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국민에게만 인색한 정치가 아니기를

기자 2023. 5.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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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및 깡통전세 이슈가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온 국민이 이 문제를 인지하고 우려하고 있지만, 국민 의사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권에서만 온도차가 있는 듯하다. ‘책임’은 실종된 채 빈 수레만 요란히 울리고 있어서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전세자금 대출 규모는 이미 2019년에만 100조원을 넘겼다. 여야를 막론하고 높은 전세가율의 대출을 장려했고, 한편에서는 여전히 공급이 부족하다면서 규제 완화를 부르짖었다. 하지만 갭투기에 의존한 전세 시장은 신기루가 사라지며 폭탄처럼 터졌고, 정부의 안내에 따라 정책을 이용한 세입자들은 아무 잘못 없이 빚쟁이가 되어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직면했다. 문제를 이 지경까지 만든 정치인과 행정관료들은 사과는커녕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녀사냥을 위해 애꿎은 임대차 3법을 겨냥하는 여론몰이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정치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제도를 악용해 조직적으로 사기를 공모한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등은 언젠가는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 설계로 국민을 재난의 한복판에 몰아놓은 공공 영역의 책임이야말로 시급한 문제이다. 재난의 연쇄 속에 벼랑 끝에 몰렸거나 앞으로 몰릴 사람들을 보호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우선 제대로 된 피해자 구제로부터 정치의 책임이 시작돼야 한다. 전세사기·깡통전세의 경우 구조는 복잡해 보일지라도 해결 방향은 오히려 명쾌한 편이다. 하지만 정부 대책에 따르면, 국가가 일시적으로 전세금 채권을 사두었다가 나중에 처분하는 방식은 제외되었고 피해자에게 경매 우선권을 주거나 공공이 매입하는 방안 역시 대상자를 협소하게 제한하고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든다.

부동산 경기가 휘청거리자,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겠다고 무려 4조원을 투여했다. 기업이 부실한 투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는 재빠르게 대책을 마련하면서, 위기 상황에 직면한 국민에게는 인색한 정부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보이스피싱 같은 개인 간의 사기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왜곡된 핑계를 대지 말고, 정책 실패로 인한 사회적 재난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전세사기·깡통전세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탓이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전세대출 확대 탓이든, 무엇이 중요할까. 지금 정부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다면, 모두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정부 대책의 실질적 구제율이 5%라고 한다. 이런 비참하고 무능한 수치와 함께 국민들이 사회적 재난을 스스로 견뎌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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