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을 말한다]① 당국은 막으려 애썼지만, 주가조작 더 쉬워진 6가지 이유

이인아 기자 2023. 5.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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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추적 허점 역이용해 흔적 남겨...CFD로 검은머리 외국인 변신
우량종목 골라 개미 대신 기관에 떠넘기기...유튜브·텔레그램 활용도
비대면 시대, 계좌 만들기 수월...룸싸롱 넘어 골프연습장·식당서 현금화

통신과 금융이 발전한 것 이상으로 주가 조작 방법이 다양해졌다. 금융당국은 그물을 촘촘히 하고 있지만, 그물 밖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감지조차 못했다. 이번 SG 사태는 내부자 제보가 없었다면 영원히 들키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동안의 작전 사례와 달랐다. 조선비즈는 지난 2012년 여러 작전 세력을 취재한 후 ‘작전을 말한다’ 시리즈를 7회에 걸쳐 보도한 바 있다. 당시와 비교해 바뀐 점, 그리고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2023년 4월 SG증권 발 주가 폭락사태를 일으킨 라덕연 씨는 영화에 나올 법한 기업사냥꾼, M&A 세력이 아니다. 정치인, 연예인, 의사 등 부유층 인맥을 모아 우량한 종목을 최대 레버리지로 수년간 사들이면서 그들의 재산을 눈덩이처럼 키운 자산관리사에 가깝다. 얼핏 보면 종목 선정을 잘하는 장기투자자로 보일 정도다.

라덕연 씨는 그동안 “절대 걸리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다고 한다. 그간 적발된 수많은 주가 조작 사례를 오답노트 삼아 수사망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라덕연 씨 일당의 주가 조작 방법과, 라씨가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증권시장 일각에서 사용되는 주가 조작 기법을 취재했다.

그래픽=정서희

① 차명 휴대폰 이용해 IP수사 허점 노려

최근 만난 한 중견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아이폰 한 대를 꺼냈다. 그는 “처남댁(처남의 아내) 명의의 폰”이라며 “여기에도 텔레그램이 깔려 있는데, 일부 기업 IR 담당자들과의 단체방이 있다. 호재가 있으면 서로 공유하며 주식 투자를 한다. 절대로 걸릴 일이 없다”고 단정 짓듯 말했다.

통신망과 금융 편의성 발달로 과거보다 차명계좌 활용이 너무 쉬워졌다. 자급제 단말기를 구입한 뒤 몇 단계 본인인증을 거친 후 신분증만 있으면 차명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라 씨도 이 방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그는 거래 흔적을 ‘일부러’ 남겼다. 금융당국은 수상한 거래로 인지하면 인터넷프로토콜(IP)을 추적하는데, 이를 거꾸로 이용해 발자취를 남기는 식으로 수사망을 피했다. 발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어 오히려 눈에 띄지 않았던 셈이다.

고객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증권사 계좌를 열어 투자컨설팅업체 직원이 직접 관리하는 방법을 썼는데, 대리 투자를 이용한 이유는 계좌 관리가 쉽고 IP 추적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거래로 보이기 위해 사전에 모의한 가격으로 주문을 넣으면서도, 차명 휴대폰을 들고 전국 곳곳에서 주문을 체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껏해야 부산팀, 대전팀 이런 식으로 전국 곳곳에서 주문을 넣는 게 한계였다”면서 “같은 사무실에서 동일한 와이파이를 쓰면 결국엔 거래소 망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모바일 거래 활성화로 전혀 다른 개개인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적발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 수사에 정통한 한 관계자도 “각각의 폰으로 거래하면 ‘계좌 동일인’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VIP 고객에게는 차명 휴대폰이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프로그램이 깔린 노트북을 퀵 서비스로 전달하기도 했다. 라 씨와 고객들은 당장 한강에 던져도 안전한 차명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모의한 대로 주식 주문을 체결했다. 퀵 서비스를 이용하면 보낸 사람을 숨기면서도 안전하게 물건을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발전한 물류 시스템도 이들에게는 득이 된 셈이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증권업계 종사자 중 휴대폰을 여러 대 가진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아이폰을 선호하고, 개통이 쉬운 선불유심을 활용한다. 한 상장사 IR 관계자는 “아이폰은 압수당해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해제가 불가능해 조사가 어렵다”며 “선불폰은 한강에 던져버리면 그만”이라고 선호 이유를 설명했다.

② 잡주를 끌어올린다고? 다 옛말

우량한 종목을 목표로 삼은 점도 당국의 감시망을 비껴간 요소다. 주가조작 세력 대상이 된 8개 종목은 모두 지난해 재무제표에서 이익을 낸 곳들이다. 다만 지배구조상 승계 문제가 얽혀있어 주가가 오를 명분이 부족했다. 예로 다우데이타는 기업가치 대비 주가가 낮다는 평가가 뒤따랐고, 삼천리는 가치투자 전문 운용사에서 점찍은 종목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승계 문제가 얽혀 있다는 건 상속 이슈가 해결될 때까지 최대주주 지분 변동이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증여세가 덩달아 늘어나 주가 상승을 달가워하지 않는 오너 일가가 많다. 이에 상속세 부담을 덜기 위해 주가가 떨어졌을 때 승계를 추진하는 곳들도 있다.

대성홀딩스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72.74%에 달하고, 서울가스는 최대주주와 자사주 지분이 75.86%다. 이어 선광(61.69%), 삼천리(54.67%), 세방(50.56%), 다우데이타(66.91%), 다올투자증권(28.38%), 하림지주(64.93%) 등도 최대주주 관련 지분율이 높아 시중에 풀린 주식 수가 한정적이다. 시장에서 주식을 계속 사들이면 주가가 오르는 게 가능했던 이유다.

라씨 일당 사례와는 무관하지만, 최근 금융감독원이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이차전지 관련주들도 소위 말하는 ‘잡주’는 아니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지만, 대부분 과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과정에 시세조종 혐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그래픽=손민균

③ 미지의 존재였던 ‘검머외(검은 머리 외국인)’, 지금은 꾸미기 쉬워

차액결제거래(CFD)라는 새로운 파생상품이 생기며 ‘외국인’으로 둔갑하기 쉬워진 점도 주가 조작을 용이하게 만든 요소다.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 수급이 유입됐다’라는 걸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는데, CFD 계좌를 이용해 이런 신호를 줄 수 있다. CFD를 이용하면 검은머리의 전문투자자가 외국계 투자자인 척 정체를 숨기고 개미를 꾈 수 있는 셈이다.

문제가 된 8개 종목에서 매도 물량을 쏟아낸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은 주문 처리 창구에 불과하다. 현재 CFD 거래는 두 단계를 거친다. CFD 이용 고객이 국내 증권사에 주문을 넣으면, 국내 증권사와 계약을 맺은 외국계 증권사가 여러 주문을 모아 거래소에 접수하는 구조다. 어떤 주체가 거래했는지 알 수 없어 ‘깜깜이 거래’라는 지적을 수급 세탁에 이용한 것이다. 지금도 장내에서 삼천리, 다우데이타 등을 매수한 투자자들은 “외국인이 사는 줄 알고 주식을 샀다가 큰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고 있다.

④ 개인한테 떠넘기는 설거지, 이제는 기관이 타깃

주가가 오르면 물량을 고점에 파는 이른바 ‘설거지’ 대상이 개인에서 기관투자자 자금으로 확대된 점은 의도치 않은 속임수로 보인다. 거래량이 적은데 재무구조가 우량한 기업의 주가가 오르다 보니, 해당 종목들은 저변동성·배당주 컨셉의 상장지수펀드(ETF)에 담기기도 했다. 대부분 종목이 언젠가는 코스피200 등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연기금 또한 이 종목들을 매수했다.

패시브 ETF의 경우 정해진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해당 종목들에 운용사 수급이 유입됐고, 이들 종목을 팔아야 하는 시점에 기관에 떠넘기기가 가능했다. 기관 수급이 들어오면서 작전 중인 기업이라는 의심을 지우는 데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⑤ 수수료 수취 방식도 진화...룸싸롱 대신 골프연습장, 마라탕집 등 활용

자금 세탁 방식도 양지로 올라왔다. 라 씨 일당은 차명으로 마라탕 전문점, 골프연습장 등을 직접 차려 운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객들은 이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골프 레슨비로 수천만원을 결제하거나 마라탕과 술값으로 수백만원을 결제하며 수수료를 납부했다. 투자 수수료는 마라탕값으로 둔갑해 손쉽게 주가조작단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감독당국이 알아차릴 수 없었던 이유도 버젓이 영업 중인 마라탕집, 골프연습장에서 결제대금이 오갔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가 조작에 동원된 계좌 간 자금 이체가 잦았고, 이를 토대로 적발하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가를 올리는 데 동원된 계좌와 수수료 수취 계좌(신용카드 결제대금이 출금되는 계좌)가 단절돼 있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금융당국이 적발하기 불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물론 이들도 고전적인 방식 또한 활용했다. 화려한 인맥으로 묶인 이들은 고객과 함께 해외 골프장에 투자하거나 갤러리, 연예 기획사를 세우기도 했다. 해외 법인, 고가 미술품, 자회사 등을 통해 자금을 빼돌리는 건 고전적인 비자금 확보 방식이다. 이번 주가 조작 세력이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에는 룸살롱을 통한 현금화도 자주 있었다.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과거 라 대표도 기업 인수합병에 관심이 많았는데, 금융당국이 코스닥 상장사 M&A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니 라 대표는 아예 방향을 틀었다”며 “정치, 문화계 유력 인사와 친분을 맺고 투자금을 모아 합법인 것처럼 거래하는데, 반대매매로 폭락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라 대표의 전성시대가 계속 이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일러스트=이은현

⑥ 유튜브, 텔레그램 통해 확산하는 미확인 정보들...당국은 늦을 수밖에

이번에 라씨 일당이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주식 정보가 다양한 채널에서 유통되는 점도 주가 조작을 손쉽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과거에는 미쓰리 메신저를 통한 허위 사실 유포, 혹은 언론 기사 홍보 정도에 그쳤다. 당국의 감시 시스템도 일부 채널의 찌라시 유통과 언론사 뉴스 체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은 채널이 활용되고,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유튜브, 텔레그램 등에서 잘못된 정보가 퍼지더라도 진원지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융당국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세력이나 유튜브 등으로 방향성을 과하게 제시하는 행위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언급했지만, 사실상 제재는 어려운 실정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튜브 주식 채널의 시장 영향력이 커질 경우, 자칫 개인 투자자의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군집행동으로 인해 시장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일부 유튜브 주식 채널의 무분별한 낙관적 전망 유포와 주가 폭락 뒤 무책임한 행태는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고 지적했다.

주주 인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토론방이나 텔레그램 채널은 아예 감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분야의 허위정보 유통이 심각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게 된 한 바이오 기업은 대표이사 A씨가 주주 인증을 받아야 볼 수 있는 게시판에 ‘곧 대형 호재가 나온다. 기대하라’는 식의 글을 올리면서 주가를 컨트롤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주주들만 보라고 하고 허위 정보를 올리면, 이 정보가 곧바로 여러 곳으로 퍼지며 주가에도 당장 반응이 나타난다”면서 “이런 곳들은 파악조차 어렵기 때문에 당국의 조치가 늦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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