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공동기획'에 일본도?…기시다 "가슴 아프다"에 숨겨진 의미

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2023. 5. 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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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尹 "워싱턴 선언에 일본 참여 배제하지 않아"
요미우리신문, 지난 3월 '한미일 확장억제 협의체' 관련 보도
핵무기 관련 한미 '양자' 공동기획과 실행에 일본도 참여한다?
안보실 "NCG 확대 논의 안 돼, 워싱턴 선언은 우선 미국과 진전"
2016년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 때 빼먹었던 한국인 위령비 공동참배
과거 아픔 달래는 행보임과 동시에 일본 '피해자 행세' 말려들 우려도
기시다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
'역대 내각 역사 인식 계승' 표명했지만, 일본 우익 논리에도 부합
후쿠시마 한국 시찰단 파견 합의…"과학적 기법은 논의해 봐야"
기시다 "양국 국민 건강과 대외 여건에 악영향 안 끼치게 최선"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현장에 대한 한국 시찰단의 방문, 히로시마 원자폭탄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 등에 합의했다.

특히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워싱턴 선언'에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당시 국가안보실은 '국민들이 핵공유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확장억제에 대해 한미가 함께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가 이를 '핵통제동맹' 또는 '핵억제동맹'이라고 정정했는데, 이를 일본과도 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핵억제동맹'이라던 한미 NCG, 일본과도 함께?…대통령실은 긴급 진화

윤 대통령은 7일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워싱턴 선언은 일단 한국과 미국 양자간의 베이스로 합의된 내용이지만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진 않는다"며 "한미 간의 워싱턴 선언이 완결된 것이 아니고 계속 논의를 하고 또 공동기획·공동실행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용을 채워 나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먼저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일본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는 2개월 전에 이미 일본 언론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3월 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이 핵전력에 대한 정보공유를 강화하는 새 한미일 확장억제 협의체 창설을 타진하고 있다면서, 핵억지 관련 논의를 심화하며 미국의 핵전력에 관한 정보 공유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핵전력에 관한 정보공유를 강화하는 새 한미일 협의체의 창설은 '핵우산'을 포함한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일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핵억지력 관련 협조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워싱턴 선언의 내용을 보면 한미가 '핵억제에 관해 보다 심화되고 협력적인 정책결정에 관여'한다고 약속하면서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핵협의그룹(NCG)을 설립한다'고 언급돼 있다.

한미간의 이같은 고위급 상설협의체에 대해 일본이 참여할 수 있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은, 바꿔서 이야기하면 현재 한미와 미일간에 각각 존재하는 확장억제 협의체가 일원화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특히 한미간의 확장억제 협의체로 핵무기 관련 내용까지 다루는 NCG 창설까지 결정된 상태인데, 여기에 일본이 참여한다면 결과적으로 미국의 핵무기 관련 공동기획과 실행에 일본까지 끼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되면 한미일간의 군사적 협력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으며 사실상 핵보유국인 북한, 그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인 중러까지 3개 핵보유국을 상대로 한미일이 '확장억제'와 '핵 공동기획'을 가지고 정면으로 맞선다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마침 윤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작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와 관련해서, 실현 방안에 대해 당국 간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환영하고 앞으로도 한미일 3국간 안보협력을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터다.

다만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NCG 확대가 논의된 적은 없으며 한미일 3자간 확장억제를 논의한 적도 없다"며 "워싱턴 선언에 대해서는 우선 미국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며 NCG는 우선 1대 1의 고위 상설협의체라 이걸 바꾸거나 할 생각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래의 가능성까지는 부인하지 않되 당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며 진화에 나선 셈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은 "NCG 자체가 다자 협의체에서 높지 않은 한국의 발언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만든 양자 협의체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데, 여기에 다시 일본이 들어오게 된다면 이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일본이 참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냈던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NCG는 상당한 신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본이 바로 참여할 수는 없다"며 "그 전에 2015년 나카타니 겐 방위상의 영토고권(領土高權) 관련 발언으로 무산됐던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먼저 추진하는 식으로 선행돼야 할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 한국인 위령비 참배에 과거사 "가슴 아프게 생각"…평가는 복잡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양 정상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들로 이뤄진 시찰단이 현지를 방문하는 일과 함께,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한국인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기로도 합의했다.

미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에 한창 군불을 때고 있던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찾아 '핵 없는 세계'를 역설했지만 정작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는 찾지 않았던 적이 있다. 때문에 한국인 생존 원폭 피해자들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당시 "오바마의 일본 방문이 일본의 피해만 부각하고, 식민지 억압과 피폭이라는 이중의 희생을 당한 한국인 피폭자들의 존재는 여전히 무관심의 그늘에 방치돼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1945년 당시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35년 동안 이어졌던 만큼 히로시마에도 강제동원, 군인, 일반 시민 등으로 약 10만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과거 침략의 대가로 핵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은근슬쩍 빼놓고,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식의 이미지메이킹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항상 소외돼 왔다.

양 정상이 이 곳을 찾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이렇게 된다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과거를 직시하되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말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행보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는 양 정상이 함께 과거의 아픔을 달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최은미 연구위원은 "당시 원폭 피해자들 가운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많아, 일본 내에서도 히로시마 한국인 위령비 공동 참배는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며 "이번 내용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2016년 당시 제기됐던 비판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로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G7 정상회의 주최국이 일본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 가고 싶다고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일본이 먼저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기시다 총리의 언급도 있긴 했는데 해당 언급은 그간 했던 것처럼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재확인하는 데서 그쳤다. 기시다 총리는 대신 "당시 혹독한(厳しい)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그간 써온 표현에 비해 한 발 더 나아갔다. 다만 여전히 사과와 반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고 그것도 개인적인 입장 이라고 밝힌 한계는 있다.

일본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그전엔 '징용공(徵用工)'이라는 말을 써 왔는데, '징용'의 사전적 뜻은 전시나 사변 같은 비상사태에 국가의 권력으로 국민을 강제로 일정한 업무에 종사시키는 것이다. 강제성은 있되 불법은 아닌 셈이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旧朝鮮半島出身労働者)'라는 말을 만들어내 강제성마저도 숨기려 했다. 일본 우익 진영의 역사 수정주의적 움직임도 그러한데,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발언 또한 여기에 부합한다.

조성렬 초빙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발언은 아베 총리의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와 거의 같은 표현이다"며 "우리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의 개념, 즉 프레임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뒤로는 '일본의 입장에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일이 벌어진다"고 비판했다.

반면 최은미 연구위원은 "기시다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우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총리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발언을 한데다 일본에 돌아가서 (자유민주당 등 우익 의원들의) 질문에도 답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모두 각각 한국과 일본 국내에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반발 기류에 부딪히고 있는데, 국내적으로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이런 기류도 계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 연구위원은 "비판은 할 수 있지만 기시다 총리의 성향을 보았을 때 상당 부분 용기를 낸 것으로 본다"며 "이렇게까지 얘기한 것만으로도 (일본에) 돌아가서 비판을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한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일본이 한국 시찰단 파견에 합의한 것은 아직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기시다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듯 "일본 총리로서 자국민과 더불어 한국 국민 여러분의 건강과 여러가지 대외 여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일본 쪽에서 최선을 다할 것"과 맥을 같이하는 조치로 보인다. 물론 오염수 방류에 반발하는 한국 내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이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도 볼 수 있다.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단순히 둘러본다는 의미는 아니며 어떤 과학적 기법이 채택될지는 논의해 봐야겠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존 처리·접근 방법을 참고하고, 모든 방안의 물질이나 성분에 대해 함께 조사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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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redpoin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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