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농촌가정] 다툰 날도 뛰어논 날도 가득…“이게 바로 ‘찐가족’이죠”
많은 아이들에게 울타리 돼주고 싶어
두아들 출산 후 보배·샘물양 입양
시간 흐르며 ‘현실 남매’ 된 아이들
미혼모·보호종료아동에도 관심 생겨
차로 10분만 가면 항구와 밭이 나오는 한적한 마을 제주시 이도동의 한 집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으로 한 집에 한 아이도 보기 힘든 요즘, 이집은 무려 4남매를 키우고 있다. 안국현(43)·강나루씨(43) 부부의 자녀인 첫째 대원군(13), 둘째 근원군(11), 셋째 보배양(9), 막내 샘물양(6)이 그들이다. 두 아들은 출산을 통해, 두 딸은 입양으로 가족이 됐다. 이미 두 자녀가 있는데도 아이를 입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부부는 아이를 정말 좋아해요. 둘을 낳았는데 남편이 셋째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아이는 좋지만 제 몸이 감당하기 어려워 셋째를 낳는 것은 포기했죠. 그러던 중 TV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입양 가족을 보고 출산이 아닌 입양으로도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내 강씨는 입양을 원했지만, 입양이 낯설었던 남편 안씨는 반대했다. 강씨는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이미 가족을 이룬 ‘입양 선배’들의 책과 방송을 보여줬다. 강씨가 이토록 입양을 원한 데는 그가 아버지를 일찍 여읜 것도 한몫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늘 그리워했던 강씨는 많은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돼주고 싶었다. 4개월간 설득한 끝에 결국 안씨도 마음을 움직여 부부는 셋째 보배양을 입양했다.
생후 80일에 부부 품으로 왔던 보배양이 세살 되던 해, 부부는 다시 한번 입양을 결심했다. 오빠들밖에 없던 보배양에게 자매가 생긴다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며 큰 힘이 돼줄 것 같았다. 보배양을 입양했던 기관에 연락했지만, 제주에서 감귤류 유통업을 하는 부부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입양을 거절당했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부족함 없이 키울 자신이 있던 부부는 다른 기관도 알아봤다. 그러다 광주광역시의 한 기관에서 ‘입양아를 이미 잘 키우고 있는 이 집이 아니면 어디서 아이를 입양하냐’며 샘물양을 소개했다. 그렇게 샘물양도 부부의 딸이 됐다. 보배양과 샘물양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들이 입양됐다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입양 사실을 숨길 이유도 없고, 나중에 듣게 되면 오히려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를 낳아준 부모님은 따로 있고, 엄마·아빠와는 입양으로 가족이 됐다’고 말해줬죠. 아이들도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날 낳아준 엄마가 궁금해. 언젠가 만나고 싶어’라는 얘기도 스스럼없이 한답니다.”
보배양이 처음 집에 왔을 때, 오빠인 대원군과 근원군은 여동생을 매일 껴안고 뽀뽀까지 하며 귀여워했다. 시간이 지나자 둘째 근원군은 부모님의 사랑이 동생에게만 향한다는 생각에 질투도 하고 떼를 쓰기도 했다. 당시 근원군도 두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동생이 생긴 아이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한 집에서 다투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시간이 쌓여 보배양과 샘물양은 오빠들과 ‘현실 남매’가 됐다. 보배양은 오빠 친구들과 모여 축구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
농촌에 사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점이 많다. 피아노학원 외에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 모여 책을 읽고, 주말에는 할아버지 밭으로 놀러 간다. 할아버지가 가꾸는 2640㎡(800평) 규모의 밭은 아이들에게 농사의 위대함을 가르쳐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해녀인 외할머니로부터는 바다의 신비로움을 배운단다.
누구보다 행복한 가족이지만 주변 시선 때문에 마음앓이도 많이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축하한다’는 얘기를 듣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입양한다고 얘기했을 때는 ‘순간의 감정으로 평생을 후회할 거다, 남의 자식을 키워서 득이 될 게 없다’는 모진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또 제가 초기 암 판정을 받았는데 ‘애들 키우느라 고생해서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던 사람도 있었어요.”
주변 걱정과는 달리 샘물양을 데려오고는 일이 더 잘돼, 큰 집으로 이사도 했다. 또 다자녀 혜택으로 네자녀의 학교 방과후수업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입양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지만, 입양 덕에 세상을 더 폭넓게 보게 됐다는 부부. 보배양과 샘물양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미혼모와 보호종료아동이 겪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그들에게 감귤을 나누며 후원도 하게 됐다. 입양으로 얻게 된 가장 큰 결실은 역시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기쁨이다.
“아직도 저희 아이들을 ‘버려졌다’고 불쌍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입양아는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이’라는 말처럼 보배와 샘물이는 생모가 10달 동안 소중히 품고 낳아서 우리 집까지 안전하게 오게 된 소중한 아이죠. 보통의 행복한 가정으로 우리 가족은 물론 다른 입양 가정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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