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들] “해양과학 연구 50년,기후위기로 숙제 산적...해양재난 막는 예측력 키울 것”
“임무중심형·국민밀착형 연구 개진… 조직 개편 실시”
올해 ‘K-오션워치’ 연구 추진… 연안 재해 미리 막는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올해 3월 발표한 제6차 종합보고서에서 인간 활동이 지난 10년간 지구 지표 온도를 섭씨 1.1도 상승시켰다고 밝혔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100년간 한국의 온도 상승 속도는 전 세계 평균보다 세 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해양기후 연구를 전담하고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해양과기원)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해양과기원은 그동안의 성과를 자축하기보단 비장한 각오로 무장한 분위기다. 내부 조직 개편부터 해양 재난을 대비하는 대형 프로젝트까지 연초부터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4월 19일 부산 영도의 해양과기원 본원에서 강도형 원장을 만났다. 올해 2월 취임한 강 원장은 곧 취임 100일을 맞는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 보기 드문 50대 초반의 기관장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중요한 임무를 맡은 강 원장은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젊은 리더십’으로 해양과기원을 이끌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취임한 지 석 달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바쁘게 지냈을 것 같다.
“5월 9~10일 주요 보직자와 연구 책임자들을 모아 ‘드림 캠프’라는 것을 진행한다. 분위기 전환과 직원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최근 전 세계 과학기술이 급변하고 있는데, 긍정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조직 개편과 신규 사업들을 전반적으로 준비하면서 보냈다.”
-조직 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나.
“해양과기원이 올해 50주년을 맞는다. 그래서 임무 중심형, 국민 밀착형으로 조직을 바꾼다. 구체적으로는 해양기후솔루션연구부와 해양자원환경연구본부, 해양신산업연구본부, 해양력강화연구본부, 해양디지털자원부를 만들었다. 행정 쪽으로는 안전보건실을 만들었다.
연구개발을 지역밀착형으로 하기 위해서 지자체소통협력실도 신설했다. 5월부터는 8개 시도의 광역단체와 지자체를 직접 방문한다. 지자체 현안을 해양과기원이 해결할 수 있도록 협의하는 것이 목적이다. 직접 발로 뀌며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가진 문제를 풀어낼 가교가 되려 한다.”
-해양과기원이 새로운 50년을 맞이한다. 앞으로의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
“해양과기원 전체로 따지면 연구원 기업이 9개가 있다. 해양과기원이 경영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이 기업들을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의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연구원 기업을 위해 ‘KIOST 홀딩스’를 만들 예정이다. 해양과기원이 보유한 기술을 홀딩스로 기술 거래를 하고, 멋진 벤처기업을 만들 계획이다.
또 하나는 해양과기원 일대를 해양과학 특구로 지정하는 거다. 현재 해양 클러스터를 특구로 바꿔 예산과 인력 지원을 받아야 한다. 부산에도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은데, 다 수도권으로 올라간다. 이들을 잡기 위해 홀딩스와 특구, 그리고 장학재단까지 만들면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양과기원은 명실상부한 한국 해양과학기술 연구의 중심지다. 강 원장은 특히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만큼, 한국은 해양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후 변화는 물론, 해양 환경 오염과 해양 안전재난 관련된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세조류를 이용한 해양바이오 기술사업화도 해양과기원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와 페루,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등 6개국과의 국제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 해양과기원은 2030년까지 국제 협력국을 총 10개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국의 해양과학기술을 통해 외교 효과까지 낳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해양과기원에서는 기후 변화와 관련해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연구본부를 기후솔루션연구본부로 이름을 바꿨다. 해양과기원이 50년 됐다는 건 이젠 정말 솔루션을 내놔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엔 ‘K-오션워치(연안 재해 대응체계)’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해양 재해를 6일 전에 예측해서 정확도가 높은 자료를 국민이 사용하도록 만들 예정이다.
지구의 70%는 해양이다. 물과 땅을 비교했을 때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해양의 역할은 크다. 해양 기후와 관련해 예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이유다. K-오션워치는 한국의 자연과학과 IT, 공학이 총망라된 프로그램이 될 거다. 현재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 중이다.”
-해양 미세 플라스틱 등 해양 환경 보호 관련 연구도 진행하고 있는데, 해양과기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해양 플라스틱을 해양과기원에서 처음 제안하고 2012년부터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기름 유출 사고를 대비해 기름의 지문, 이른바 ‘유지문’ 연구로 기름이 어디서 오는지 파악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다. 또 최근엔 굴 껍데기 같은 수산부산물을 고부가가치로 전환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필요할 때는 정부에 타당성을 설명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제주에서 태어난 강 원장은 바다에서 자라고 연구까지 한 ‘바다 사나이’다.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진 해양과기원 산하 제주연구소장으로 있었고, 미세조류를 이용한 해양바이오 기술사업화를 이끌었다. 그는 해양 미세조류인 스피룰리나에서 기억·인지 기능을 개선 효능을 발견했다. 바이오·제약 산업에 사용되는 소태아 혈청을 대체하는 기술로 주목받았다.
해양과기원은 2017년 경기 안산시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인력 이탈과 조직 내홍 등의 문제를 겪었다. 경기 안산시 부지를 매각하지 못해 임금 상승률을 맞추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강 원장은 그동안의 문제를 극복하고 분위기 쇄신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강 원장이 제시한 해양과기원의 새로운 기회는 역시 바다에 있었다.
-해양바이오 전문가이기도 하다. 해양과기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술사업은 어떤 것이 있나.
“기억력을 개선하는 미세조류 추출물 건강기능식품이 식약처 심사를 거치고 있다. 160명을 비교 평가한 임상을 통해 기억력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한 상태다. 소태아 혈청을 대체할 수 있는 효능도 확인했다. 소태아 혈청은 바이오 산업에서 세포를 배양하는 데 필수적이다. 소태아 혈청을 위해 1년에 70만~110만 마리의 소가 희생된다. 식량난과 윤리, 탄소 배출 문제도 어마어마하다. 현재는 미세조류 추출물이 소태아 혈청의 70~90%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데, 곧 전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 기술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벤처기업에 이전돼 배양육을 만드는 곳에도 사용되고 있다.”
-연구자들의 처우 개선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임금은 공무원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 사업을 많이 유치하고, 재원을 많이 확보해서 복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 연구 공간을 계속 확충해 나가는 방법을 통해 한 발짝씩 직원의 복지를 실현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여기에 홀딩스나 특구 법안이 마련되면 연구 환경이 지속적으로 개선될 거라고 생각한다.”
-해양학을 전공한 계기가 궁금하다.
“고향이 제주도다. 바닷가 옆에서 태어났고, 나에게 바닷가는 놀이터였다. 다니던 중학교가 수산업 특성화 학교로 지정됐는데, 자연스럽게 바다에 관심이 갔고 당시 선생님이 해양학과를 알려줬다. 대학에서는 1992년 취항한 해양조사선 온누리호를 승선했다. 온누리호를 타니 꼬맹이 때 놀던 바다가 아니었다. 정말 짜릿했고, 이 경험을 계기로 쭉 해양 분야를 연구하게 됐다.”
-앞으로의 포부를 말해달라.
“해양과기원은 50년 동안 해양과학기술 종합연구기관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연구자들이 좋은 결과를 냈지만 자랑을 잘 못 했다. 바다가 어떻게 바뀌고 있고, 복원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직접 설명할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 과학적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해양과학기술의 존재 가치를 높여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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