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갈등하는 눈동자] 누가 책 만드는 사람들을 밀어내는가
서점에서 몰래 독자를 기다려본 적이 있다. 내가 쓴 소설이 놓인 매대 옆을 서성거리면서 말이다. 주말의 대형 서점엔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으나 내 책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다가오다가 금세 멀어져버리는 이들을 응시하다 보니 동공이 자꾸 흔들렸다. 책은 조용히 기다리는 운명을 지녔음을 그날 이해했다. 읽힐 때까지. 만날 때까지. 그러나 마침내 독자가 나타난다면 책은 결코 한 사람만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9년을 작가로, 5년을 출판사 대표로 지냈다. 여전히 서툴지만 출판 생태계에 관해 부단히 배우고 있다. 출판은 독자를 향해 헤엄치는 일이다. 독자란 다른 이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이자 책과 함께 고독해지고 충만해지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최대한 좋은 것을 바치고 싶은 기술자들이 출판계에서 일한다. 종이책 독자가 급감했다는, 출판은 이미 저물어가는 산업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해진 지도 10년이 넘었건만 나는 비관할 수가 없다. 그러기엔 훌륭한 출판인들과 훌륭한 독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쓰려는 사람은 많아지고 읽으려는 사람은 적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현상은 희망적이기도 하다. 쓰는 사람은 읽을 수밖에 없으므로. 읽지 않고 좋은 글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열렬한 독자였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 쓰면 쓸수록 독자의 존재가 사무치게 귀해졌다. 그 마음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도 자연스레 옮겨갔다.
출판 생태계 훼방놓는 마포구청
출판은 다양한 노동자의 품이 드는 작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책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마포구 한가운데에 자리한 ‘플랫폼P’를 알리고 싶다. 이곳은 책 곁에서 일하는 다양한 작업자를 위해 설립된 창작 센터다. 수십여명의 출판사 창업자, 작가, 번역가, 디자이너, 편집자 등이 입주하여 일한다. 나는 이들이 만든 좋은 책들을 수두룩하게 알고 있다. 책들이 탄생된 배경에는 플랫폼P가 꼼꼼히 지원한 물리적 정서적 예술적 자원이 있었을 것이다. 센터의 운영은 매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처럼 유수의 작업자들이 모인 훌륭한 센터의 운영을, 마포구청이 마비시키고 있다. 플랫폼P는 2020년 마포구 조례에 의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그런데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플랫폼P를 폐쇄하고 지원을 중단하려 한다. 마포구가 왜 모든 출판인을 위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느냐고 묻는가 하면, 마포구 말고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울시에 지원금을 요청하라고 선을 긋는다. 전형적인 편 가르기 프레이밍이다. 마포구 주민의 이익을 위한 예산 집행이라는 듯이 위선을 떨지만, 플랫폼P에 입주한 출판인의 다수도 마포구 구성원이다. 또한 마포구 거주자가 아니더라도 마포구에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을 내고 직원을 늘려가는 소중한 창업자들이다. 마포구엔 출판사뿐 아니라 출판과 연관이 깊은 인쇄 업체도 많고 크고 작은 서점도 많다. 2010년 서울시가 디자인, 출판특구로 지정한 이래 나름의 역사를 쌓아온 지역이다. 그런 마포에서 출판인들을 대거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밀어낸 뒤 일자리센터를 세운다고 하는데, 플랫폼P는 이미 일자리 창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다. 센터장 김현호의 말처럼 출판은 수많은 산업을 견인한다. 다양한 사업체가 출판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입주자 협의회 회장을 맡은 디자이너 조현익은 “이러한 성과와 협업을 이뤄낸 플랫폼P가 한순간에 없어지고 출판인들이 그냥 흩어지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출판인들의 연대에 동참한다
긴 시간 책상에 앉아 이미지와 문장을 치열하게 세공하던 출판 노동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포구청의 몰이해한 행정 집행에 맞서 플랫폼P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들의 지속적인 간담회 요청에도 구청장은 응하지 않았다. 플랫폼P의 출판인들은 당장 눈앞에 쌓인 생업을 해내면서도 센터를 정상화하려는 투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입주 기간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도 말이다. 출판계를 향한 책임감과 애정 때문일 것이다. 에디토리얼 출판사를 운영하는 최지영 대표는 “작은 출판사가 만들지 않으면 결코 세상에 나오지 않을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며 “우리는 책을 통해서 가장 정갈하고 좋은 언어를 배운다”고 강조했다. 딸세포 출판사 김은화 대표는 “독자들이 다양한 책을 누릴 수 있도록, 출판계 다양성을 위해 작은 출판사를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멀쩡한 생태계에 엄한 짓을 하는 건 못난 행정부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마포구청은 마포구 일대를 시뻘겋게 칠하는 ‘레드 로드’ 프로젝트에 쓸 돈은 있고, 출판 진흥을 위해 쓸 돈은 없는 행정부다. 구청장은 서울시의 작은도서관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마포중앙도서관 송경진 관장을 파면하기도 했다. 책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수장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본다. 그러나 출판인들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혹은 시대를 뒤바꿀 언어를 유통하는 노동자들이다. 서울시와 마포구가 책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위력을 진정으로 알기를 바란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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