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단독주택살이의 낭만과 아파트

김경환 건설부동산부장 2023. 5. 8.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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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동작구 상도동의 단독주택에서만 살았다. 아파트에서 한번 살아보는 게 소원일 정도다. 1970년대 초반쯤 지어진 오래된 집에 제대로 된 수리를 하지 않다보니 단열은 전혀 되지 않는다. 겨울엔 오리털파카를 입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앉아 있어도 한기가 가시질 않는다. 겨울에도 추위 걱정없이 따뜻한 샤워를 해보고 싶은 게 조그만 소원이다.

물론 단독주택살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낭만도 있다. 봄이 되면 마당에 매실꽃이 피고 5월이면 장미꽃이 만발한다. 단, 5월 매실이나 늦가을 감을 수확할 시기가 오면 나무를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많은 열매가 열린다는 점은 단점이지만.

상도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저층 주거지 중 하나다. 교통이 편리해 서울에서도 오래전 사람들의 주거지로 선택된 지역이다보니 단독주택과 빌라가 대부분이고 아파트가 많지 않다. 서울의 1970년대 표준 택지개발로 개발돼 30~50평대의 아담한 대지에 기와가 있는 전형적인 모습의 1층 단독주택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지역엔 100평이 훌쩍 넘어가는 고급 주택가도 있었다. 마당에 정자가 있고, 실내 수영장이 있는 그런 집들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때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집에 실내 수영장이 있어 입이 떡 벌어졌던 기억이 있다. 햄버거, 피자도 그때 처음 맛봤다.

예전엔 단독 주택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 있었다. 각 주택의 마당엔 많은 나무들과 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골목을 걸어 다니다보면 온갖 꽃은 다 볼 수 있었다. 나무들이 울창해 여름엔 동네자체가 수목원 같은 느낌을 줬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빨랐다. 표준 주택들은 20년전쯤 반지하에 2층, 옥탑방까지 갖춘 집들로 재탄생했다. 임대를 주기 위한 집의 전형적 형태다. 최근 트렌드는 또 달라졌다. 집을 2~4채씩 매입해서 빌라를 짓는 사례다. 예전 대저택이 있던 자리는 이미 빌라촌으로 변모한지 오래다. 대저택에 살던 사람들은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 반포나 압구정 등 강남 지역의 아파트로 이사갔다는 후문이다.

동네에서 나무를 볼 일도 없어졌다. 새로 지은 집들은 마당을 콘크리트로 다져 나무를 심지 않는다. 빌라도 나무를 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집 반경 50m 지역에선 이젠 나무를 볼 수 있는 집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삭막한 빌라촌 풍경 속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유일한 오아시스인 셈이다. 물론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수십장 사서 끝없이 쓸어 담아도 또 떨어지는 낙엽의 존재는 문제다. 우리 집마저 나무를 없앤다면 이 동네는 얼마나 삭막해질까란 생각이 종종 든다.

최근 주택을 관리하기 힘들어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 가려고 알아본 적이 있다. 하지만 금방 포기했다. 집을 판 돈으로 소형 아파트로 이사가기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집을 팔아 그 돈으로 주변 30평대 아파트로 이사 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아버지께선 이젠 이사는 포기하고 불편해도 지금 살고 있는 단독주택에서 평생 사실 생각을 하신다.

최근 아파트가 역대급으로 치솟은 급등장을 거치며 주택시장은 부동산 불패 신화에 빠져 투자 또는 투기의 장으로 변질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집값이 역사적 고점에서 하락했지만 "지금 사야 돈 번다" 등 투자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닌 사는(Live) 곳이 돼야 한다는 지론이다. 주택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정부 정책도 변화해야 한다. 임대시장을 하루빨리 정상화하고 주택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주택 시장의 변화를 이끌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그때그때 처방에만 매몰돼 단기적 처방에만 급급했는지 차분히 되돌아볼 시기다.


김경환 건설부동산부장 kenny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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