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전세사기' 사태와 한국 정부 행정의 변화
최근 주택가격 하락에 뒤따른 역전세와 전세사기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한국행정의 긍정적인 변화 양상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어 주목을 끈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전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온전하게 돌려 받지 못하는 일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고 그 책임은 오롯이 세입자 개인의 몫이었으나, 이번 사태에서는 정부가 역전세난으로 전세보증금 확보와 주거권에서 어려움을 겪는 세입자들의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하하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는 일이다.
전임 정부 시절 주택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집 없는 다수 사람들은 내집마련의 꿈이 점점 멀어지는 좌절감을 맞본 한편, 어떤 이들은 이것을 소위 갭투자의 기회로 보고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후자의 부류 중 아주 특이한 사람들은 아파트나 빌라 등을 수백 채 또는 수천 채까지 사들였는데, 이들이 소위 빌라왕, 건축왕 같은 사람들이다. 언론매체에 연일 오르내리는 역전세의 비극적 사태를 대량으로 야기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주택가격 하락 상황에서 수많은 임차인들에게 전세보증금을 정상적으로 반환하지 못하고 대출금 또는 세금체납으로 인해 임차인 거주주택이 경매나 공매에 처해지도록 만들었다.
세입자가 임대인의 협조 없이 전세보증금을 회수하는 법적인 방법이 해당 주택을 경매 처분하고 여기서 전세보증금을 배당받는 것이지만, 이때도 세입자가 전세주택에 대한 법적 권리나 요건을 미충족한 경우, 임대인의 대규모 조세미납 등의 상황에서는 세입자가 낙찰대금에서 전세보증금을 충분히 배당받지 못하고 주거권도 박탈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국행정이 고통받는 국민들을 적극 돕는 인본주의적 면모를 드러낸 것은, 바로 세칭 빌라왕, 건축왕의 소유주택에 전세로 살던 사람들이 경매나 공매에서 조차도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 받지 못하는 역전세의 상황이다. 뜻하지 않은 사태 앞에 세입자들 중 몇분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였고,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이 연대하여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이에 검찰과 경찰은 전세보증금 미반환사태를 야기한 임대인들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범으로 규정하여 처벌하기로 하는 한편, 국토부는 여당과 협조하여 피해자들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대책을 전세사기특별법안에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다수의석을 가진 야당은 피해자들의 요구대로 정부가 전세보증금채권을 인수할 것을 압박하는 한편, 정부 측은 사기피해를 정부가 특별히 구제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경매시 우선매수권보장, LH에 의한 우선매수 후 주거권보장, 경매낙찰대금에 대한 장기 저리 융자, 세제지원, 조세채권 안분 등의 지원책을 특별법에 포함하고 있는 중이다. 법안을 마련하는 중에도 정부와 지자체들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신고.상담을 위한 창구를 마련했는데, 이 조직들은 정부 공무원은 물론, 민간의 변호사, 법무사, 심리상담사 등이 참여하여 협력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중심적인 협치 행정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과거 199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 시기 유사한 사태에 대해 취했던 정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 행정의 진일보한 면모로 평가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이 처한 외환위기와 대량실업 및 고금리 국면에서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도둑처럼 닥친 임차주택 경매 상황 앞에 놀라고 지금의 역전세난과 유사한 고통을 정부의 도움 없이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했었다. 지금 거의 막마지에 이른 특별법(안)이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고 2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긴 해도 이 법은 한국행정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고객지향의 애민 정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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