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도 피안성처럼 흑자 내도록… 의료 정의 바로 세우겠다"
위험이 크고 힘든 과는 보상이 적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과는 보상이 큽니다. 이건 정의의 문제입니다. 수가가 더 정의롭게 매겨질 수 있게 깃대를 세워보려고 합니다.
한국일보는 필수·지방의료 붕괴 현상으로 위기에 직면한 한국 의료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들어보기 위해 3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의사단체가 간호법 통과에 반발하며 부분 파업을 벌인 날이다.
본보 인터뷰에서 박 차관은 의료서비스 문제를 논의할 의료현안협의체가 당사자인 의사들의 잇단 불참으로 제대로 굴러가지 않자 "속이 상한다"며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바로 의대 정원을 늘려도 입학부터 전문의 투입까지 10년이 걸리지만, 지금 다른 문제(간호법 통과)로 발이 묶인 상황이다.
박 차관은 하지만 늦어도 내년 4월까지 어떻게든 의대 정원 문제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그는 "밥이 되려면 뜸을 들여야 한다"며 의료계와 갈등을 키울 수 있는 문제인만큼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지역을 돌며 지방에 있는 의사들과 젊은 의사들(전공의)을 만나며 정지작업을 할 계획이다.
박 차관은 지금의 의료 불균형을 고착시킨 '지불구조' 문제도 풀어 의료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에서도 흑자를 낼 수 있게 '사전보상제'(가칭)를 도입하고, 필수 의료 분야에서는 환자가 오지 않아 대기하는 것만으로도 수가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박 차관과 주고받은 일문일답.
"의대 정원 확대, 정부 의지 있다"
-'대구 구급차 뺑뺑이 사망 사건'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필수의료가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두 사건 모두 전문의 부족이 근본 원인입니다. 간호사도 너무 부족해요. 병원이 왜 인력을 적게 뽑는지 아시나요? 많이 고용하면 흑자가 안 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각종 수가 정책이 의료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현 제도 하에 운영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인력을 채용하니 당직도 자주 돌아오고 업무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요. 의사나 간호사들을 만나보면 다들 불행해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일단 의대 정원부터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의사들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근무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원 증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의대 정원 총수도 늘리면서, 동시에 의료기관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게 각종 수가 등 지불구조를 함께 고쳐야 합니다. 정부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간호법 논란으로 의료현안협의체가 답보 상태인데요.
"협의체 논의를 재개했지만, 구성원들이 간호법만 신경 쓰고 있으니 논의가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 속상합니다."
-의대 정원 시도는 이전 정부에서도 매번 실패했어요.
"정원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여건 개선이 정책 패키지로 함께 가야 합니다. (이전에는) 이걸 의료계와 공유하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할 수 있을까요? 국민들의 기대와 걱정이 커요.
"밥이 되려면 뜸을 들여야죠. 민주적 숙의 과정과 토론이 필요합니다. 하려면 바로 할 수 있지만 그럼 갈등만 커지죠. 사실 의사단체가 정원 확대에 적극 찬성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숙의 과정을 거쳐 '그래도 필요하니 드러누우면서 반대하진 않겠다' 이 정도까지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한다'는 로드맵이 있을까요?
"내년도(2024학년도) 입학 정원에 반영했다면 좋았겠지만, 교육부가 4월에 대학 정원을 확정하니 올해는 이미 끝났습니다. 내년 4월 전에는 결론 내려고 합니다. 2025학년도 정원에는 확대된 정원을 반영하려고 합니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의지가 있나요?
"그러니 복지부가 추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정도 늘리려고 하나요? 최소한 지금의 3,058명이 된 2006년 이전(3,507명)으로 되돌릴 수 있나요?
"지금 단계에선 숫자를 말하는 건 어렵습니다. 의료계와 공감을 이뤄야 합니다. 다만 객관적 근거에 의해 부족한 수요를 채울 정도는 돼야 합니다."
"피안성 전공의 TO를 더 늘려야"
의사들한테 '직장인보다 돈 많이 벌면서 왜 이렇게 힘들다고만 하느냐'고 지적하겠지만, 의사들은 '의사 그룹 안에서 벌어지는 격차'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고 있죠.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효과를 내려면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데요.
"의사들 안에서도 대학병원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①봉직의(페이닥터)와 ②개원의, ③개원의 안에서도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의사 세 부류로 나뉩니다. 이들 그룹 간 수입 격차가 너무 벌어진 게 문제입니다. 봉직의와 개원의, 개원의 안에서도 피안성 간 격차가 벌어질수록 진공청소기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집니다. 격차가 너무 벌어지지 않게,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인력이 빠져나가지 않게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피안성 쏠림 현상은 왜 점점 심해질까요?
"과거엔 의대를 졸업하면 대부분 전문의가 되려고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의대를 졸업해도 아예 전문의에 지원하지 않습니다. 바로 피부과로 가서 1, 2년 배운 뒤 단독 개원하는 거죠. '나는 그냥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전문의 자격 없이 일반의 개원의가 되는 겁니다. 피부과 개원의 중 90%가 비(非)전문의입니다. K팝과 한국 드라마 인기로 외국에서도 많이 찾고, 피부미용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느니 돈벌이에 좋지요. 의사들 안에서도 봉직의와 피안성 개원의 간 수입 격차가 너무 크니 자연스레 피안성으로 갑니다. 결국 피안성 미용산업 분야에도 인력이 적절하게 공급돼야 합니다."
-피안성을 레드오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이미 레드오션입니다. 피안성 수요는 엄청 많은데 (피안성의) 전공의 정원(TO)은 최근 몇 년간 비슷했어요. 이걸 늘려줘야 합니다. 수요가 늘어나는데 왜 공급을 안 늘리고 있나요? 그러니 다른 과 전공의를 끌어당기는 거죠. 반면 소아과 지원율은 25% 수준입니다. 지원을 안 하는데 TO는 많으니 낮을 수밖에 없죠. 피안성은 TO 늘리고 소아과는 줄여야 합니다. 그다음 전체 총량(의대 정원)을 늘려야 부족한 과에도 인력이 공급돼 피안성이 다른 과를 빨아들이는 힘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중환자실·외상센터에 미리 수가 지원
병원들이 인력을 가장 적게 쓰는 분야가 어딘 줄 아세요? 중환자실과 응급의료실, 외상센터입니다.
-필수의료과가 더 많은 전공의를 고용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병원들이 인력을 가장 적게 쓰는 분야는 다 적자 나는 분야죠. 가장 중요한 곳인데 적자라는 이유로 인력을 적게 쓰고 있다면, 이건 수가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죠. 한국 수가 제도는 기본적으로 행위별 수가제입니다. 어떤 의료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는 형태인데, 코로나 사태를 떠올려 볼까요? 그때 정부가 부족한 중환자실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병상을 비워 놓게 하고 아무런 '행위'가 이뤄지지 않아도 돈을 줬어요. 환자가 들어오면 추가로 줬고요. 이런 형태의 지불제도를 경험해 봤으니 중환자실에 대한 지불구조는 바꿔볼만 합니다. 내년에 시범사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때처럼 정부가 빈 병상을 사둔다는 건가요? 그걸로 지원이 충분할까요?
"1분기 필수의료 대책을 발표하면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제도(기존 의료 행위마다 수가를 매기지 않고 치료에 필요한 모든 행위를 한 뒤 추후 일괄 보상하는 새로운 지불제도)를 도입했어요. 소아진료에 대해 충분히 보상하는 방안이죠. 중환자실과 외상센터 등에 하려는 건 '사전보상 제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먼저 덩어리로 돈을 준 뒤 행위 수가를 또 지불해 1년이 지나면 중환자실을 운영해도 흑자가 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그러면 병원 입장에선 인력을 충분히 투입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응급센터, 외상센터는 별도 지원을 하는데. 무슨 차이인가요?
"한국 의료 구조는 흑자 나는 과가 적자 나는 과를 메우는 방식입니다. 병원 전체로 보면 그래도 흑자가 나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게 장기간 지속되면 적자 파트, 필수의료과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게 되죠. 이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응급의료센터, 외상센터, 심뇌혈관센터처럼 센터를 지정해 관련 수가를 주는 현 방식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불제도를 개선하려는 겁니다."
-덩어리 돈은 병상을 미리 확보하는 것 외에 어떤 곳에 쓰이나요?
"외상센터를 생각해 볼까요? 환자가 없다고 의료진이 일을 안 하나요? 환자가 언제 올지 모르니 수술 가능한 의사가 항상 대기해야 하죠. 그런데 (지금대로면) 하루 종일 환자가 안 오면 돈(수가)을 한 푼도 안 주죠. 이게 한 달이 지속되면 병원장들은 '의사들을 빼야 하나' 고민하는 거죠. 돈 주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필수의료 기피 원인 중 하나가 '소송 리스크'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행위별 수가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 외과 쪽,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수술에 대해선 결과만 반영하게 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중증수술은 수술하다 환자가 죽을 경우 의료소송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 리스크 요인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의료기관들이 중환자 수술은 할수록 손해이니 인력도 최소화하고 있죠. 외과 의사들은 수술 리스크도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나가는 등 근무 형태가 매우 열악합니다. 반면 영상의학과는 어떤가요. 워라밸이 좋고 리스크 부담도 없는데 돈은 더 받고 있습니다. 일이 어렵고 위험도가 높은 과는 보상이 적고, 피안성과 영상의학과는 보상이 큽니다. 이건 정의의 문제입니다. 정의가 바로 서지 않으니 의사들이 울분을 토하는 거죠. 정부는 수가가 좀 더 정의롭게 매겨질 수 있게 해보려고 합니다. 1년 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지만 어쨌든 깃대는 세울 겁니다."
-중환자실, 외상센터 사전보상제 시범사업은 언제 시작하나요?
"하반기에 다양한 지불제도에 대해 발표하려고 합니다. 병원의 핵심인 외상센터, 중환자실, 응급실 등 사람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는 더 이상 적자를 내지 않게 개편하겠습니다."
"3차병원이 경증환자 못 보게 할 것"
지금 응급실은 경증 환자가 너무 많아요. 응급실에 자기 발로 걸어가는 사람이 80%나 됩니다.
-지불구조도 문제가 있지만, 대형병원이 경증환자를 받는 것도 문제죠.
"우리가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할 때 중증환자 치료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평가하거든요. 이게 효과가 있어요. 대형병원이 경증환자를 계속 치료하면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에서 탈락할 수 있으니 2차, 1차기관으로 보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환자한테 그냥 가라고 하면 화를 내겠죠? 그럼 3차기관 협력병원에 보내면 됩니다. 일단 3차기관이 1, 2차로 보내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한 뒤, 중환자를 치료하면 수가를 더 주고, 경증을 많이 보면 깎으려고 합니다."
-지불구조를 바꾸면 병원만 배 불리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일선 의사들 사이에 있어요. 2009년 흉부외과는 수가를 100% 인상했지만 흉부외과 의사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거든요.
"수가를 올려도 전문의를 늘리지 않아 그런 거죠. '몇 명을 더 고용하라'고 하는 것보다 필수의료과 진료 비율을 지표로 제시하면 개선될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이 지표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 전문의를 더 고용하게 됩니다. 또 필수의료 중에서도 중증, 난이도 높은 치료에 대해선 점수를 더 많이 주고, 필수의료 기능을 잘할수록 추가 인센티브를 준다면 상급종합병원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중간 평가를 강화해 점수 미달 시 바로 상급종합병원 타이틀을 박탈할 수도 있어요. 다만 패널티보다는 잘하는 거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게 더 도움이 되겠죠."
"빅5 분원 확대, 수도권은 정부가 개입해야"
서울 빅5 병원이 분원을 계속 짓는데, 이러면 지방의료가 다 죽습니다.
-대형병원의 수도권 병상 확보 경쟁도 문제입니다.
"한국은 의료자원에 대한 계획이 너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인력과 병상은 같이 가야 합니다. 서울 빅5 병원(아산, 세브란스, 서울대, 삼성, 성모)이 수도권에서 분원을 계속 짓고 있어요. 병상 허가권자는 시도지사인데, 시도지사는 어떻게든 늘리려고 하죠. 복지부가 허가권을 갖고 올 순 없지만, 적어도 수도권은 복지부가 깊게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각에선 의대 정원과 함께 공공의대 신설 및 지역의사제(지방에 일정 기간 강제 복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국내에 의대 수는 많아요. 다만 정원이 40명 대인 의대가 17개나 됩니다. 40여 명이 내는 등록금으로 무수히 많은 전문과 교수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내실 있는 교육이 불가능하죠. 이런 상황에서 의대 신설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다만 지역의사제는 지역의 의료 질을 높이기 위해 해볼 수 있지만, 고민할 부분이 많아요. 지역할당으로 뽑힌 의대생과 그렇지 않은 의대생 간 신분이 나뉘는 게 현실입니다. 또 지역의 경우 신입 의사들, 숙련도가 떨어지는 의사만 많아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강제성을 띄는 것보다 지역 출신 의대생들이 남을 수 있게 지원책을 강화하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의사단체가 의료 정책에 반대하며 '진료 거부'를 하는 것에 국민 불만이 큽니다.
"단식이나 삭발은 투쟁 방식일 수 있지만, 국민에게 직접 피해가 가는 진료 거부는 해서는 안 됩니다. 의협이 노조도 아니지 않나요. 합리적인 방식으로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논의 테이블로 얼른 돌아오길 바랍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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