이 이어온 한국가곡 기획공연 시리즈를 통해서다. ‘제2의 한국가곡 르네상스’를 꿈꾸며 시작한 기획이다. 이번엔 M 한국가곡 시리즈 ‘모던가곡’(5월 10일, 마포아트센터)을 통해 우리 가곡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더 보울스는 오는 11월 7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이어지는 ‘모던 가곡’ 시리즈의 첫 주자다. “현재 인디신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밴드”이자, “어느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밴드”라는 점이 한국가곡을 변주할 첫 주자로 낙점된 이유다.

최근 서울마포음악창작소에서 만난 더 보울스 멤버들은 몇 번이고 ‘처음’을 언급하면서도, “젊어진 가곡을 통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인디밴드 더 보울스가 12개의 한국가곡을 편곡, 요즘 팝 스타일의 음악으로 들려준다. 마포문화재단의 M 한국가곡 시리즈 ‘모던가곡’ 공연을 통해서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 한국가곡과 MZ 밴드의 첫 만남…“목표는 올드하지 않은 요즘 노래”

더 보울스에게 주어진 과제가 많았다. 정규앨범 한 장을 꽉 채울 숫자의 가곡이 숙제처럼 던져졌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첫사랑’, ‘서시’, ‘봄처녀’ 등 총 12곡을 편곡해 ‘모던가곡’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박준성은 “세트 리스트를 받았는데, 모두 다 처음 듣는 곡이었다”고 말했다.

가곡과 친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노랫말과 선율은 리듬과 비트로 점철된 ‘요즘 음악’ 속에 살던 20대 모던록 밴드의 마음을 금세 훔쳤다. 노랫말이 된 시(詩)도 술술 외웠다. 멤버들은 “요즘 음악은 선율이 약해지는 느낌이 있는데, 가곡은 선율이 살아나 노래 자체가 좋았다”고 말했다.

“가곡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과 완전히 다른 형식이라 어렵고 생소한 점들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박자와 구성이 현대 음악과는 달라 겁을 먹기도 했는데, 계속 들으며 편곡을 하다 보니 멜로디와 가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됐어요.” (박준성. 임성현)

‘모던가곡’으로의 편곡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온전한 ‘감상’이었다. 서건호는 “다 같이 모여 100번씩 들어본 뒤, 채보의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각자의 악기를 들고 편곡 작업을 이어갔다.

가장 중요하게 염두한 점은 “올드하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목표는 “요즘 노래, 요즘 팝처럼 만드는 것”에 뒀다. ‘요즘 가곡’으로의 변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가곡이 가진 선입견 때문이다. 20대를 대변하는 세대이기도 한 더 보울스 멤버들은 “사실 가곡은 재미없을 거란 생각에 들으려고 시도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저희 세대에게 가곡이 생소한 이유는 정해진 박자 위에 1절, 후렴, 2절이 등장하는 정형화된 요즘 음악 스타일을 벗어난다는 데에 있어요. 특히 노랫말인 시에 맞춰 악기와 보컬이 따라가니 들어본 적 없는 구성인 거죠. 물리적으로도 옛날 음원, 옛날 음질의 곡이어서 연도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요.” (임성현)

“과거의 오페라가 현대의 뮤지컬이라면, 가곡은 요즘 대중음악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페라가 가곡이라면, 뮤지컬은 가요 같은 거죠. 다소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오페라와 가곡의 내용을 풀어 특별한 연출을 가미한 것이 뮤지컬이고 가요인 거예요. 가곡에 우리만의 연출(편곡) 포인트를 만들다 보니, 달리 들리더라고요.” (서건호)

더 보울스만의 ‘편곡 포인트’는 “구성은 팝과 가요처럼 만들되”, 음악 안에 ‘한 방’이 될 만한 “킥을 담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중음악과 달리 가곡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선율의 특성상 음악 안에 ‘킥’(포인트)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서건호는 “요즘 코드 워크를 활용해 오묘한 느낌을 낸다거나, 신나는 느낌을 내기 위해 과감하게 어려운 코드를 빼거나 반대로 더 어렵게 넣는 방식으로 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편곡 버전에 더 어울리는 멜로디로 수정한 곡도 많다.

그러면서도 ‘가곡의 본질’을 지켰다. 윤현섭은 “가곡은 선율적인 음악”라며 “멤버들 모두가 가장 좋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율은 그대로 둬서 원곡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달라진 부분과 변하지 않는 부분은 찾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듣기 편하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 원곡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편곡했어요. 이번 작업을 통해 원곡이 좋으면, 뭘 해도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됐어요. 그게 한국 가곡의 힘이기도 하고요.” (이학수, 서건호)

인디밴드 더 보울스가 마포문화재단의 M 한국가곡 시리즈 ‘모던가곡’의 첫 주자로 나서 요즘 가곡을 들려준다. “현재 인디신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밴드”이자, “어느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밴드”라는 점이 한국가곡을 변주한 첫 주자로 낙점된 이유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 다양한 장르 입은 모던가곡…“작업만으로 힐링의 시간”

12곡의 모던가곡은 다양한 장르를 입었다. 록발라드(‘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부터 포크(‘저 구름 흘러가는 곳’), 모타운(‘첫사랑’), 사이키델릭 록(‘고향의 노래’, ‘명태’, ‘봄처녀’)은 물론 포크와 블루스가 접목된 ‘풀향기 가득한 그곳에’도 있다. ‘우리 이제 설레도’는 멤버들이 꼽은 “더 보울스 스타일에 찰떡같이 맞는 편곡의 가곡”(박준선)으로 태어났다. “순도 100%의 모던록”(서건호)으로 반복된 코드와 연주 스타일로 더 보울스의 색을 담았다.

밴드가 편곡한 가곡 ‘명태’는 ‘파격’의 묘미를 살렸다. 1952년 등장 당시에도 ‘파격적인 가곡’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온 곡이다. 임성현은 “‘명태’는 선율 위주의 가곡이라기 보단, 랩을 하거나 웅변을 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며 “당시에도 파격으로 받아들인 부분을 일렉트로닉 기타로 표현해 그것 자체로 신선한 파격이 될 것”이라고 봤다. 서건호는 ‘풀향기 가득한 그 곳에’를 “20대가 가장 좋아할 가곡”으로 꼽았다. “다른 곡과 달리 멜로디의 수정 없이, 가사와 코드만 나열하고 붙였는 데도 요즘 노래처럼 완성된 곡”이다.

더 보울스의 음악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곡도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여름밤의 추억’은 록발라드로 완성됐다. 서건호는 “듣기 좋게 만들고 싶어 록발라드를 선택했는데, 아마도 더 보울스가 록발라드를 연주하는 것은 모던가곡 말고는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열두 개의 가곡들은 남녀 보컬(리엘, 연경이)을 통해 불린다.

모던가곡 작업은 더 보울스에겐 ‘힐링의 시간’이었다. 서건호는 “우리 노래를 만들 때는 후렴 등 꽂히는 부분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고생을 많이 하는데, 가곡은 고정된 상태에서 형태만 바꾸는 작업이다 보니 즐겁게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자연을 노래하고, 그리움을 담아낸 아름다운 시어는 그것 자체로 위로와 치유였다.

인디밴드 더 보울스. [마포문화재단 제공]

■ 지금 오늘의 밴드…“가곡과도 닮은 우리 음악”

더 보울스는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 20대 밴드 음악의 오늘을 보여준다. 중학교 밴드부 선후배가 모여 음악활동을 해오다 2015년 데뷔, 2020,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 록 음반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밴드신에서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 밴드 타히티80의 베이시스트 페드로 르상드와 보컬 지비에르 부와예르가 프로듀싱을 맡은 ‘블래스트 프롬 더 패스트(Blast From The Past)’(2022)는 더 보울스의 변곡점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타히티80과 더 보울스의 인연은 독특하다. 생계형 밴드인 더 보울스 멤버들은 N잡러다. 멤버 박준성 서건호는 음악 활동을 하며, 해외 밴드 내한공연과 록페스티벌의 무대감독은 물론 아티스트 관리를 겸해 왔다. 그 중 한 팀이 타히티80이었다. “2019년 크리스마스 전날” 산타클로스처럼 “타히티80이 우리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이 이들 여정의 시작이다. 타히티80과의 만남을 통해 더 보울스가 추구하던 ‘웰메이드 팝’에도 한 발 더 다가서게 됐다.

“타히티80과 만나며, 원래 하던 스타일에서도 많이 달라졌어요. 한 곡에서 구조를 잘 만드는 것의 중요함을 생각하게 됐고, 연주도 기타 솔로는 짧고 키치하게 할 때의 장점을 알게 됐어요. 요즘 스타일의 음악과 스탠다드 팝의 정수에 다가서는 것도 배우게 됐고요.” (박준성, 서건호)

더 보울스의 음악은 아름다운 한 시절을 찬미하듯 1970~80년대 록의 르네상스를 구현하면서도 보사노바와 신스팝 등의 다양한 장르를 오간다. 서정성 짙은 음악 위엔 “다 잘 될거야”라는 메시지의 노랫말이 녹아난다.

흥미롭게도 멤버들은 이번 ‘모던가곡’ 작업을 하며 더 보울스의 음악이 가곡의 형태와도 멀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서건호는 “저희 노래는 요즘 음악과 달리 후렴이 없고, 스윽 흘러가는 가사로 끝나는 구성이 많은 점이 가곡과 비슷하다”며 “가곡도 시 한 편으로 끝난 뒤, 반복할 것은 반복하고 나머지 부분은 연주로 이뤄져 있어 우리가 하는 음악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더 보울스의 손을 탄 12곡의 가곡은 이들의 정체성과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서건호는 “모던가곡으로 편곡을 하면서도 우리의 색이 많이 담겼다”고 했다. 더 보울스가 음악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소스를 ‘모던가곡’에도 반영했기 때문이다. 가곡이라고는 하나, 힌트를 주지 않으면 가곡이라 생각하지 못할 만큼 새로운 음악이 태어났다.

“저희 부모님이 대부분 1960년대 중후반~1970년대 초반생이에요. 그런데 푸시킨의 시는 알지만, 가곡은 잘 모른다고 하시더라고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랫말은 살리고,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으니 가곡을 원래 알던 중장년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를 아우르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사실 그렇다고, 20대에게 100% 통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가곡의 원곡을 찾아서 들어볼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서건호, 임성현)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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