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녀 꼬리표 떼고, 왕비 오른 커밀라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5.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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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출신… 찰스와 1972년 첫 만남
사치스러운 생활로도 논란됐지만 전문가 코칭 받고 ‘소탈함’ 강조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부인 커밀라 왕비가 6일(현지 시각)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메리 왕비의 왕관’을 쓰고 앉아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6일(현지 시각) 벌어진 대관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커밀라 왕비였다. 커밀라 왕비는 이날 찰스 3세에 이어 그의 할머니 메리 왕비가 썼던 왕비의 관을 물려받아 쓰며 영국과 영연방의 왕비로 정식 등극했다. 대관식 내내 긴장된 표정의 찰스 3세와 달리 커밀라 왕비는 종종 미소를 드러내며 주변을 둘러보는 등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시선을 모았다. 영국 대중지와 소셜미디어 등에선 “영국 왕세자의 ‘불륜녀’라는 꼬리표를 떼고 왕비가 된, 사연 많은 여인의 인생이 드디어 그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커밀라 왕비도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이다. 1947년 애슈컴 남작의 외손녀로 태어났다. 왕비가 될 운명은 그가 25세이던 1972년, 자신의 약혼자인 앤드루 파커 볼스의 소개로 찰스 왕세자를 처음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앤드루와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평범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갔으나 1976년 군에서 제대한 찰스 3세가 갑작스레 연락해 오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두 사람의 불륜이 시작됐다. 그는 1981년 찰스 3세와 다이애나가 결혼한 뒤에도 찰스 3세를 계속 만났고,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둘씩이나 둔 뒤에도 관계는 계속됐다. 결국 1990년 커밀라와 찰스의 은밀한 통화 내용이 대중에 폭로되면서 1996년 찰스 3세의 이혼으로 이어졌다. 커밀라 본인은 앞서 1995년 이혼했다.

다이애나 사망 뒤 두 사람 관계는 공식화됐다. 영국 국민의 쏟아지는 비난에도 2005년 찰스 3세와 재혼에 성공했고, 이후 왕실 행사에 꾸준히 등장해 왕세자의 ‘배우자’ 역할을 했다. 그는 끝까지 왕세자빈(Princess of Wales)의 칭호를 받지 못했다. 찰스 3세가 왕으로 즉위해도 대공비(Princess Consort)의 명칭을 쓸 뻔했으나,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배려로 왕비(Queen Consort)의 칭호가 허락됐다. 한때 사치스러운 생활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으나, 개인 홍보 전문가를 고용해 세심한 코치를 받고 평소 소탈한 모습을 보이며 이미지 개선에 노력했다. 찰스 3세도 왕실 내 여성 중 ‘큰 어른’의 역할을 계속 맡겼고, 며느리인 캐서린 미들턴 왕세자빈이 지원에 나서며 지금은 ‘왕실을 망친 여자’라는 평가를 많이 희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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