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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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은 대부분 음악을 통해 삶의 구원이나 그 어떤 궁극적 이상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떤 작곡가들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을 남기고 있다.
음악교육으로 유명한 칼 오르프의 '어린이를 위한 음악'도 그가 추구했던 음악언어를 실현하기 위한 어린이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단순한 타악기들로 작곡된 곡으로 '카르미나 부라나'와 함께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는 역시 동물을 음악으로 의인화한 곡으로 사실 처음부터 그 대상을 어린이로 정하고 만든 곡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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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은 대부분 음악을 통해 삶의 구원이나 그 어떤 궁극적 이상을 추구한다. 베토벤이나 바흐에겐 음악은 신에게로 가는 중재자이기도 하다. 즐겁고 밝은 곡도 있지만 그들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비장하고 장엄하며 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곡가 힌데미트는 음악의 여러 기능 중에서 의식이나 여흥 등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고 또 대상도 고려한 그런 합목적적인 음악도 작곡가가 만들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어떤 작곡가들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을 남기고 있다. 바르토크의 피아노곡집 ‘미크로코스모스’나 바흐의 ‘인벤션’ 등은 자신의 아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작곡됐고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은 청소년들에게 관현악 악기의 음색과 특성을 교육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음악교육으로 유명한 칼 오르프의 ‘어린이를 위한 음악’도 그가 추구했던 음악언어를 실현하기 위한 어린이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단순한 타악기들로 작곡된 곡으로 ‘카르미나 부라나’와 함께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런 곡들은 모두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작품들이다. 어린이날이면 늘 단골로 연주되는 곡이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다. 해설과 함께 전개되는 이 곡은 음악으로 구연되는 동화라고 볼 수 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 다 듣기에 좋은 곡이다.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는 역시 동물을 음악으로 의인화한 곡으로 사실 처음부터 그 대상을 어린이로 정하고 만든 곡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류의 표제적이고 성격이 가벼운 곡들이 흔히 아이들을 위한 감상곡으로 많이 인용된다.
슈만은 특히 ‘어린이 정경’ ‘어린이 앨범’ 등 본격적인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소품을 많이 남겼는데, 바로 유명한 트로이메라이가 어린이 정경의 제7곡이다. 슈만은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곡”이라고 말했다. 음악학자 베르너도 이 곡을 “젊은 마음을 간직한 어른들을 위한 곡집”이라고 평했다. 그래서 동요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의 노래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불렀던 동요들은 그렇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막상 그때는 모르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그 노래가 생각나고 가슴이 아련한 것은 왜일까. 사실 동요를 작곡하는 것은 다 어른들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이전만큼 동요를 많이 부르지 않는다. 다른 노래가 많기 때문이다.
음악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우리가 어릴 적 불렀던 전통적인 동요들은 대부분 해방 전후에 나온 곡들이다. 그런 노래들의 정서를 지금 시대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강요할 수는 없다. 최근의 창작동요 경향들을 보면 대략 네 가지 유형이 있다. 흔히 익히 아는 서정적이고 전통적인 동요풍이 있고, 애니메이션 주제가 같은 경쾌하고 발랄한 풍, 뮤지컬이나 팝 같은 가요풍, 대장금의 주제가 같은 국악풍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가요풍이나 애니메이션 노래 등에 훨씬 흥미를 보인다. 사실 가요와 동요의 구분도 무의미한 곡이 많다. 동요의 전형이 뭔지, 정체성이 뭔지 정답도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특히 감각적인 상업음악에 여과 없이 노출돼 있다. 어른들의 노래인 트로트를 청승맞게 부르는 어린이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우려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떤 균형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쓴 약이 몸에 좋은 것처럼 다소 무겁고 어려워도 클래식 음악이 좀 더 병행되면서 아이들의 음악적 판단력과 감수성이 길러져야 한다.
슈만은 비평을 통해 당시의 경박한 음악과 그런 유행의 풍조를 늘 비판해 왔다. 그의 ‘트로이메라이’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고집처럼 어린이를 위한 음악의 전형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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