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한 바닥의 바다를 읽다
목욕 의자에 앉은 남자에게 매달려 비누질한다
입 안 구석구석 칫솔질한다
파랑 치는 바다가 백사장에 흰 거품을 뱉는다
면도도 해 주고
뒷일 본 거기도 닦아 준다
폐그물에 뒤엉킨 부표가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힘드시겠어요
말년에, 복 터졌지 뭡니까
저 양반 거시기를 물리도록 본다니까요
이 바닥도 반백이 되었다
읽어도 읽어도 한 바닥이 넘어가지 않는다
우남정(1953~)
시인은 “뼈만 남은 구순의 어머니를 씻긴 적 있다”고 했다. 스스로 몸을 씻을 수 없던 어릴 때는 어머니가 씻겨줬으리라. 부모가 나이가 들고 아프면 자식들이 돌본다. 가족 중 누군가 중병에 걸리면 가족의 삶은 ‘바닥’이 된다. 서로의 바닥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시인은 털썩 주저앉기 좋은 곳이 바닥이라 했다. 그게 편안해지면 진짜 바닥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고도 했다. 중병은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바닥을 치고 일어날 힘이 생긴다.
시인은 반백의 여자가 “목욕 의자에 앉은 남자”를 씻기는 장면을 목격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한 남편이리라. 아내는 병든 남편에게 양치질과 면도를 해 주고, 비누칠해 가며 몸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파랑 치는 바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힘드시겠어요” 한마디 건네자 한숨 섞인 농담이 돌아온다. “폐그물에 뒤엉킨 부표”처럼 세파에 휩쓸린 삶은 슬프다. 그런 삶을 기록한 책은 한 바닥도 넘어가지 않는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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