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딸 두고 탈북한 오길남 박사, 탈북민 “우리도 사람 취급 안 해”(이만갑)[어제TV]
[뉴스엔 서유나 기자]
처음엔 같은 탈북민조차 외면했던, 아내와 딸을 두고 탈북한 오길남 박사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됐다.
5월 7일 방송된 채널A 예능 '이제 만나러 갑니다' 594회에서는 37년째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잊지 못하고 있는 촉망받던 경제학자 오길남 박사의 인생사와 그의 근황이 전해졌다.
1970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간 오길남 박사는 파독 간호사로 일하던 신숙자 여사와 결혼해 두 딸 혜원과 규원을 낳았다. 오길남 박사는 가난한 형편 속 공부를 이어가 1985년 43세 나이에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데, 교수로 일하기 늦은 나이와 때마침 간염 증세가 악화된 데다가 교통사고까지 당한 아내의 건강 상태가 문제가 됐다.
아내의 치료비와 아이들의 학비를 절실한데 취직은 쉽지 않은 상황 그에겐 북한공작원이 접근해왔다. 공작원은 오길남 박사에게 공화국에 와서 일해볼 생각이 없냐며, 북한으로 온다면 아내를 평양 최고 병원에서 무상으로 치료해 주겠다고 유혹했다.
공작원의 제안에 혹한 오길남 박사는 이를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신숙자 여사는 "당신 혼자 가고 정 괜찮다 싶으면 나중에 우리를 데려가라"고 말하며 반대 의사를 내비치지만 오길남 박사는 절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신숙자 여사는 "훗날 당신의 이 선택이 우리에게 큰 불행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경고와 함께 오길남 박사의 입북에 동행했다.
북한에서의 삶은 아내의 생각대로 불행했다. 1985년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초대소에 보내진 오길남 박사와 가족들은 3개월간 사상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보내진 아파트는 평양 시내에 있긴 했지만 전력난에 시달렸다. 1930년대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다. 오길남 박사는 "북행을 결정한 것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짓이었다"고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거기다 북한은 오길남 박사에게 제안했던 경제학 교수 일도 시켜주지 않았다. 대신 북한은 오길남 박사를 칠보산 연락소 내 '구국의 소리' 방송에서 대남방송 요원으로 일하게 했다. '구국의 소리'란 대한민국 국민, 친북주의자들을 사상교육 하기 위해 북한이 만든 대남방송을 뜻했다.
15년간 고생해 딴 박사 학위가 아무 소용이 없어진 삶에 오길남 박사의 후회가 극에 달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북한이 오길남 박사에게 서독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둘을 덴마크로 유인해 데려오라는 대남공작원 지령을 내린 것. 이를 오길남 박사가 아내에게 말하며 고민하자 아내는 "당신 혼자 나간 다음 어떻게서든 우리를 꺼내려 노력하라"는 말과 함께 혼자서라도 도망칠 것을 권했다.
결국 오길남 박사는 코펜하겐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박사학위증 사본과 '도와달라'고 영어와 독일어로 쓴 쪽지를 은밀히 공항 직원에게 건네며 입북 1년 만에 극적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서독으로 이동한 오길남 박사는 북한 활동을 비밀로 하고 한국으로만 가지 않으면 북한이 아내와 딸을 풀어줄 거라고 가볍게 판단했다.
이는 착각이었다. 북한은 오길남 박사가 아내와 딸을 돌려달라며 5년간 사과문과 탄원서를 보내자 1987년과 1988년 '돌아오라'는 내용의 부인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어 1991년엔 많이 수척해진 아내와 딸들의 사진과 육성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줬는데, 이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사진의 배경은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 수용소였다.
이날 '이제 만나러 갑니다' 측은 실제 요덕수용소에서 생활했던 몇몇 탈북민들의 증언을 받았다. 그들은 이 세 모녀가 '남조선댁', '독일댁'으로 불렸으며 대인기피증에 걸린 사람들 같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집에다가 북데기 쌓아 놓고 불을 지르고 자결을 하려고 하는 걸 누가 발견해가지고 겨우 살렸다(고 한다)"는 증언이 충격을 안겼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패널 중 탈북 외교관 고영환은 오길남 박사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으로서 10년간 함께 일한 바 있었다. 그는 "처음 한 1, 2년 동안 우린 솔직히 사람 취급을 안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왜냐면 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한 사람이 북한이 종합대학 교수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서 가족까지 데려갔다가, 가족은 두고 온다는 게 사람이 할 짓이냐. 같이 식사도 안했다 처음엔"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이분이 저를 만나 얘기할 때 계속 후회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같이 술을 먹게 됐는데 펑펑 울면서 애들 얼굴만 보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고 계속 울었다. 처음엔 우는 게 너무 보기 싫었는데 마지막엔 '이 사람은 우리보다 두 배 세 배 아픔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가 이해 안해주면 누가 해주냐'며 다독이며 10년 간 살았다"고 밝혀 뭉클함을 자아냈다.
제작진이 알아본 결과 오길남 박사는 현재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에 억류된 딸들이 바이올린 연주회를 열며 현재는 베를린에 가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가족과 헤어진 지 37년, 몸이 많이 망가진 그는 본인의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믿고 있었다.
이런 오길남 박사와 오랜 시간 함께 아내와 딸을 구출 운동을 펼쳐온 납북자 가족 모임 최성용 대표는 자신이 수소문한 바, 신숙자 여사는 결국 간경화로 사망하고 두 딸 혜원, 규원은 북한 정부가 평생 감시할 수 있도록 내부 관계자와 강제 결혼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실을 밝혔다.
이 말을 들은 탈북민 신은하는 "(오길남 박사) 본인이 국제사회에 (구명을) 호소함으로서 북한 사회가 더 강도 높게 감시하고 당과 관계된 사람과 결혼까지 시켜 평생 감시하겠다는 보여주는 것 같다"면서 "감시 속에서 두 딸이 산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 아닐까 싶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불행에 빠져버린 가족의 사연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캡처)
뉴스엔 서유나 stranger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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