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0엔빵 하루 1000개씩 팔려…K컬처 위력 실감하는 日 신오쿠보

권진영 기자 2023. 5. 8. 06: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NS타고 입소문…발빠르게 K푸드 들여와 한국과 트렌드 시차 없어
신오쿠보, 헤이트 스피치 발 붙일 곳 없는 문화체험 거리로 거듭나
4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 역 근처에 위치한 '10엔빵' 가게 옆으로 손님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뉴스1 권진영 기자

(도쿄=뉴스1) 권진영 기자 = “더 늘어난다! 계속 늘어나!”

4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 근처에 위치한 ‘10엔빵’ 가게 옆에는 저마다 인증사진을 찍는 손님들로 좁은 골목이 가득 찼다. 가게 앞에는 40여 명이 나란히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10엔빵은 말그대로 10엔짜리 동전 모양을 본뜬 빵으로, 한국 경주의 명물인 10원 빵에서 유래했다.

줄은 빠지는 족족 계속 찼다. 10~30대의 젊은이가 가장 많았지만 가족단위 및 중년의 손님들도 남녀노소 10엔빵을 찾았다. 25.7도 날씨에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에도 사람들은 20분의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한 중년의 일본인 여성은 줄을 보며 연신 “대단하네~”라고 감탄했다.

◇연휴 기간 하루 1000개 이상씩 판매…치즈 핫도그·크로플·10엔빵으로 이어지는 한류 음식 열풍

틱톡에서 10엔빵을 보고 먹거리 투어를 위해 신오쿠보를 찾았다는 이마무라씨(15)는 “빵 부분이 달달하고 치즈가 쭉 늘어나요!”라고 들뜬 얼굴로 말했다. 함께 10엔빵을 먹으러 온 친구 기노시타씨(15)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블랙핑크 중에서도 지수씨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먹거리 외에도 한국과 교류가 늘었으면 하는 분야가 있는지 묻자 기노시타씨는 “한국 의류 브랜드가 더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국풍의 옷가게는 많지만 진짜 한국에서 유통되는 브랜드는 아직 없다는 것. 두 친구는 그동안 가고 싶어도 팬데믹으로 한국에 가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TV 방송에서 10엔빵을 처음 봤다는 우다씨(26)는 한국의 화장품이나 아이돌은 잘 모르지만 먹거리에는 관심이 있다며 스스로를 ‘치즈 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에 ‘명랑핫도그’가 상륙했을 때도 치즈가 늘어나는 핫도그를 먹기 위해 신오쿠보를 찾았다고 했다.

4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점에서 구매한 10엔빵. 치즈가 40cm 넘게 쭉 늘어진다. ⓒ 뉴스1 권진영 기자

기자도 줄을 섰다. 20분 조금 더 기다렸을까, 식권 발매기에 500엔을 넣자 지하철 티켓 같은 표가 나왔다. 식권 통에 넣자마자 직원이 따끈따끈한 10엔빵을 건넸다. 다섯 평도 채 안 되어 보이는 가게 안에서는 취식이 불가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가게 근처에 서서 자리를 잡았다. 치즈빵을 반으로 가르자 꾸덕한 치즈가 30㎝ 넘게 늘어졌다.

정세현 10엔빵 신오쿠보점장에 따르면 10엔빵의 인기는 지난 2월 시작됐다. 정씨는 “골든위크(5월 초 일본의 대형연휴) 기간에는 정확히는 몰라도 (하루) 1000개 이상은 파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평일에 400~500여 개, 주말에는 600~700여 개가 팔리는 것과 비교하면 최대 배 이상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정씨는 “(디자인에) 특허까지 낸 10원빵집은 저희뿐이다. 더 빨리 만들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많이들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본 도쿄 신오쿠보 곳곳에 자리잡은 한류 문화 컨텐츠.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K팝 아이돌 굿즈(MD상품) 가게, 한국풍 교복을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 뽑기 가게에 상품으로 걸린 그룹 NCT와 세븐틴의 굿즈. ⓒ 뉴스1 권진영 기자

◇문화의 힘으로 ‘헤이트’ 정서 극복하는 신오쿠보

10엔빵뿐만 아니라 신오쿠보 곳곳에서는 한국에서 사랑받는 프랜차이즈나 유행 메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각종 치킨 브랜드는 물론이고 포장마차 브랜드까지 들어왔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크로플을 꼬치로 만들어 파는 가게까지 등장했다. 한국 트렌드와의 시차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이날 가장 놀라웠던 점은 신오쿠보에 몰린 인파다. ‘골든위크 기간에는 사람들이 모두 여행을 떠나 오히려 도쿄가 빈다’는 말이 무색했다. 인도에 사람들이 가득 차 평소 3분이면 이동할 거리도 6~7분가량이 걸렸다. 인구 유입이 가장 활발한 신오쿠보역에서는 역무원들이 “멈추지 말고 계속 이동하세요!”라고 소리치며 인파 관리에 나섰다.

정세현 점장은 “골든위크와 더불어 코로나19 관련 규제가 풀어진 점”도 사람들이 몰린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29일부터 코로나19 관련 공항 검역 등을 전면 해제하고 5월8일부터는 코로나19를 계절 독감과 같은 수준의 ‘5류’ 감염증으로 취급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 국제터미널 내 한 서점에 지난 9월(사진 위)에 이어 10월(아래)에 혐한 서적들이 진열돼 있다. 공항 측은 지난달한국인 이용객의 항의에 혐한 관련 서적들을 내리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버젓이 진열돼 있다. (독자 제공) 2019.10.21/뉴스1

신오쿠보는 과거 2013년만 해도 재특회(재일한국인의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주도하는 ‘헤이트 스피치(혐오/차별 발언)’가 열렸던 곳이다. 하지만 2023년의 신오쿠보 거리에는 헤이트보다는 ‘스키(好き·좋아하다)’의 정서가 흐른다. 여기에는 2016년부터 소위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라 불리는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해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점도 한몫한다.

북촌의 한복 체험과 비슷하게 한국의 교복을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생기는가 하면 뽑기 기계의 상품으로는 방탄소년단(BTS)/엔시티(NCT)/세븐틴 등 아이돌 그룹의 굿즈(MD상품)가 걸려 있다. 케이팝 아티스트의 굿즈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점에는 1020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여행 중 10엔빵을 먹으러 신오쿠보를 방문한 직장인 박모씨(28)는 “한국 아이템들이 꽤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realkw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