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정책의 역설과 시스템적 접근

관리자 2023. 5. 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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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초까지만 해도 온 나라가 부동산 가격 폭등에 휩싸였다.

집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칭이라는 기본 원인이 있지만, 비정상적인 가격 폭등의 국면에서는 집값을 기필코 잡겠다는 정부의 반복적인 의지 표현이 부동산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키고, 이것이 집값 폭등에 대한 기대 심리를 형성해 공포매수 같은 비정상적인 행위를 유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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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동산값 이례적 폭등
정부 적극적 정책의지 ‘역효과’
올초 국내 감기약 사재기 조짐
민간 자율로 큰 사태 안 번져
시장개입, 공포매수 부를수도
개인역량 활용하는 지혜 필요

지난해초까지만 해도 온 나라가 부동산 가격 폭등에 휩싸였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한 상태다. 돌이켜보면 20번 이상의 정책이 무색할 정도로 매우 이례적인 국면이었다. ‘나 잡아봐라’ 하고 시장은 정책을 조롱했고 현실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형국이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투기지역·조정대상지역 등 부동산 관련 모든 정책이 동원됐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들 정책들은 폐기처분되기에 마땅하다.

반면 이와 대비되는 것이 올초에 거론된 감기약 판매수량 규제다.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해제되자 중국 내 감기약 품귀 현상이 우리나라 감기약시장까지 영향을 미쳐 감기약이 품귀될 조짐을 보였다. 이때 정부는 감기약 판매수량 규제를 시행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표를 내놨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감기약 사재기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부 약사들은 정부 정책이 오히려 감기약 품절 대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약사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과도한 감기약 구입보다는 적정량을 구매하도록 이해시키고 유도하는 등 자정 노력이 더 효과적이라 주장했다. 결국 정부는 감기약 수량 규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감기약 품귀 현상은 큰 문제 없이 끝났다.

부동산과 감기약 사례에서 정부 정책을 달성하고자 전자는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후자는 개입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귀결됐다. 좋은 목적을 가지고 정책을 폈지만 시장 메커니즘을 잘 이해한 후자가 정책 비용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 결과도 좋았다. 정부가 감기약 수량을 규제한다고 하면 지난번 마스크 대란에서 경험했듯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약국으로 달려가 줄을 서는 일이 발생할 것이 뻔하다.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일시에 사람들의 행위를 집중시키고 연쇄반응을 일으켜 이벤트 크기를 키우는 일이 다반사다.

부동산 가격 폭등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확전됐다. 집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칭이라는 기본 원인이 있지만, 비정상적인 가격 폭등의 국면에서는 집값을 기필코 잡겠다는 정부의 반복적인 의지 표현이 부동산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키고, 이것이 집값 폭등에 대한 기대 심리를 형성해 공포매수 같은 비정상적인 행위를 유발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금리인상이라는 일반적인 거시 변수가 부동산 가격을 진정시키는 기능을 한 것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 살고 있어 앞으로 폭등·폭락을 더 빈번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변동성이 높은 시스템에서는 미시 차원의 미세한 움직임이 거대 질서를 바꿀 만큼 휘발성이 높기 때문에 정책을 펼 때 해당 정책이 미칠 시스템적인 영향을 잘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사회의 특성상 시스템 리스크에 쉽게 노출된다. 해외 의존적 경제구조, 인구의 수도권 집중, 전세 중심의 부동산 임대차 제도, 유행에 민감한 소비 성향 등 사회 전반이 강한 연결고리로 얽혀 있어 널뛰기하기 쉬운 구조이다.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잘 살펴서 복잡하게 얽힌 세상을 관통하는 시스템적 사고와 접근이 필요하다.

정보화 시대에 개인의 정보 역량은 획기적으로 높고 사회는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역설적으로 불확실성과 시스템 리스크는 높아지는데 정책은 과거의 단순 인과적 시각에 머물러 있다. 개인의 자율적 역량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개인이 자신의 행위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각자의 행위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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