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변호사의 직무과오
변호사의 윤리현실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성실 의무 게을리한 변호사들에
제재 강화로 자정능력 높이는 데
변호사업계가 인식 공유해야
사례1) 항소 사건을 수임하여 인지대와 송달료를 건네받고서도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인지대 등을 납부하지 않고 법원의 보정명령에도 응하지 않아 항소장이 각하되었다.
사례2)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수임한 후 법원의 감정신청 권고를 받고서도 4개월 후에야 신청서를 제출하고, 의뢰인이 건네주는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재판기일에 두 번이나 출석하지 않고, 의뢰인으로부터 재판 진행상황을 설명하여 달라는 전화와 e메일을 받고서도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화해권고결정을 받고서도 의뢰인에게 통지해 주지 않았다.
사례3) 패소판결이 선고된 후 판결문을 송달받고서도 의뢰인에게 판결 결과를 알려 주지 않고 항소장도 제출하지 않았다.
사례4) 손해배상 청구사건 수임 후 1년8개월여가 지나도록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버렸다.
위는 변협이 발간한 변호사 징계사례집에서 성실의무 위반 사례를 몇 개 뽑은 것이다.
변호사에게 직무과오는 악몽이다. 직무과오란 의뢰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태만, 의무 위반 등을 말한다. 이것을 저지르면 의뢰인의 항의를 받거나 고소·진정을 당할 수 있고,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고, 운이 나쁘면 징계가 뒤따르고, 사회적으로 평판이 떨어져 변호사로 일하는 데 타격을 받는다. 미국의 통계로는 변호사가 직업적 경력 중 평균 3건 정도의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고 되어 있다. 변호사윤리장전은 변호사의 성실의무를 규정한다. 그런데 실상 변호사업계에서 심각한 문제는 사건의 성공에 눈이 멀어 무리한 변호활동을 하는 것이다. 권경애 변호사의 예처럼 변호사가 일에 태만한 것은 예외적이다. 그런데도 일각에서 부실 변호는 계속 발생한다.
부실 변호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길은 그럴 소지가 있는 사람에겐 당초에 변호사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변호사시험 제도에는 불성실한 사람을 걸러낼 만한 장치가 없다. 변호사에게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엔 본디 윤리란 것을 가르칠 수 있느냐는 고전적 의문이 제기되어 있다. 전문직업인의 윤리고 뭐고 간에, 밥벌이에 임하는 자세부터 되어 있지 않은 변호사에게 뭘 가르친단 말인가. 효과가 있을 리 없다. 변호사의 업무 수행에 대한 감시 감독을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변협이나 지방변호사회의 의뢰인 보호업무는 예방보다는 주로 징계를 위주로 하는 실정이어서 대개는 사후적 처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4월14일자 보도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2022년 9월29일까지 변협이 징계를 결정한 사건은 총 478건에 이른다. 징계의 종류에는 영구제명, 제명, 정직, 과태료, 견책이 있으나, 위 기간 중 과태료가 288건, 견책이 123건으로서 합하면 전체의 86%다. 미국의 경우 2018년 통계로 45개 주와 컬럼비아특별구에서 징계를 받은 변호사 수는 2872명인데 그중 제명이 631명(22%), 정직이 1374명(48%)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변협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난은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변호사의 직무과오에 대해 무거운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일도 쉽지 않다. 직무과오와 피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 법원이 위자료 지급을 명하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
그래서 변호사나 변호사단체가 해야 할 일을 의뢰인에게 떠맡기는 것이 되어 미안하지만, 의뢰인 스스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잘 챙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책이라고 조언하고 싶다. 우선 성실하고 능력 있는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법률서비스 시장은 여느 전문가 집단의 경우처럼 정보 비대칭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광고만을 믿기도 어렵다. 그나마 구체적인 방책은 사건을 의뢰할 때 조심하는 것이다. 맞장구만 치며 사건의 결과를 장담하거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 보이거나, 설명이 시원치 않든지 아예 설명 따위는 하지 않으면서 사건을 수임하려 드는 변호사에겐, 사건을 맡기지 않아야 현명할 것이다. 다음으로 의뢰인 자신이 사건 수행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직접 재판기일에 참석하거나 적어도 재판기일이 한 차례 지나고 나면 변호사에게 사건 진행상황과 업무수행상황을 물어봐야 한다. 충분하진 않지만 대법원 홈페이지의 ‘나의 사건검색’을 이용해도 기초적 자료는 얻을 수 있다.
딱하게도 변호사의 윤리현실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성실 의무를 게을리한 변호사에 대한 제재의 강도를 높여 자정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데 변호사업계가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변협과 지방변호사회의 의뢰인 보호업무 가운데 예방, 교정, 홍보 활동을 강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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