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도덕적 강자’로 日 총리를 맞이하자

임지현 서강대 교수 2023. 5. 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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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희생자 폴란드, 日 제국주의 피해자 한국
이런 기억들은 난공불락… 부정될 때 실존 위태롭다 느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희생자가 가해자 먼저 다독이면
세계 시민사회는 한국을 ‘도덕적 강자’로 보게 될 것

외교의 풍경이 달라졌다. ‘국익’을 앞세워 권력 엘리트가 독점하는 외교 시대가 끝났다. 시민사회가 외교의 행위자로 나서는 ‘공공 외교’는 21세기 국제 관계의 새 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독특한 문화적 매력과 세계주의적 가치를 통해 세계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으려는 공공 외교의 중요성은 작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는 바와 같다. 글로벌 시민사회가 등을 돌린다면, 그 전쟁은 이겨도 진 전쟁이다.

푸틴은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인과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협력한 사실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침략 명분으로 내세웠다. 파시즘의 계보를 잇는 우크라이나 현 정권 응징은 히틀러에 대한 스탈린의 전쟁과 같다는 의미였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유대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자기 정부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극단적 민족주의와는 다름을 분명히 했다. 파시스트 성향 민족주의 지도자이자 나치 협력자 스테판 반데라를 우상화하는 역사 수정주의에도 일정하게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의 ‘국뽕’ 역사 서술에 대한 유럽연합, 폴란드, 이스라엘 등의 반발을 고려해서 절박한 전쟁 와중에 펼쳐진 젤렌스키의 ‘기억 외교’는 더욱 돋보인다. 덕분에 러시아와 벌이는 기억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먼저 이기고 들어갔다.

기억 외교가 공공 외교의 새로운 화두로 부상한 것은 더 최근 일이다. 전통적 ‘국가 안보’ 못지않게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는 ‘실존적 안보’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그 밑에 있다. 국가 안보가 국익에 대한 이성의 정치를 요구한다면, 실존적 안보는 국민 정서를 보듬는 감정의 정치를 소환한다.

일본 식민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라는 한국인들의 집단적 기억, 전대미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이스라엘인들의 기억, 지구 상에서 유일무이한 원자폭탄의 희생자라는 일본인들의 기억, 단위 국가로는 나치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는 폴란드인들의 기억 등은 난공불락이다.

이들에게 이 기억은 과거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실존을 지탱하는 보루다. 그 기억이 손상되거나 부정당할 때, 이들은 자신의 실존이 위태롭다고 느낀다. 윤 대통령이 방일 기간 중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와 재계의 책임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격렬한 감정적 비판과 더불어 지지율이 급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개개인에게 가야 할 배상금을 국가가 가로채서 경제 개발을 위한 자본으로 전용했으니 그 기금으로 성장한 포스코 등이 배상한다는 해결책은 그 나름대로 논리적이다. 그러나 정치는 법리가 아니다. 또 국익을 위해 내가 용단을 내렸으니 따라오라는 식의 태도로는 실존적 위기에 빠진 국민 정서를 보듬기 어렵다.

징용공을 착취한 일본 기업의 배상과 일본 정부의 사과가 빠진 데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는 일제의 희생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당사자에 대해서도 수개월 설득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국민에 대한 설득도 부족했다. 추후 징용공 생존자 15명 중 10명이 이 배상안을 받아들인 걸 보면, 더 아쉽다. 대통령실의 생각과 태도가 너무 낡았다.

기억 외교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화해와 동맹을 위해서는 자민족 중심 역사를 벗어나 국경을 넘어 공유할 수 있는 기억과 역사가 필요하다. 길고 힘든 과제다. 또 한국의 기억 문화가 변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자기들이야말로 서양 제국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라며 사과에 인색한 일본 사회의 기억 문화도 같이 변해야 한다.

미래를 향한 동아시아의 기억 외교를 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담대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구매력 대비 한국의 소득 수준이 일본을 넘어선 올해야말로 좋은 기회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자신감 위에서 머쓱한 과거 가해자의 등을 먼저 다독인다면, 세계 시민사회에 비칠 희생자의 모습은 비굴한 약자가 아니라 도덕적 강자이다. 주저하는 독일 주교단을 먼저 용서하고 또 용서를 구한 1965년 폴란드 주교단의 사목 서신이 보여주는 바, 그것은 가해자의 사과를 끌어내는 고도의 수법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도덕적 강자의 새로운 모습으로 기시다 수상을 맞이해서 기억외교의 새 장을 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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