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인터뷰]女 배구 최초 중고 신인왕→우승 세터 "이젠 통합 우승, 국대까지 노려봐야죠"
6년간의 실업 리그 생활을 거쳐 프로 무대를 밟았다. 그런데 데뷔 첫 시즌부터 생애 단 한번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왕의 영예를 안았고, 두 번째 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프로배구 여자부 한국도로공사 세터 이윤정(26·172cm)이 프로 데뷔 후 화려한 꽃길을 걷고 있다.
이윤정은 2015년 수원전산여고 졸업 후 프로가 아닌 실업팀 수원시청에 입단했다. 그리고 6년 뒤 2021-2022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로 도로공사의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야말로 준비된 신인이었다. 이윤정은 데뷔 첫 시즌부터 주전 세터로 도약, 세트 7위(세트당 7.80개)로 팀을 정규 리그 2위에 올려놓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같은 활약에 힘입어 그 해 신인상을 수상, 만 25세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신인상과 최초의 중고 신인 수상자가 됐다.
두 번째 시즌은 더 화려했다. 출전 시간을 양분해서 뛰던 세터 이고은이 FA(자유계약선수)로 풀려 페퍼저축은행으로 떠난 가운데 주전 세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도로공사는 흥국생명과 5전 3승제 챔피언 결정전에서 1, 2차전을 내줬지만 3차전부터 내리 3연승하며 최초의 리버스 스윕 우승을 달성했는데 그 중심에는 이윤정이 있었다.
역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1, 2차전에서 패배한 팀이 우승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0%의 확률을 확률을 뒤집는 기적을 만들었고, 이윤정은 데뷔 2년 만에 우승 세터로 우뚝 섰다. 이후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워낙 극적인 우승이었던 만큼 이윤정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듯했다.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이 말에 뭉클했어요."
시즌을 마친 뒤 휴가를 받은 이윤정은 포르투갈과 일본으로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여행을 가서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주변 풍경을 만끽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왔다"고 최근 근황을 전했다.
여행 중 지인들의 축하 연락을 받고 나서야 우승을 실감했다. 이윤정은 "현지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켰을 때 쌓여있는 메시지들을 보고 '진짜 대단한 걸 해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여행 중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올 시즌 많이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올 시즌 정상에 오르기까지 이윤정은 힘든 시기를 많이 겪어야 했다. 데뷔 2년 차에 불과한데 주전 세터를 맡아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렸다. 잦은 기복 탓에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에게 쓴소리를 들은 날도 많았다.
시즌 중 김 감독은 유독 이윤정의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 아쉬운 부분도 있겠지만 애정도 그만큼 각별했기 때문이다. 이윤정은 "감독님께서 평소에 많이 믿어주시고 애정이 있으셔서 지적도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면서 "내가 더 강하게 크고 더 잘하길 바란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막상 둘이 있을 때는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야'라며 달래주신다"고 미소를 지었다.
경기 중 작전 타임 때나 인터뷰를 할 때도 김 감독은 늘 이윤정을 찾는다. 매번 칭찬보다는 꾸중을 많이 듣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윤정은 "감독님이 표현을 잘 못하신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는데 감독님이 이해를 해달라고 하셨다"면서 "2년째 감독님과 같이 했는데 이제는 많이 적응이 된 것 같다"고 웃었다.
김 감독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이윤정에게 "네가 얼마나 간이 큰지 볼 거야, 왠지 잘할 거 같아"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이윤정은 김 감독이 바랐던 대로 간이 큰 모습을 보였지만 내심 부담도 컸다. 그는 "평소에 안 좋은 평가를 들을 때 혼자 생각을 많이 하고 자책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막상 코트에 들어가면 달라지는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시즌 중 다소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현대건설과 플레이오프, 흥국생명과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모두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면서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이윤정은 "감독님이 나를 많이 믿어주셨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기도 했지만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려고 했다"면서 "플레이오프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성과라는 생각을 갖고 편하게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웃었다.
여러 베테랑들의 투혼도 돋보였지만 이윤정의 토스가 없었다면 0%의 기적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윤정은 "(문)정원 언니가 우승이 확정된 뒤 나를 안아주면서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라고 해주셨다"면서 "그때 마음이 뭉클했고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윤정도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리베로 임명옥과 아웃사이드 히터 문정원을 꼽으며 화답했다. 그는 "리시브 등 수비적인 부분이 안정돼야 토스를 올리기 편한데 두 언니가 든든하게 받쳐줬다"면서 "덕분에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언니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실업 리그에서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실업 리그에서도 이윤정은 각광받는 선수였다. 2017년 한국실업배구연맹 종합선수권대회, 2018년 한국실업배구연맹회장배 종합선수권 대회, 2021년 신협중앙회장배 한국실업배구연맹전 등 다수 대회에서 세터 부문을 수상한 경력을 자랑한다. 당시 수원시청 강민식 감독은 이윤정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윤정은 2015년 수원전산여고 졸업 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바로 수원시청에 입단했다. 프로 무대에 대한 부담감과 경기에 바로 뛰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를 떠올린 이윤정은 "그때의 선택에 대해선 전혀 후회가 없다. 지금 이렇게 프로에서 뛰고 있을 줄도 몰랐다"면서 "프로에서 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실업에서 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수원시청 강민식 감독님도 세터 출신이셔서 경기 운영 등 많은 부분에 대해 배웠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돌연 2021-2022시즌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한 뒤 도로공사에 입단했다. 수원시청에서 활약하던 중 김종민 감독의 눈에 들어 러브콜을 받았던 것. 이윤정은 "당시 감독님께서 연락이 오셔서 프로에서 같이 해보자고 하셨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많은 고민을 했다. 이윤정은 "내가 흔쾌히 수락할 줄 알았는데 3~4일 정도 고민을 해서 놀랐다고 하셨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쭉 수원에서 지냈고 수원시청에서 선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고민이 됐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프로 데뷔전에서 느낀 긴장감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윤정은 "배구 인생 중 가장 떨린 순간이었던 것 같다. 관중들과 카메라 앞에서 뛸 생각에 긴장이 됐다"면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떨렸는데 지금은 적응이 많이 됐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떨었나 싶기도 하다"고 웃었다.
실업팀을 떠나 프로팀에 입단한 뒤 강도 높은 훈련량을 소화해야 했다. 어느덧 두 번째 시즌을 마쳐 적응이 된 듯했지만 이윤정은 "훈련은 여전히 힘들다. 늘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면서 "다른 팀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세터 훈련량이 많은 편인 것 같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많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프로 무대에 들어와 꿈에 그리던 롤 모델들을 만났다. 먼저 소속팀에서 명세터 출신 이효희 코치에게 지도를 받게 됐다. 이윤정은 "중학교 때부터 이효희 코치님이 롤 모델이었다. 처음 뵀을 땐 많이 긴장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떠올렸다. 이어 "감독님은 큰 틀에서 지적을 많이 해주시는 반면 코치님은 세세한 부분들은 잡아주신다"면서 "세터의 마음을 잘 아셔서 공감을 많이 해주신다"고 말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과 인연도 깊다. 김연경을 보고 배구를 시작한 이윤정은 "중학교 때 (김)연경 언니가 지원한 장학금을 받았다. 당시 언니와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도 갖고 있다"면서 "'언니와 같은 코트에서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왔다. 올 시즌 같이 경기를 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여전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렌 표정을 지었다.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프로에 온 뒤 다양한 경험을 했고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윤정은 "처음 도로공사에 입단했을 때 이렇게 많은 기회를 받을 줄 몰랐다"면서 "짧은 기간 내 많은 걸 경험해서 신기하고 운이 좋은 것 같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아직도 기분이 이상하다"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는 통합 우승, 그리고 태극 마크도 달고 싶어요."
올 시즌을 마친 뒤 토종 에이스 박정아(페퍼저축은행)와 베테랑 미들 블로커 정대영(GS칼텍스)이 FA로 풀려 팀을 떠났다. 때문에 도로공사의 다음 시즌 전망은 냉정히 말해 어둡다.
이윤정은 우승을 함께 일군 선배들과 이별이 아쉽지만 그동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경기 때 항상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박)정아 언니는 '윤정아 편하게 올려, 여기 선수들 모두 네 공을 다 잘 처리하고 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야'라며 부담을 덜어주셨고, (정)대영 언니는 '괜찮아 편하게 해'라고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같이 하지 못하게 돼서 아쉽지만 언니들이 다치지 않고 좋은 경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이 이탈했지만 이윤정은 다음 시즌에도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그는 "정아 언니와 대영 언니가 빠져서 다음 시즌 하위권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올 시즌에도 그런 예상을 깨고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면서 "다음 시즌에는 우승은 아니더라도 '디펜딩 챔피언답다'는 이미지는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윤정은 올 시즌을 마친 뒤 팬들이 뽑은 MIP(기량 발전상)에 선정됐다. 그는 "작년에는 (이)고은 언니와 서로 도와가면서 프로 무대에 적응을 하는 시간을 보냈지만 올 시즌에는 거의 혼자 책임을 져서 힘든 부분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도 작년보다는 실력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데뷔 2년 만에 우승 세터가 된 만큼 다음 시즌 더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윤정은 "실업에서는 많은 우승을 많이 경험했고 당시에도 우승 세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도 "프로에서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너무 부담스러운 것 같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배구 인생의 최종 목표를 통합 우승으로 잡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윤정은 "당장 다음 시즌이 아니더라도 은퇴하기 전 꼭 통합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베스트7도 한 번 수상해보고 싶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여기에 태극 마크를 향한 꿈까지 숨기지 않았다. 이윤정은 "대표팀은 내가 가고 싶다고 가는 곳이 아니다"라면서도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너무 감사할 것 같고 열심히 잘하고 싶다"고 전했다. 데뷔 2년 만에 우승 반지를 낀 이윤정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성남=CBS노컷뉴스 김조휘 기자 startjo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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