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마이 킹” 시위 속 대관식…2.2㎏ 순금보다 무거운 ‘왕관의 미래’
영국 국왕 찰스 3세(74)의 대관식이 6일(현지시각)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날 행사를 통해 영국 왕실은 자신들의 빛나는 전통과 영연방의 단결을 과시했지만, 군주제를 둘러싼 사회 내의 이견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이날 대관식은 오전 10시20분 찰스 국왕과 커밀라 왕비(75)가 버킹엄궁을 나와 군 의장대 1천명의 호위 속에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는 행진으로 시작됐다. 사원으로 가는 2.3㎞의 길을 종교계·영연방 지도자들이 앞장섰다. 길가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을 흔드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70년 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때는 129개국에서 8천여명이 참석했고 행진 거리도 8㎞로 길었다. 이날 행사엔 세계 200여 나라·지역에서 2200명이 참석했다.
행렬이 사원에 도착하자 오전 11시께 대관식 본행사가 시작됐다. 찰스 국왕은 행사를 시작하는 기도에서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려고 여기에 왔다”며 “모든 신념과 믿음을 가진 모든 이를 위한 축복”을 기원했다. 영국 국왕이 대관식에서 영국 국교회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와 축복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보여주듯 무슬림·유대교도·시크교도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가 이날 의식에 참여했다. 특히 힌두교도인 리시 수낵 총리가 기독교 성경의 한 구절을 읽었다. 평범한 지역의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각국 지도자들과 나란히 자리를 함께했다. 영국 <비비시>(BBC)는 “왕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시대를 반영하는 요소를 섞은 21세기의 대관식이었다”는 평을 남겼다.
이날 대관식의 절정은 헨델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국 국교회 최고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찰스 국왕에게 성유를 붓고 ‘성 에드워드 왕관’을 씌우는 대관 의식이었다. 성유 의식은 ‘신과 국왕 사이의 약속’이어서 장막에 가린 채 진행됐다. 성유를 바른 국왕이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나자 대주교가 왕관을 씌웠다. 참석한 하객들은 “법에 따라, 폐하와 상속자 및 계승자들에게 진정한 충성을 하느님에게 맹세한다. 국왕이여, 영원하라”고 외쳤다.
이슬비가 내리는 영국 특유의 날씨 속에서 국왕 부부가 오후 1시께 별도의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돌아가는 행진을 시작했다. 버킹엄궁 앞 도로 ‘더 몰’에 모습을 드러내자 새벽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시민들은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라는 찬송 구호를 외쳤다. 국왕 부부와 왕가 일족은 오후 2시15분께 궁의 발코니로 나가 대중의 환호에 답하며 이날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날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영국 왕실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찰스 국왕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엘리자베스 2세(1926~2022)의 존재감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4월 말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인의 24%만이 대관식 행사에 관심을 보였다. 영국이 100년 뒤에도 군주제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응답한 이가 45%에 머물렀다. 영연방 국가들로 가면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캐나다 여론조사 기관 앵거스 리드의 4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캐나다인들의 60%가 찰스 3세를 국왕으로 인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인 ‘리퍼블릭’ 회원 50여명은 이날 반대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이 소식이 퍼지자 트래펄가 광장에 모인 시위자 중 한명인 찰리 윌리스는 “역겹다. 국민이 굶주림과 빈곤으로 죽어가는데 머리에 왕관을 쓰는 이런 거창한 행사가 무슨 의미인가?”라고 비난했다. 영국 서민들은 지난해부터 1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름하고 있다. 영국 왕실은 이날 행사에 1억2500만달러(약 1658억원)를 지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시엔비시>(CNBC)가 보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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