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추앙, 그 낯설고 새로운 언어의 매혹

최정란 시인 2023. 5. 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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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시인

낱말 하나가 같은 세계를 다르게 보여줄 때가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추앙’이라는 말을 만났다. 사전적 의미는 “높이 받들어 우러르다”지만 이 드라마에서 추앙은 사랑을 대체한 말이다. 일상적인 평범한 말이 낯선 맥락에서 새롭게 쓰여 작품을 견인하는 큰 힘을 발휘한다. 이 드라마는 낱말 하나를 대체함으로써,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다.

추앙이라는 낱말 하나가 툭 던져졌을 뿐인데, 먼지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처럼 드라마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미장센이라 할 것 없는 화면 속 서울 외곽 주변부 공간과 특별할 것 없는 경계 밖 인물들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시청자는 영화 속 캐릭터들을 언급하기 시작하고, 추앙의 당사자인 구 씨는 조연으로 출연한 다른 영화까지 주목받게 만드는 매력적인 스타가 된다. 나는 시리즈 전체를 끝까지 정주행 시청하고도 모자라, 박해영 작가의 다른 드라마 ‘나의 아저씨’ 시리즈를 정주행 완청한다. 3박4일 밤낮을 눈이 빨개지도록 자다깨다 티비 앞에 기꺼이 묶여있다.

오랫동안 사용돼 왔고, 여전히 귀하고 유효하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귀하고 유효해야 하겠지만, 사랑이라는 기표는 너무 오래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돼 얼마간 때 묻고 너덜너덜해졌다. 사랑이라는 기표에게도 휴가가 필요할 것이다. 다른 적절한 표현이 없을까. 유니크한 진정성, 이번 생에 단 한 번, 아니 1000년 만에 한 번일지 모르는 사랑이 고객 응대 매뉴얼과 같은 기표로 표현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작가는 최선을 다해 궁리했을 것이다.

사랑과 존중은 청실홍실로 서로의 손목을 묶고 함께 간다. 사랑 없는 존중 없고 존중 없는 사랑 없다. 그렇다면 사랑과 존중을 합한 말에 플러스알파의 시너지 효과가 덧붙는 말, 도래할 미래를 새롭게 열어줄 입체적 말은 뭐가 있을까. 이끼 낀 뭉툭한 사랑의 바위를 에돌아, 사극 속 은혜와 연모와 사모와 하룻밤 성은과 종교적 자비와 은총의 강물을 건너, 아가페와 에로스와 필리아의 산을 넘어, 작가는 가장 적절한 낱말을 궁리 또 궁리했을 것이다. 뮤즈가 선물했을까. 잠결 무의식을 열어젖혀 잠꼬대로 얻었을까. 고뇌 끝에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치며 욕조를 뛰쳐나왔을까.

“저는 어떻습니까?” 어느 고요한 밤 중절모를 쓰고 신사복을 입은 ‘추앙’이 문을 똑똑 두드렸을지도 모른다. 사랑과 존경을 내포하는 추앙은 드라마 속 평범한 청년들의 사랑을 숭고로 끌어올린다. “나를 추앙해요. 봄이 되면 변할 거예요.” 너라는 주체가 아니라 나라는 객체를 목적어 자리에 둔 이 명령은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가. 내가 너를 추앙한다는 말은 생략되지만. 너를 사랑해 라는 말보다 얼마나 신선하고 강력한 고백인지. 추앙은 다음에 따라올 변화의 동력이 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옛 영화 대사에서 사랑의 변화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이다. 이런 사랑은 수동적 사랑이고, 굳어있는 고체적 사랑이다.

추앙은 옛 영화대사를 뒤집는다. 추앙은 변화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꺼이 변화를 반기고,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변화를 일으키기를 희망한다. 이 변화는 추앙받고 추앙하는 동안 서로를 성장 발전시키는 긍정적 변화다. 추앙은 액체적 사랑이고 살아있는 사랑이다. 살아있는 사랑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를 변화시킨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추앙하기만 해도, 겨울 지나 봄이 오듯 무감각과 무기력의 얼음이 녹고 싹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이 변화는 성장이자 방향의 전환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가 약자, 사랑받는 자가 강자가 되는 플라톤의 ‘향연’의 다음 페이지는 이렇게 쓰여져야 할 것이다. 추앙에는 강자와 약자가 따로 없다. 추앙은 서로를 성장 변화 발전시킨다. 추앙하는 자도 추앙받는 자도 모두 승자이다. 추앙은 서로를 환대하고 변화를 환대한다. 추앙의 실천인 배려와 환대가 어찌할 수 없는 습관과 권태에 갇힌 영혼을 활짝 꽃 핀 자유와 해방의 열린 세계로 이끌 것이다. 언어가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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