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균형정책 지역민이 나서야
지역민이 균형정책 주인…균형발전 퇴보 저지해야
‘자력 정의 정성 사랑’. ‘이순신 연구자’로 유명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장군의 리더십으로 꼽은 4대 핵심요체이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해전사의 승장으로 평가받는다. 이순신 장군의 불가사의에 가까운 승전비법을 찾는 국내외 논문이 쏟아진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대중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도 이순신 장군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며 김 전 헌법재판관은 아쉬워한다. 김 전 헌법재판관은 이순신 장군의 초인적 힘의 원천을 ‘인격의 리더십’(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시루)이라고 평가한다.
임진년의 조선 한양이 뚫리는 과정은 열패감에 젖은 군주, 당쟁에 빠진 조정, 각자도생의 백성이 외침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준다. 바다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은 무엇이 달랐는가에 대한 김 전 헌법재판관의 탐구가 낸 결론이 4대 핵심요체이다.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지원없이 병사를 먹이고 군선과 화약을 마련했다. 공직자로서 사명을 흔드는 불의한 유혹은 한칼에 내쳤다. 나라와 백성을 보전하기 위한 정성 없이는 불가능한 승전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나라와 백성을 향한 사랑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순신 장군의 전승은 지역과 지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영화 ‘명량’과 ‘한산’은 이순신 장군의 의지와 지략, 전술 못지 않게 전쟁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민초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판옥선에 쓸 나무를 베고, 거북선을 짓고, 노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준비를 위해 의병이 시간을 벌었다는 사서의 기록이 있다. 이순신 장군 리더십이 백성과 장졸의 믿음을 얻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만일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어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곡창인 호남을 방비하고 서해 뱃길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강조한 것이다. 이 말은 지금도 국가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된다. 수도권만으로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을 대변한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은 특정 정당이나 정파가 불쑥 꺼낸 게 아니다. 왕조시대에도 정권안정이든, 세수증대든 다양한 이유로 현대적 개념에는 못 미치지만 균형정책은 있었다. 우리 헌법 제123조 2항은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국가는 정부를 말한다. 87년 헌법체제 이후 여야가 번갈아 집권하며 정책을 추진한다. 어느 한쪽의 정책은 아니란 뜻이다. 2018년 세종시 세종호수공원 바람의 언덕에 마련된 국가균형발전 상징공원에는 역대 대통령의 균형발전 어록을 새긴 벤치가 있다. 여기에는 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도 있다. 균형발전정책 추진 의지와 성과가 역대 대통령마다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종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통한 혁신도시 건설 등으로 균형발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가 걸린 정책을 특정정당이나 정파가 전유물인양 취급하면 정책의 안정성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
균형발전정책의 두 축은 자치분권과 수도권 규제이다. 자치분권은 지방정부의 행정권과 재정권을 확대하는 것으로 자치경찰제나 재정분권 조치에서 보듯 더디지만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수도권과밀화 방지대책이 무력화되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 경제위기 극복대책이라며 수도권 대학 증원과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는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를 내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정부가 경제위기를 핑계로 비슷한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기업들은 경기부진이 오면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학습했다. 지방투자가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여당은 야당이 특허권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는 균형정책에서 고개를 돌린 듯 하다. 정책추진 효과를 야당이 쓸어 담을 것이라는 기우도 엿보인다. 균형발전을 외치던 야당은 이번에 입을 닫았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도 야당은 어깃장을 놓은 적이 있다. 여야 모두 수도권 눈치를 보고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서울 언론들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내세워 수도권 규제 완화를 더 확대하라고 요구한다. 반도체 공장을 수도권에 지어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합리적 근거는 없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비수도권 반도체 공장은 가능하다. 쉽고 편한 길은 균형발전의 반대편으로 향한다. 균형발전은 어렵고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지역민들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 중에 ‘자력’을 되씹어야 한다. 균형발전은 결국 지역민의 몫이다. 그래서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내년 4월이 다가온다.
손균근 서울본부장·㈔한국지역언론인클럽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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