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오픈런 알바’까지 등장…애 낳으라는 국가 맞나?[지방소멸은 없다]

노경민 기자 2023. 5. 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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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달빛어린이병원 운영 지원 및 확충…구급이송 1시간
"소아과 의사 충원 핵심"
서울 한 소아아동병원을 찾은 어린이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집 근처에 24시간 응급실이 없다 보니 아이가 밤에 아파도 아침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죠. 지방에서 아이 키우기 참 힘드네요."

부산 사하구민 구모씨(30대)는 지난주 밤에 갑자기 6살 아이가 고열로 아팠지만 밤새 끙끙 앓기만 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서 최근 구내염 환자가 잇따르면서 자신의 아이도 전염된 것이다.

구씨는 집 밖을 나와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이를 봐주는 응급실은 없었다. 결국 병원 아침 오픈런을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야만 했다.

제2도시 부산에 사는 소아청소년은 2021년 기준으로 46만3600여명이다. 부산시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새벽에 갑자기 아파도 진료할 병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시는 최근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달빛어린이병원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소아청소년 의료서비스 확대에 대한 기대가 나오지만, 의료진 확충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급격한 저출산에 지방인구 유출이 가속되면서 지자체마다 아이를 낳으라며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아이가 아플 때 치료할 수 있는 병원 확충에는 다들 손 놓고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년새 환자 2배 이상 증가에도…8년째 3개소에 그쳐

달빛어린이병원은 주로 밤에 아픈 소아 경증환자의 치료를 위해 마련된 병원이다. 밤사이 아동의 '야간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진됐다.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시행된 2014~2016년에는 '국비 50%, 지방비 50%' 보조금이 병원에 지원됐다. 2017년부터는 정식 사업으로 되면서 국비나 지자체 지원이 끊겼다.

달빛어린이병원은 전국에 38개소가 있으며 부산에는 정관우리아동병원, 아이사랑병원, 99서울소아청소년과의원 3개소가 있다. 부산은 2015년부터 3개소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사이 전국에서는 30개소가 추가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도 2017년부터 구·군마다 1개 이상을 추가 지정할 계획이었지만, 소아청소년과 업무과중, 비용문제로 병원마다 달빛어린이병원 등록과 취소를 반복해 왔다.

달빛어린이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부산시 달빛어린이병원 지원 조례안을 발의한 김형철 부산시의원에 따르면 부산 3개소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2021년 5만2309명에서 2022년 11만1279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시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병원 야간운영비에 16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2025년까지 병원을 3개소에서 5개소로 충원한다는 계획이다.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로 지자체 예산을 투입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다만 시범사업 기간의 지원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 기간 병원당 평균 1억4400만원이 지원됐다. 부산의 경우 시 계획상으로는 병원당 5000만원~1억원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부산 소아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공청회'.(부산시의회 제공)

◇부산 주요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0'

올해 부산 주요 5개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한 전공의는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병원도 부산에는 없다. 그나마 부산에서 가까운 양산부산대병원이 소아전문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매년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되는 부산 소아청소년 수도 증가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매일 당직을 서는 병원은 해운대백병원 1곳뿐이다.

최근에는 자녀가 아프면 새벽부터 대신 줄을 서주는 소아과 오픈런 대행 아르바이트도 등장했다.

응급 상황 시 아동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도 적지 않다. 부산에서 어린이병원을 1시간만에 겨우 찾아도 소아를 담당하는 의사가 없어 돌려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119구급대를 이용한 부산 소아청소년 환자 7504명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는 평균 59분이나 걸렸다. 이들 중 심정지 등 중증환자는 34명으로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놓칠 뻔한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

◇의사 모시기는 '하늘의 별따기'병원은 업무과중

의료계에서는 병원 지원금에만 기대선 안 되고 실질적인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의 한 아동병원장 A씨는 "앞으로 소아의료 체계가 악화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의사들의 생각"이라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중간에 다른 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수를 늘린다 하더라도 그 힘들다는 소아과에 누가 가겠나"고 말했다.

부산에서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B씨는 "처음에는 병원 운영에 도움될 것이라 믿고 시작했지만, 업무강도가 높아 갈수록 의사 구하기가 어렵다"며 "다른 병원보다 인력이 2배 더 필요하다. 소액의 상여금 말고는 급여를 올려주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B씨는 "시의 지원으로 약간의 여유는 생길 수 있지만 일시적인 대책일 뿐"이라며 "환자와 병원의 편의를 위해 응급의료 정보 현황 앱을 만들거나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확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달빛어린이병원 전문의가 담당해야 하는 환자가 늘어나면서 진료 질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나온다. 대기시간이 길어 병원에서 고성이 오갈 때도 있다.

학부모 구씨는 "예전에 달빛어린이병원을 이용해 봤지만, 병원에 의사가 1명밖에 없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다"며 "밤 11시였는데도 환자들로 북적여 대기가 길었다. 전문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형철 의원은 "단순히 소아청소년 의료를 경제 논리로만 보면 당연히 의사수가 줄어들지 않겠나. 국가나 지자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원을 늘려야 한다"며 "저출산과도 맞닿은 문제인 만큼 공공의료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blackstam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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