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이란 말 쓰지 말자”던 윤 대통령의 말은 어디로?
10개 주제로 분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⑴
어록의 탄생, 일방향 소통, 달라진 말
태초에 아니 그곳에 대통령의 말이 있었다.
“국가 간에 도청이 금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엔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는 대통령의 의리가 함축돼 있다.
“다보스포럼 열공 중… 이 정도로 공부했으면 대학 3학년 때 사시 붙었을 것” 대통령 발언에 대한 해명인지 ‘디스’인지 모호해 자주 논란을 만드는 대통령실의 전언이다.
(지진은 시리아, 튀르키예에서 일어났는데) “이란과 튀르키예를 적극 지원하라” 모르는 사실도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그분의 태도가 응축돼 있다.
이런 주옥같은 말을 모아놓은 ‘대통령 어록’은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 시간을 알리는 ‘윤타임’(yoontime.kr) 사이트에 있다. 윤 대통령이 꼭 봐야 할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윤 대통령의 말을 체계적으로 기록함으로써 우리가 왜 반대하고 비판하고 분노했는지 역사 속에 남겨두기로 했다. ”
그런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한겨레21> 기자들이 분석했다. 대통령의 말에서 특징 10가지를 꼽았다. 어록 탄생부터 도널드 트럼프 뺨치기까지 특유의 화법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주요 어록을 보면 말로는 “소통소통소통”을 강조하는데 정작 소통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나를 새끼로 부른다더라” “1시간 중에 59분을 떠든다” 그의 말을 문제 삼는 말들만 무성하다.
김대중의 농익은 설득력, 노무현의 소탈한 화법을 기대하진 않아도, 그의 말은 문제적이다. 그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_편집자
윤석열 어록의 탄생 대통령의 말①―검사님 우리 검사님
“(나는 검찰) 조직을 사랑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2013년 국회 국정감사
‘윤석열 어록’의 탄생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이끄는 과정에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조영곤 지검장 등으로부터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밝히는 과정에서 탄생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다. 당시 비특수부 출신 조 지검장에 대한 반감을 에둘러 표현한 발언이라는 풀이도 있으나, 다수 언론은 상찬하기에 급급했다. 그의 말과 행동에 어긋남이 없어 보여서다. 검사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의 첫 검찰총장 채동욱에 의해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차출됐다. 그는 채 총장이 혼외자 논란으로 낙마한 뒤에도 여러 외압을 무릅쓰고 수사를 강행하다 징계받았다.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갈등하는 과정에서도 검사 윤석열의 어록은 쏟아졌다. “국민이 진짜 원하는 검찰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안 보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2020년 11월3일 신임 부장검사 대상 강의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중상모략이라는 말은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 “그냥 편하게 살지 왜 이렇게까지 살아왔는지”(2020년 10월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검사 윤석열’의 말하기는 거침없고 소탈한 화법으로 일관됐다. 그를 향한 상찬은 기성 정치인들과의 ‘구별 짓기’에서 비롯한 바가 컸다. 그의 정치 입문 뒤에는 보수 언론들까지 ‘정치인 윤석열’의 화법을 비판했다(‘윤석열 반복되는 실언과 해명, 화법과 “오해”만의 문제인가’, 2021년 8월4일 <동아일보> 사설 등 참조).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1시간 중 59분 말 독점 대통령의 말②―일방향 소통
“정직한 대통령이란 국민과 소통을 잘하고, 의회 지도자들과 소통을 잘하고, 언론과 소통을 잘하고, 내각·참모들과 소통을 잘하는 것.”―2022년 2월7일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인터뷰 영상
윤석열 대통령의 엠비티아이(MBTI·성격유형검사)가 수다를 좋아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엔프제’(ENFJ)여서일까(‘윤석열 공약위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 “정직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정직함’의 열쇳말로 소통을 꼽았다. 방송작가 김연우가 윤 대통령의 서울 법대 79학번 동기들을 직접 만나고 쓴 책 <구수한 윤석열>에서 친구들은 윤 대통령을 “술자리에서 2~3시간씩 ‘썰’을 푸는 수다쟁이”로 기억했다.
실제 대통령 당선 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 인선을 직접 발표하는 등 대변인에게 맡겨온 역대 대통령 당선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은 대국민 소통 강화를 명분으로 한 용산 대통령실 이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일 정상회담 비판 여론이 줄지 않자, 23분 길이의 ‘역대 최장’ 국무회의 모두발언으로 대통령의 입장을 생중계했다.
문제는 소통이 ‘일방향’이라는 점이다. ‘말하기’는 있지만 ‘듣기’는 부족하다.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 합류한 지 열흘 만에 사퇴하면서 윤 대통령을 겨냥해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고 밝혔다. 도어스테핑 때 당내 갈등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제가 지금 다른 정치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생각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영부인 쓰지 말자”더니… 대통령의 말③—달라진 말
‘영부인이란 말 안 썼으면… 아내, 선거중 등판계획 처음부터 없었다’―2021년 12월22일 <동아일보> 인터뷰 제목
2021년 12월26일 김건희 당시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허위 이력 기재로 물의를 빚은 데 대해 고개를 숙였다. 이에 닷새 앞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다. 대통령 부인에 대한 법 바깥의 지위를 관행화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영부인이란 말 쓰지 맙시다. 무슨 영부인(이냐)”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 부인’의 역할이 크게 축소될 것임을 확실히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김건희 여사는 오히려 과거보다 활발히 대외활동을 함은 물론 국정운영에 참여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한 2023년 4월24일(현지시각)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 진행을 보고한 대목이다. 김 여사는 2023년 4월에만 9개의 단독일정을 포함해 공개일정 11개를 소화했다.
민감한 정책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4월12일 김 여사는 납북자·억류자 가족들을 만나 “정부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납북자·억류자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힘써야 한다”며 “이런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에 강하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책임도 권한도 없는 대통령 배우자가 민감한 남북 문제나 정부 정책 의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권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말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바꾸면서 거짓말한 걸 따져보면 수십 가지는 될 것”이라고 말한다. 2019년 7월 국회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윤 대통령이 “(검사 후배인 윤대진의 형인) 윤우진 전 세무서장에게 이○○ 변호사를 소개해준 사실이 없다”고 밝힌 것도 대표적 ‘달라진 말’ 중의 하나다. 윤우진씨는 2020년 12월 를 만나 “이○○ 변호사에게 문자가 와서 ‘윤석열 선배가 보내서 왔습니다’라고 해서 (이 변호사를) 만났다”고 말했다. 또 2012년 12월 윤 대통령이 기자에게 “이○○ 변호사를 소개시켜줬고, 이○○ 변호사에게 윤우진씨를 만나보라”고 말한 녹취록이 에 의해 공개(2019년 7월)됐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