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케어가 만들 의료 디스토피아[할 말 있습니다](30)

2023. 5. 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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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문을 닫은 후에도 닥터나우 배달기사가 픽업할 수 있도록 문고리에 약을 걸어놓았다. / 약준모 제공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사절단에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가 참석했다. 비대면 진료의 형식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현지 헬스케어기업과 비교해 특별한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도 없는 스타트업 대표의 동참을 보면서 의아스러웠다. 기술 수출이나 해외 진출 등에 특별한 장점을 가진 회사라고 보기도 어렵다. ‘방미’ 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닥터나우를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총애는 긴 역사가 있다. 둘이 밀접한 친분을 과시하던 대선 후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대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다. 최근 비대면 진료 관련 보건복지부 장·차관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국가를 대표하는 보건복지부의 공무원인지 닥터나우의 직원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일방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충분히 숙고하고 추진해도 될까 말까 한 사안이다. 사설 업체들 살리겠다고 무리한 시범사업까지 벌이려는 정부의 행태는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약 배달 앱을 통해 주문받은 약을 배달기사가 한 아파트 가구 문고리에 걸어놓고 있다. / 약준모 제공



닥터나우와 윤 대통령의 친분

이들은 항상 의료취약계층 보호 및 국민의 건강권을 명분으로 내걸고 비대면 진료를 밀어붙인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지방의 공공병원을 폐쇄하고, 건보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장성을 축소하는 이력을 가진 집권당과 정부가 진심으로 일반 국민의 건강을 걱정해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이렇게 일방적인 지원을 퍼붓고 있는 것일까. 신기술이란 미명하에 온갖 미사여구를 들이대고 있지만 일관성도 없고, 과연 그들의 의도가 순수한 것인지도 다분히 의문스럽다.

현재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 관련 이슈의 핵심은 이전부터 특정 정치집단에서 추진해온 ‘의료 민영화’란 단어의 또 다른 버전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란 그럴싸한 이름을 벗겨내면 노골적인 속내가 드러난다. ‘전화 진료’와 ‘약 배달 중개’를 앞세운 사설 업체들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사설 플랫폼이 창궐하면 의료취약자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각종 사설 플랫폼들이 만들어 내는 문제는 이미 한국사회를 강하게 병들게 하고 있다. 각종 배달 음식들의 가격 인플레 근간에 ‘배달 플랫폼’이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숙박 중개 앱’들의 만행에 신음하는 수많은 숙박업자의 고통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반 택배물품과 똑같이 취급되는 약 택배상자들 / 약준모 제공



한국의 비대면 진료 관련 사설 업체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법적 미비를 틈타 커피 쿠폰 등을 미끼로 가입자 수를 늘린다든가, 이로 인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불필요한 진료를 하도록 부추길 게 뻔하다. 기존 보건 의료 체계를 유지해온 구성원들은 영리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전문가라는 집단 특유의 지성과 양심으로 이런 행위를 암묵적으로 금기시해왔다. 의료 분야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다. 한번 둑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의료 민영화 찬성론자들은 한국의 보건 의료 체계를 지탱해온 다양한 법적·윤리적 규칙과 규제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다른 분야의 기존 사업자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은 또 어떡할 것인가.

몇 가지 사례를 되짚어 보자. 약사들의 문제 제기로 정부가 2021년 말 금지하기 전까지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제대로 된 본인 확인도 없이 무분별하게 처방 및 배송됐다.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금지된 전문의약품 광고를 글자 하나만 바꾸는 식의 편법을 동원해 제약업체 등은 수익을 도모했다. 또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의사의 제대로 된 진료 없이도 일반인들이 구매 가능한 특정 의약품을 정부가 지정하는 행위도 비일비재했다. 이는 일반인들의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영리’에 대한 고민은 있을지언정 ‘건강’ 존중과 ‘생명’ 중시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귀중한 곳에 쓰여야 할 국민건강보험이 의사들의 이러한 편법 진료를 유도하고, 때로는 ‘일정비율 가산’이라는 특혜까지 제공하며, 이들의 배를 불렸다. 지난 몇년간 이들의 행적은 한국사회의 의료에 영리의 목적이 강하게 담기면 어떠한 만행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증명한 단적인 사례였다.

대부분 단순 ‘전화 처방·약 배달’

특히 신산업이라고 강조하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몇년 사이에 순식간에 수십 개 업체가 난립할 정도로 기술적인 깊이가 매우 얕다. 일반 국민이 흔히 생각하듯 첨단 웨어러블 의료기기를 통해 진료하고, 인공지능(AI) 등의 도움을 받아 화상을 통해 깊이 있는 진료를 하며, 충실한 환자 정보 관리를 거쳐 정확하게 만들어진 약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집 앞에 배송되는 게 아니다. 이는 ‘원격 및 비대면 진료’의 환상일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활개 치고 있는 비대면 진료의 대부분은 단순한 ‘전화 처방 및 약 배달의 중개’에 집중되고 있다. 박리다매라는 한국 의료시스템의 허점이 제대로 된 준비 과정 없이 시작된 비대면 진료라고 다를 리가 없다.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수익 구조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엔 음식 배달 플랫폼이나 숙박 플랫폼과 같이 서비스의 제공자를 착취하거나, 아니면 다른 영리기업에 국민 개개인의 건강 정보를 팔아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하는 방법밖에 없는 셈이다.

전문의약품들이 무심하게 문고리에 걸려 있다. 약 배달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중복처방, 과다처방 우려가 제기된다. / 약준모 제공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2월 이러한 수수료부분에 대한 보건의료 단체의 우려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그에 대한 비용을 건강보험수가로 보전해 주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우려해 ‘문재인 케어’를 축소하겠다는 현 정권의 보건복지부 차관이 했다는 발언이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든 내용이었다. 결국 국민건강보험을 사설 업체의 이익에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이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붕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돈에 눈이 멀어 사설 업체와 결탁한 일부 보건의료인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들을 비롯한 의료시설 이용자들한테도 사설 영리 플랫폼의 강화는 의료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심화시킨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은행 오프라인 점포의 폐점, 그리고 택시 앱과 키오스크 확산에 따른 노령층의 이용 불편 심화와 같은 문제점이 한국 보건의료 체계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비대면 진료 앱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이 시행한 설문조사와 최근 보건복지부의 비대면 진료 관련 통계를 종합해 보면, 비대면 앱을 이용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60대 이상 환자는 약 2%뿐이었다. 전체 비대면 진료 이용자 중에서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40%에 이르는 점으로 볼 때,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노령층 대부분이 병원에 직접 전화해 진료하는 형태를 선택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즉 사설 앱이 실제 고령층의 비대면 진료에 끼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했던 셈이다.

2022년 5월 22일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약준모 전국약사 대정부 투쟁집회. / 약준모 제공



지역 의료 불평등 더 커져

지역적인 측면에서도 의료 불평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보다 훨씬 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쉬운 쿠팡과 같은 일반적인 상품 중개 플랫폼에서도 수년이 지나도록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대부분 새벽 배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로 미뤄, 결국 실제 의료취약자들은 비대면으로 진료를 빨리 받더라도 그 치료에 필요한 약과 같은 수단들은 원하는 시기에 제공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2019년 ‘온라인 거래의 증가가 지역 소매 상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보면 특정 상품의 온라인 거래액이 증가할 경우 수도권과 비교해 지역의 소매점포 감소율이 훨씬 더 크다고 한다. 따라서 비대면 진료로 인한 무분별한 온라인 진료의 강화는 비수도권 및 도서·산간 지역의 오프라인 보건의료기관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소멸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미 지역 응급의료 체계의 붕괴가 한국사회의 큰 문제로 다가온 상태다. 지금처럼 무책임한 형태의 사설 앱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진다면 지역의 1차 보건의료기관들은 무너진다. 의료취약자들에겐 큰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미 플랫폼 업체를 통한 약 배달이 보편화돼 있다. 비대면 진료 및 약 배달 시 병원 및 약국에 환자들은 더 낮은 비용을 지불한다. 이런 이유로 병원과 환자들은 사설 보험사에 의해 비대면 진료를 사실상 강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NBC는 특집 르포 프로그램(2020년 12월 8일)에서 “동네 약국에서 약을 직접 받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한 노인의 절규를 소개했다. 이 말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

윤석열 정부의 ‘사설 업체에 의한 전화 진료-약 배달 활성화’ 정책은 결국 수십년간 많은 국민이 우려했던 ‘의료 민영화’란 단어가 초래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앞당긴다. 그 시작은 비대면 진료 업체의 수익을 위한 건강보험재정의 무분별한 탕진이 될 것이다.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된 미국은 그나마 비용이라도 저렴하지만, 한국은 의사단체들이 비대면 진료의 수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어 대면 진료에 비해 비용도 저렴하지 않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이는 건보재정의 고갈로 이어지고 만다. 국민건강보험의 무력화는 사회구성원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결국 사회적 약자의 생존 자체가 위험에 빠지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박현진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회장·약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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