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96] 흑인 클레오파트라
‘관점이 콘텐츠’라는 이치를 시간이 갈수록 느낀다. 카메라 사진도 앵글이 문제다.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보느냐가 관점이다. 나는 관점을 가지는 데 30년은 걸린 것 같다. 세계의 명산대천을 밟아보고 미신, 주술에 심취해본 결과이다. ‘금지된 숲(forbidden forest)’에서 거주하던 이단아, 미신 종사업자들과 부둥켜안고 놀아보면서 관점이 생겼다. 그 관점이 ‘강호동양학’이다. 명칭도 내가 붙였다. 강호(江湖)라는 현장과 박치기를 하고 피가 나면서 깨닫는 게 강호동양학이다.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라는 넷플릭스 다큐와 박치기를 할 때이다. 세계사에서 차별받던 집단은 노동자, 여자, 그리고 흑인이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보듬었고, 페미니즘이 여자들에게 돌도끼를 쥐여주었다. 마지막 남은 게 흑인이다. 서구의 ‘PC(정치적 올바름)주의’가 이 흑인들에게 원전을 공급하였다. 갑질만 당하며 을의 상징이었던 흑인들이 명분을 거머쥐었고, 그것이 흑인 클레오파트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명분 싸움이 된 셈이다.
조선 시대 당쟁에서도 명분을 누가 쥐느냐가 관건이었다. 세계사적인 흐름인 ‘乙의 반란’을 조선에서 태동된 패러다임인 ‘정역(正易)’에서는 후천개벽으로 규정하였다. 밑바닥이 위로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정역 용어로는 ‘기위신정(己位新政)’이다. 갑을병정의 천간 10개 중에서 가운데인 5, 6번째가 무(戊)와 기(己)이다. 갑(甲)에서 무(戊)까지는 전반전이고 기(己)에서 계(癸)까지가 후반전으로 본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의 시작은 ‘己’부터이다. 문제는 이 己가 양이 아니고 음이라는 사실이다. 후반전은 음이 득세를 하고 앞장을 선다는 뜻이다.
조계종 승려로서 정역을 깊게 연구한 학승이 문광(文光)이다. 정역의 대가로서 후천개벽을 예언했던 탄허학(呑虛學)의 계승자이다. 문광은 필자에게 “10수를 주목해야 한다. 정역은 최초로 10수를 말했다. 10은 음수(陰數)이다. 정역팔괘 이전에는 10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10이 드러난다는 것은 음양평등이 되고, 을이 치고 올라온다는 예시였다”고 했다. 1·3·5·7·9는 홀수이고 양수이다. 2·4·6·8은 짝수이고 음수이다. 양이 5개이고 음이 4개이다. 음이 하나가 부족했는데 정역에서는 금기시 되었던 10수를 드러내었다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양수와 음수가 똑같이 5:5가 되었다. 개성의 서경덕이 복희·문왕팔괘를 깊게 연구했고, 이 흐름이 김일부 대에 와서 정역팔괘로 완성되었고, 이후로 한국 민족종교의 후천개벽 패러다임으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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