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간호법안, 과연 최적의 대안인가?
‘열악한 환경’ 간호사 고충 충분히 공감
간호법만으로 간호사 처우 개선되지 않아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최근 현장을 찾아 여러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난주 만난 간호사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환자를 돌보는 고충을 호소하셨다.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 힘들고 환자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간호사들의 고충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간호법안만으로 간호사의 처우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처우는 물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간호법안 조항의 대부분을 현행 의료법에서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원하는 업무와 역할 확대는 간호법 제정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고, 반드시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이는 제가 만났던 간호사들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당초 원안에는 간호사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 업무를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모두 빠졌다. 현재 간호계는 실질적인 내용이 없음에도 단독법 형식을 강력히 요구하는 실정이다.
문제의 핵심은 법체계의 변화이다. 의료법은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ㆍ간호사의 역할과 상호 관계를 72년간 통일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5개의 의료인 중에서 간호사만 먼저 단독법으로 분리하는 것은 다른 직역 입장에서 특혜로 보일 수 있다. 그 이후에는 한의사법, 치과의사법 같이 직역별로 독립법을 제정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통일적 의료법체계를 72년 만에 바꿀 것인지 갈림길에 선 만큼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올해 2월 9일 간호법의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이후 정부는 여당과 함께 중재안을 마련하여 관련 단체와 협의를 진행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마련한 간호인력 지원대책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중재 노력과 설득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전혀 조정되지 않은 채 법안이 의결된 것이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간호법안 때문에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들이 반발하고 있다. 간호법안은 간호조무사의 최고 학력을 제한하고 있다. 다른 법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특성화고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나오면 간호조무사 시험을 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고를 졸업하고 전문대에서 보건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다시 학원을 다녀야 시험을 볼 자격이 부여된다. 이번 간호법안 논의과정에서 같은 간호인력인 간호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 간에 단 1차례도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의료현장의 이러한 갈등은 국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일부 의료기관에서 부분 휴진이 있었다. 다가오는 17일이 문제다. 간호법안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전면 휴진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위하여 보건의료인들이 환자 곁을 지켜주기를 계속 요청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제일 걱정하는 보건의료인들이 저희의 요청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서로 신뢰하고 협조가 이루어져야 할 의료현장의 협업이 무너지지 않을지, 이로 인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고령화 시대에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부모 돌봄도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 여러 직역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 법안이 제정되면 간호사의 역할만 강조되어 올바른 돌봄 체계 구축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의료기관 밖에서의 간호사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법안에 ‘지역사회’ 문구가 들어갔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의료·요양·돌봄서비스 수요 변화에 맞춰 시스템을 혁신하고, 직역 간에 상호 역할 분담과 조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간호법이 최적의 대안이 아니다. 정부는 초고령사회에 걸맞는 의료·요양·돌봄시스템을 제대로 갖출 수 있도록 의료법과 돌봄·요양에 관련된 법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개편하겠다.
이지현 (ljh423@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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