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광부 60년… “이제 기념관 먼지 닦을 사람도 없어”
6일(현지 시각) 독일 서부의 옛 공업도시 에센의 주택가에 있는 파독(派獨) 광부 기념회관에서 ‘파독 광부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1963년 12월 22일 오후 6시 뒤셀도르프공항에서 파독 광부 123명이 처음 독일 땅을 밟았다. 이어 1977년까지 광부 총 7936명과 간호사 1만1057명이 1억여 달러를 고국에 송금했다. 당시 한국 총수출액의 2%에 달해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이날 행사에서 당시 파독 1진 광부 5명이 만나 “살아 있었네” “오랜만이다”라며 인사를 나눴다. 교민 400여 명이 참석했다. 김계수 파독광부기념회관 명예관장은 “(독일 전역에 생존해 있는 800여 명의) 파독 광부 절반가량이 건강상 이유로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오늘도 부고장을 받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홍균 주독 대사가 대독한 행사 메시지에서 “파독 광부들이 보여준 열정과 끈기는 오늘날 대한민국 번영과 발전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며 “노고와 헌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영상을 통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조국에 보낸 외환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소중한 종잣돈이 됐다”고 했다. 나다나엘 리민스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 장관은 “파독 광부들은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힘든 작업을 통해 독일 경제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했고, 율리아 야콥 에센시 부시장도 “파독 광부와 간호사 1세대의 헌신으로 우리 지역사회 내 2세대는 고등 교육을 받고, 독일 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돼 이민자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글뤽 아우프(Glück auf)”라는 독일어 인사말을 큰소리로 함께 외쳤다. ‘무사히 돌아오라’는 뜻이다. 깊은 갱도로 들어서는 동료들을 향해 교대하면서 건넸던 말이다. 파독 광부들은 석탄가루 섞인 공기를 마시고, 검정 밥을 먹고, 수백kg의 무거운 짐을 이고 갱도를 캐다가 골병들었다. 파독 광부 1진이었던 유한석(85)씨는 “광산 막장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면 생지옥”이라며 “2000m 아래로 내려가면 37∼38도에 달하는 고온 속에 산소가 줄어들어 숨이 답답한 데다 막장 안의 먼지와 돌가루를 호흡하면 목이 아팠다”고 했다.
월남 파병을 다녀온 뒤 다시 ‘광부 산업 연수생’을 택한 문영수(77)씨는 “지하 열기에 작업을 하고 나오면 장화 안이 땀으로 가득 차 물이 주르륵 쏟아지곤 했다”고 회고했다. “마이스터(감독자)가 ‘이렇게 하라’고 몸으로 보여주면 따라 하곤 했어요. 독일어를 하나도 배우지 못해서 ‘야(Ja·네)’라고 대답할 뿐이었지요.” 조국을 위한다는 마음에 도망가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전남 나주에서 아버지와 농사를 짓다 광부 모집에 응한 김근철(86)씨는 “우리는 희생했지만,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견뎌냈다”며 “고국의 발전이 느껴지지만, 편을 갈라서 싸우는 내분은 그만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동간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장은 “대한민국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이뤘다는 자부와 자긍심으로 평생을 살아온 파독 광부들”이라고 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파독 광부의 역사가 잊히기 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심동간 회장은 “60주년 행사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70, 80주년 행사는 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런 행사들이 2~3세대로 넘어가서 이어질 수 있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곳 기념회관 1층엔 파독 광부들의 기념품이 전시돼 있다. 당시 쓰던 기구, 복장, 월급 명세서, 신문, 영상 자료 등이다. 그러나 한데 모아 놓은 수준이고 먼지가 쌓여도 관리가 쉽지 않다. 나복찬(76)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역사자료실 연구위원은 “2009년부터 봉사활동을 겸해 이곳을 관리하던 11명 중 6명이 죽고 5명이 남았다. 먼지가 쌓여도 닦을 사람이 없다”며 “회원들 평균 연령이 78세다. 앞으로 활동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몇 년 아니겠나”라고 했다. 정부는 오는 6월 재외동포청을 출범시켜 파독 광부들의 헌신에 보답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정책과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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