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부잡]중개보조원요? 공인중개사하고만 얘기할게요
현장안내·일반서무는 '합법'…기타 월권 행위 주의해야
#1. 부동산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던 A씨는 최근 배달 일을 시작하며 '투잡러'가 됐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고, 그나마 찾아온 손님은 공인중개사하고만 대화하고 싶다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수입이 급감해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2. B씨는 인터넷에서 찾은 매물을 직접 보러 갔다가 중개보조원이 안내하자 바로 나왔다. 최근 중개보조원이 공인중개사를 대신해 계약을 체결한 전세사기 사례가 떠올라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중개보조원이 소개하는 매물은 무조건 거르라는 조언이 많다.
전세사기 위험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중개사무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개보조원이 공인중개사인 척 위장해 세입자를 속인 사건이 알려지자 중개보조원이 안내하는 매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조언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중개보조원의 매물 안내는 합법적 행위입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이 없더라도,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정식으로 등록하면 중개를 보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법적 역할 이상으로 중개에 관여할 때입니다. 중개보조원의 안내, 어디까지 합법적일까요?
중개보조원, 넌 누구냐
공인중개사법은 중개보조원에 대해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로서 개업공인중개사에 소속돼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및 일반서무 등 개업공인중개사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자"로 정의합니다.
보통 중개사무소에서 '실장님'으로 불리는 분들입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4시간 남짓의 의무교육을 수료하면 누구나 중개보조원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현장 안내, 혹은 중개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반 서무 등이 법적 업무 범위입니다.
계약서 작성, 부동산거래 신고 등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중개 관련 광고도 할 수 없습니다. 직방, 다방 등 중개 웹사이트에 매물을 직접 올리는 것도 안 됩니다. 특히 공인중개사법에선 중개보조원의 잘못은 모두 개업공인중개사의 책임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업무 범위가 극도로 제한되고, 문제가 발생하면 개업공인중개사가 전부 책임져야 함에도 중개보조원을 채용하는 건 금전적 이유 때문입니다. 중개보조원은 대부분 기본급 없이 인센티브만 받습니다. 고용주인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보조원이 계약을 따내지 못해도 손해 볼 게 없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는 사람을 '소속공인중개사'로 채용하면 업무 범위가 대폭 늘지만, 이들은 보통 기본급+인센티브의 방식으로 계약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부동산거래 건수가 추락한 때에도 고정적으로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일 수 있습니다.
A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중개사무소에 소속공인중개사 1명, 중개보조원 5명 등 7명이 일했는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소속공인중개사는 정리하고 중개보조원도 저 혼자 남았다"며 "다른 부동산도 기본급 없이 일하는 중개보조원만 남기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직접 중개 '불법'…채용 까다로워진다
물론 실제 현장은 이상과 다릅니다. 매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계약을 따내기 어려우니 중개에 가까운 설명을 곁들이기도 하고, 개업공인중개사의 아이디를 빌려 온라인에 광고를 게재하기도 합니다.
건축왕, 빌라왕 등 전세사기 일당들은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내걸고 이런 인센티브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이들과 결탁한 공인중개사가 명의를 빌려주고, 중개보조원들은 이를 이용해 직접 임차인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중개보조원의 월권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A씨는 "신축 분양할 때 건당 수수료 2000만원을 준다면서 팔든 전세로 빼든 가격만 맞추라고 하는데, 다들 미친 듯이 달려간다"며 "원래 중개하면 안 되는 건 아는데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현장에선 다 실장들이 계약서 쓴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혼란을 막고자 앞으로 중개보조원은 반드시 자신이 중개보조원임을 밝히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또 무분별한 경쟁을 막고자 중개보조원 고용에도 제한을 뒀습니다. 지금은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고용할 수 있지만, 이젠 개업·소속공인중개사 수의 5배까지만 허용합니다.
이 내용은 오는 10월19일부터 시행됩니다. 다만 중개보조원의 고지 의무는 위반해도 벌금이 500만원에 그치고, 개업공인중개사가 이를 방지하고자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은 경우는 처벌에서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도 있습니다.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결국 앞으로도 부동산 중개가 적법한 절차로 이뤄지고 있는지 긴장을 늦출 순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개보조원의 업무 범위는 현장 안내까지인 점, 이후의 중개 절차는 반드시 공인중개사가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둬야 합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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