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는 전환의 시대를 가장 치열한 언어로 표현한 시인”
생명사상·예술 등 포괄적 논의
염무웅,“거대한 전환의 신호”
시 바탕으로 추모 공연 선보여
‘마지막 대담집’ 등 서적 출간도
“1960년대 말 김수영·신동엽이 잇달아 세상을 떠난 데 이은 김지하의 눈부신 등장과 신경림·이성부·조태일 등의 새로운 활약은 우리 사회와 문학 내부에서 거대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였다”
속초 출신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지난 6일 경기 성남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1주기 추모 심포지엄에서 이처럼 말했다.
8일은 김지하 시인이 별세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시인이 가졌던 미학의 표상인 ‘흰 그늘’은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감지했던 전 지구적 생명위기는 이미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며 교조적 가르침이 아닌 민중적 문화운동을 통해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였다는 것이다. 신명과 한, 포괄적 문명 미학을 펼쳤던 ‘흰 그늘’의 시인 김지하는 다시 평가돼야 한다.
자유를 위한 저항과 문화운동을 지나 생명사상을 전파한 김지하 시인 1주기 추모 심포지엄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이애주문화재단·한국비평문학회·한국종교학회 주최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재단 이사장, 백낙청 문학평론가 등이 참석, 시인이 남긴 사상과 문학에 대한 많은 질문을 남겼다. 뜨거운 열기 아래 예정된 시간을 한참 지나 끝난 행사에서는 문화운동과 생명, 실천을 비롯해 동학·담시·모심·신화·마고·화엄·율려 등의 키워드를 포함한 김지하 사상의 역동적인 리듬과 넓은 담론을 포괄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계속 진행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염무웅 평론가는 ‘김지하의 문학·예술과 생명사상’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에서 ‘시인 김지하가 이룬 문학적 성과와 유산’이라는 주제의 기조발제를 통해 “이 전환의 시대를 가장 치열한 언어로 대표한 것이 바로 김지하였다”며 그의 문학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설명했다.
임동확 시인은 ‘김지하의 초기 시 세계와 시론’을 통해 그의 초기시 ‘황톳길’부터 생명문학의 원형이자 동아시아의 생성론적 사유가 녹아들어 있다고,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는 김지하 시인은 문명의 위기를 돌파하는 문화 창의력의 담론을 미학적 모험에서 찾았다고 설명했다. 또 정지창 문학평론가는 민중문화예술운동을 중심으로 ‘오적’ 등의 담시를 펼쳤던 시인의 해학과 풍자를 창작판소리의 관점에서 평가했다.
‘김지하의 후기 시에 관한 생각’을 주제로 발표한 김사인 시인은 “시적 긴장에 미달하는, 두서없고 김지하답지 않은 허드레 넋두리로 읽히기 쉽다”면서도 “그가 마지막 시집까지 밀고 갔던 ‘허튼시’, ‘못난시’의 미학에 유념하며 다시 한 번 읽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지하의 정치적 고난과 생명사상의 태동’을 주제로 열린 7일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김지하의 글씨는 유려한 가운데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절절한 울림이 있다”며 시인의 미술세계를 조명했다. 특히 시인이 달마도를 자주 그렸던 이유에 대해 “동학과 불교가 서로 통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었다”며 “묵매와 달마를 거쳐 꽃과 모란에서 끝맺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붓끝에 모시는 마음을 담아 이 세상을 이야기하고 그의 사상을 설파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시인이자 위대한 현대 문인화가였다”고 평했다.
박맹수 원광대 명예교수는 동학으로부터 발원된 시인의 생명사상을 새로 자리매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인의 눈으로 본다면 동학은 진정한 복권을 이루지 못했다. 오랜 기간 사회경제사적 관점으로만 동학을 봐왔던 갑오농민전쟁론의 폐해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특별강연에 나서 김지하 재판의 막전막후에 대해 설명했고, 히라이 히사시 일본 교토통신 객원논설위원이 김지하 구원운동에 대해 강의했다.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모든 꽃들’이라는 주제로 노래가 된 김지하의 시 공연도 펼쳐졌다. 임동확 시인은 ‘황톳길’을 낭송했으며 임진택 명창은 김지하의 담시 ‘소리내력’을 판소리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김지하 시인과 관련된 서적 출간 등 다양한 추모사업도 이어지고 있다. 김지하시인추모문화제추진위원회는 지난해 말 김지하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글을 모은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을 열다’를 펴냈다. 시인과 가깝게 지낸 홍용희 문학평론가도 최근 ‘김지하 마지막 대담’이라는 책을 냈다. 방대한 김지하의 사상을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풀이하고, 그의 생명사상을 별도 해설로 덧붙였다.
주요섭 생명운동가는 ‘한국 생명운동과 문명전환’이라는 책을 통해 장일순 선생과 김지하 시인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운동 40년사를 정리했다. 책은 1982년 발표된 ‘생명운동에 관한 원주보고서’ 등을 다루고 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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