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시늉만 낸 ‘호응’…강제동원 적시 않고 “가슴 아파”
“당시 힘들고 슬픈 경험…” 덧붙여
‘강제동원 피해자냐’ 되묻자 답 피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올해 두번째로 한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명확한 사죄나 반성 표시는 없이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는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개인적 안타까움을 표시하긴 했으나, 국내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을 내놓은 우리 정부가 기대한 ‘성의 있는 호응 조처’에는 못 미쳤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거사와 관련해 “1998년 10월에 발표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공동선언을 비롯해 역사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며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16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발표한 내용과 동일하다. 이는 ‘반성과 사죄’ 표현은 빠진데다, ‘미래 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지게 할 수는 없다’는 2015년 8월 아베 담화까지 포괄하는 것이어서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은 채 이들의 아픔에 감성적으로 ‘공감’의 뜻을 전하면서도 개인적 의견임을 밝혀 정치적 부담을 덜어내고자 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 결단으로 지난 3월6일 발표된 (강제동원 해법) 조처에 관한 한국 정부 대응에 진전이 이뤄지며 많은 분들이 미래를 위해 마음 열어주신 점에 감동받았다”며 “저는 당시 혹독한 환경 아래 다수의 분들께서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혹독한 환경 아래의 분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를 의미하느냐는 한국 기자 질문에 확답을 피한 채 “그 당시 굉장히 힘들었던 분들에 대한 저의 개인적 생각을 말한 것”이라며 그마저도 사적 의견으로 정리했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표현은 강제동원을 여전히 ‘합법적인 징용’이라고 보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7월 메이지일본 산업혁명 유산 유네스코 등재 당시 일본 대사는 “많은 한국인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곧바로 말을 바꿔 이같은 노동이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했고, 당시 외무상이 기시다 총리였다. 기시다 총리는 그러면서 “3월에 윤 대통령께서 나타내신 결단력과 행동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며,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들의 기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추어올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런 과거사 언급을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며 감사 표시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상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소인수회담 때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관련 언급을 듣고 ‘한국이 먼저 요구한 바 없는데 먼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줘서 감사하다. 그리고 이것은 한-일 미래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도 “과거사 인식 문제는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일방의 상대에게 요구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미래 협력을 위해 한발짝도 내디뎌선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저는 과거 양국관계가 좋았던 시절을 넘어 더 좋은 시절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두고 ‘역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물잔의 반을 채워야 한다고 했을 때, 과거사 인식 문제는 도쿄 회담 때보다 더 뒤처진 것 같다”며 “사과를 바라는 한국의 기대와 달리 사적 소회 정도로 피해자 아픔을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반면, 조진구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한국인의 감정을 배려해 감성적 표현을 한 것 같다. 총리로서 개인적 소회를 밝힌 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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