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더 라스트 오브 어스’ ‘아케인’… 게임 캐릭터가 장악한 스크린

전남혁 산업1부 기자 2023. 5.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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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에 뛰어든 게임사
《빨간 모자와 콧수염이 인상적인 2등신 캐릭터, 하늘 높이 점프해 벽돌을 부수고 나오는 각종 아이템, 빌런을 피해 카트를 타고 달리는 레이싱…. 게임 화면으로 익숙한 닌텐도의 슈퍼 지식재산권(IP) ‘슈퍼 마리오’가 영화 스크린에 등장했다.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이야기다.

게임 속 IP를 활용한 영화·드라마가 관객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게임회사들은 IP를 빌려주는 것을 넘어 직접 제작사를 차리며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확장을 도모하는 중이다. 하지만 게임 업계에서 엔터테인먼트나 블록체인 등 이종 산업에 뛰어들다가 고군분투를 겪는 일도 있다. 일각에서는 “본질인 게임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 ‘몰입감’ 무기로 영상화 나서는 게임 IP

전남혁 산업1부 기자
게임 IP를 활용한 영화와 드라마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개봉 초반 ‘게임 광고를 보는 것 같다’며 평론가들 사이에선 혹평도 나왔지만, 오히려 거대한 스크린으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몰입감과 익숙한 캐릭터에 대한 향수를 무기로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에 슈퍼 마리오가 있다면, 드라마엔 ‘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있다. 동명의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스테이션 IP를 원작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올해 1월 미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HBO 맥스에 공개한 직후 시청자 수 1000만 명을 넘기는 등 신드롬급 인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게임 업계에서는 게임 그래픽과 엔진이 고도화되며 자체적으로 영화 수준의 연출이 가능해지는 등 게임 자체적인 질적 성장이 영상화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OTT 채널이 우후죽순 쏟아지며 미디어 업계에서 IP 수급 경쟁이 치열해진 것, 채널 다양화가 시청층 다양화로 이어지며 IP의 영상화 장벽이 낮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46주간 넷플릭스 정상을 차지하던 ‘오징어게임’을 밀어낸 것도 ‘리그 오브 레전드’ IP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드라마 ‘아케인’이었다. OTT 업계 관계자는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의 발달로 게임의 주 무대인 판타지 공간, 우주 등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게 실사 영상에서도 가능해졌다. 전반적으로 OTT 업계에서 게임 IP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게임이 영화, 드라마 등에 비해 뛰어난 몰입적 요소가 차별화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핵심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소설이나 영화가 작가의 서사에 의해 선형(線形)으로 나아가는 스토리 라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게임은 여기에 더해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투영되며 매몰되는 특징이 있다. 게임은 세계관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속성이 (타 매체에 비해) 강하다”며 “최근 영화 제작자 사이에서도 게임의 이러한 상호작용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직접 영화 만들겠다”며 콘텐츠 제작사 인수 나선 게임사

게임 IP에 대한 수요에 힘입어 게임사들은 직접 영상화 조직을 꾸리거나, 각종 미디어 기업에 대한 투자·인수합병을 단행하고 있다. 보유한 IP를 다양한 매체로 확장시키는 것을 넘어, 회사가 스스로 여러 IP를 제작하는 식으로 변화에 나선 것이다. 소니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자사 IP를 영화·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영상 프로덕션 스튜디오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의 설립을 발표했다. 이후 영화 ‘언차티드’가 전 세계적으로 4억 달러의 수익을 거뒀고 ‘더 라스트 오브 어스’까지 성공이 이어지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은 ‘갓 오브 워’, ‘호라이즌’, ‘그란 투리스모’ 등 자사의 다양한 핵심 IP들을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과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다.

드라마 ‘아케인’의 기반이 된 ‘리그 오브 레전드’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도 이 드라마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포티셰 프로덕션’의 지분을 확보하며 영상 제작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나섰다. 이 회사는 드라마뿐 아니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주요 시네마틱 영상물을 제작한 업체다. 현재 양사는 ‘아케인 시즌 2’를 제작 중이다.

영상화 사업에 뛰어든 건 해외만의 사례는 아니다. 국내 게임사들도 수익모델 다각화와 IP 확보를 위해 영화·드라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코리아는 지난달 5일 개봉한 영화 ‘리바운드’의 제작 투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미래에 게임회사가 생존하려면 필수적으로 IP를 확보해야 하고, IP는 게임 타이틀이 아닌 ‘스토리텔링’”이라며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게임과 웹툰, 소설, 영상 등 콘텐츠를 만들며 진화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회사가 될 수 있다”고 투자 이유를 밝혔다. 넥슨은 지난해 초에도 ‘어벤져스’ 등을 연출한 루소 형제의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AGBO에 투자를 단행하며 영화와 TV 시리즈 제작을 준비 중이다.

컴투스도 2021년부터 다양한 콘텐츠 제작사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하며 종합 콘텐츠 회사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 ‘신병’ 등 인기 콘텐츠를 제작하며 성과를 냈다. 컴투스는 그룹의 글로벌 IP를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확장하고, IP를 게임 영역으로 끌어오는 선순환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기 캐릭터 ‘진도준’이나 신병의 ‘성윤모’ 등이 게임 IP로 활용될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게임사들이 투자에 나선 데는 단순히 IP를 ‘원소스 멀티유스’로 확장하는 것 이상의 배경이 있다. 자사의 게임 제작 노하우를 영화·드라마 제작에 활용하고, 반대로 영화·드라마에서 습득한 새로운 제작 방식을 게임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유명 영화 스튜디오에 게임사 인력이 투입된다면 그들의 우수한 제작 노하우를 학습하는 등의 협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잇단 규제로 수익모델 다각화…‘게임 본질에 집중’ 시각도

올해 상반기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게임법이 개정되고, 블록체인·가상화폐 기술을 게임에 접목한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돈버는 게임)’ 게임이 사행성을 이유로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등 게임 업계의 수익모델에 대해 입법부와 사법부에서 잇단 제동을 걸고 있다. 이에 영상화 산업으로의 진출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본업에 집중해야 장기 레이스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를 만들었다가 2년 만에 에스엠 자회사 ‘디어유’에 회사를 매각한 엔씨소프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게임 사업을 넘어 엔터 사업까지 손을 뻗었지만 아티스트와 각종 연예 기획사 등을 보유하며 시너지 효과와 사업 효율화가 확실한 기존 엔터사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과거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나아가려는 회사의 목표와 방향성도 ‘게임 본질에 집중’으로 수정됐다.

블록체인·가상화폐 기술을 통해 게임 P2E 시장을 개척한 위메이드도 가상화폐 시장 태동기에 잇단 규제로 국내 시장에서는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게임 본업의 펀더멘털이 흔들리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혁 산업1부 기자 forwa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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