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향한 인종차별, 토트넘-팰리스-시민사회의 한목소리 "관용 無, 가장 강력한 조치로 대응"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에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건은 지난 6일(한국시각) 토트넘과 크리스탈 팰리스의 2022~202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가 펼쳐진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벌어졌다. 경기는 토트넘이 해리 케인의 결승골을 앞세워 1대0으로 승리했다. 지난달 8일 브라이턴전(2대1 승) 이후 한 달여 만에 승리를 더한 토트넘(17승6무12패·승점 57)은 6위로 올라섰다. 유럽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는 4위 맨유(승점 63)와의 승점차도 6으로 좁혔다. 하지만 맨유가 토트넘 보다 두 경기를 덜 치른만큼, 역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날 4-4-2의 왼쪽 날개로 선발 출전해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 받았던 손흥민은 후반 44분 아르나우트 단주마와 교체됐다.
손흥민은 시간지연을 막기 위한 주심의 지시에 따라 벤치 반대편에서 관중석을 지나 걸어나왔다. 하필이면 손흥민은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석' 앞을 지나야 했다. 홈 팬들의 '나이스원, 쏘니!' 응원가와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패배 직전의 분노한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의 적대적 행위가 이어졌다. '토트넘의 에이스' 손흥민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그 중 일부 극렬 서포터들은 인종차별을 했다. 눈에 손을 가져가며 눈을 찢는 제스처를 했다. 동양인을 비하하는 대표적 행위다. 몇몇 팬들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폭력적 제스처까지 했다. 명백한 인종차별적 행위였다.
손흥민은 고개 숙이거나 외면하지 않고 이들을 직시했다. 말없이 끝까지 이들의 행위를 응시하는 모습으로 용감함으로 맞섰다. 매번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인종차별에 어이없다는 듯 실소하는 듯한 모습도 잡혔다. 경기 종료 후 손흥민이 구단 안전 관련 관계자를 불러 귀엣말로 뭔가를 알리는 듯한 모습도 함께 포착됐다. 이 장면은 경기 후 팬들의 직캠과 중계화면 캡처 등을 통해 유튜브, 소셜미디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부 팬들은 직접 찍은 영상을 SNS 태그 등으로 구단에 제보하는 열성을 보였다.
토트넘은 곧바로 화답했다. 강경 대응에 나섰다. 토트넘은 7일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토트넘 구단은 손흥민이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차별은 혐오스러운 것이다. 차별은 우리의 사회, 경기, 구단에서 용납할 수 없다"며 "토트넘 구단은 경찰, 팰리스 구단과 협력해 수사하고 있으며 개인 신원을 확인 중이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올 시즌 초 손흥민이 첼시전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던 사례처럼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상대팀은 크리스탈 팰리스 역시 구단 채널을 통해 공식 성명을 냈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우리 구단은 어제 토트넘 스퍼스 원정에서 있었던 온라인상에 돌고 있는, 손흥민 선수에 대한 인종차별적 제스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우리 구단에 바로 보고 됐음.) 증거물은 경찰과 공유됐으며 인종차별 행위를 한 사람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구단 차원의 징계가 내려질 것이다. 우리 구단은 그런 행동에 대해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시민사회도 목소리를 높였다. 디어슬레틱에 따르면 축구인권단체 킥 잇 아웃은 '손흥민이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끔찍함을 느꼈다. 그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며 '선수의 행복은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 축구 관계자들이 선수들이 경기장을 떠날때 관중석과 가까운 쪽으로 가는게 선수들에게 인종차별적 행동에 노출될 수 있는지, 특히 경기 중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더욱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구단과 경찰이 이번 사건에 신속히 대응한 것을 칭찬한다. 또 가해자들은 클럽 출입 금지형을 받아야 한다는 팰리스의 입장을 공유한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이 인종차별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리그에서 많지 않은 동양인 선수, 그것도 리그 100호골을 터뜨린 토트넘의 절대적인 에이스인만큼, 몰지각한 상대 서포터스의 집중 표적이 됐다. 지난해 8월 15일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열린 첼시-토트넘전 도중 한 첼시 팬이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 제스처를 취했다. 코너킥을 차기 위해 플래그로 걸어가는 손흥민을 바라보며 눈을 옆으로 찢었다. 트위터 등 SNS에 사진이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첼시 구단은 해당 남성 팬을 영구 출입 금지를 시켰고, 최근 런던치안법원을 통해 벌금 726파운드(약 113만원)와 함께 3년간 축구장 입장금지 처분을 받았다.
웨스트햄 팬들과는 악연이 많다. 2018년 10월 손흥민에게 "불법복제 DVD를 파는가"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웨스트햄 팬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고, 지난 2월에는 웨스트햄을 상대로 5호골을 넣고 난 후 한 팬이 SNS를 통해 인종차별적 댓글을 올렸다. 이 댓글에 대한 파장이 커지며, 영국축구협회와 토트넘 구단이 공식 성명을 내며 규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일 리버풀전에선 '스카이스포츠 해설가' 마틴 테일러가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남겼다. 코디 각포를 수비하는 모습을 보고 "마셜아트(무술)을 하고 있다"고 조롱했다. 무술은 동양인 관련 비하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다. 인종차별 논란이 이어졌고, 스카이스포츠 측이 엄중 경고하고 나섰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토트넘의 홈구장에서 또 다시 인종차별이 나왔다.
손흥민은 과거 인종차별에 대한 인터뷰에서 "영국에서 내가 인종차별을 당한 사실을 모두가 안다. 인종차별에 대해선 따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축구를 한다. 어떤 나라, 어떤 인종인지는 중요치 않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손흥민은 의연한 대처로 인종차별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여론 역시 손흥민의 편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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