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방송의 독립성, 감사원의 독립성
사회의 제반 권력은 언론의 본질적 기능인 비판, 감시, 견제 행위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론을 통제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진다. 쿠데타 세력이 방송사부터 장악하는 이유다. 하지만 제대로 된 민주 권력이라면 언론과 긴장 관계는 유지하되 언론을 통제하려는 반민주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결국에는 그 의도가 드러나고 주권자인 민주 시민으로부터 배척되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 정권들은 물론 구성원들의 의사에 반해 공영방송을 침탈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말로가 어땠는지 우리는 목도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이 방송사와 방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장기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원의 장기 감사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감사원은 KBS의 소수노조인 KBS노조와 일부 보수단체들이 제기한 국민감사청구를 6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 규정을 어기며 세 번에 걸쳐 감사 기간을 연장했다. 하지만 5월1일 발표된 감사원의 ‘한국방송공사(KBS)의 위법 부당 행위 관련’ 감사 결과는 청구인이 주장하는 위법 사항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감사 청구 내용이 결론을 내리는 데 꼭 필요한 자료 접근이 어려운 것도, 법리적으로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7개월가량 결과보고서를 내놓지 못했다. 정부의 방송 장악 일정에 맞추려 했다는 의혹을 야기했다. 정치 감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의혹을 가중시키는 것은 감사원이 3월부터 공정언론국민연대라는 보수단체의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감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송문화진흥회가 감사 청구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민감사청구는 ‘공공기관의 사무처리가 법령위반 또는 부패행위로 인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에 한하고 있다. 이번에 감사 청구된 사항들은 방송문화진흥회의 문화방송 경영 관리 감독의 부실에 관한 것인데,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관리 감독 부실에 방송문화진흥회의 법령 위반, 부패 행위가 있지 않는 한 감사 청구 대상이 아님을 무시한 것이다. 결국 감사원은 또다시 무리한 감사권 남용을 감행했다. 감사원이 방송문화진흥회를 통해 문화방송을 압박하는 방송장악의 선봉에 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방송의 독립성은 물론 감사원이 지켜야 할 자신의 독립성까지 해치는 일이다.
감사원은 헌법기구이다. 국가 통치에 꼭 필요한 ‘독립적’ 감사 업무를 수행하는 헌법 기관이다. 그렇기에 감사원법 2조 1항은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하에 두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였다. 법은 감사원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다. 국가 사무를 공정하게 감사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데 꼭 필요한 독립성은 이제 감사원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이미 정치적이라 평가받은 감사원장이나 사무처장은 그렇다 쳐도 감사원법 8조에 따라 신분보장을 받고 있는 감사위원, 헌법기구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감사원 공무원들은 지금 감사원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문옥이라는 감사관이 있었다. 1989년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 실태 감사 때 감사반장을 맡았다. 그리고 1990년 대기업의 로비로 감사가 중단된 상태를 언론에 공개했다가 파면됐다. 그 후 6년6개월간의 법정 투쟁 끝에 무죄를 선고받고 감사원에 복귀했다. 이문옥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지키려 그 고난을 견뎌냈다. 지금의 감사원 구성원들은 이문옥을 자랑스러워 할까? 아니면 감사원의 독립성을 주장하다 고난을 겪은 이문옥 선배처럼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을까? 그리고 방송 장악이라는 정략적 목표를 위해 헌법기구의 독립성까지 침해하는 정권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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