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석수 입법 vs 거부권 행사...여야, '의회 무력화' 속내는?
내년 총선 대비, 지지층 결집 전략
입법에 '갈등' 씌워...양극화 불가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여야가 쟁정 법안 처리를 두고 벼랑 끝 싸움을 고수하면서 의회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야당은 과반 의석수를 앞세워 입법을 강행하고, 여당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에 기대어 맞불을 놓는 식이다.
정치권에선 의회 민주주의 근간인 설득과 타협의 실종을 여야의 중장기적 생존 전략으로 분석한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입법을 볼모 삼아 각자의 정체성을 강화해 지지층 결집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3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5월 임시국회에서 노란봉투법과 방송법을 강행 처리할 전망이다. 야권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60일이 지난 노란봉투법을 이번 달 안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하고, 방송법을 본회의에서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으로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를,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별로 국회 외 추천 인사를 늘려 이사회 구성원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입법 일방 처리는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정의당은 노란봉투법과 같이 노동조합에 기득권만 지켜주고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법안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맞섰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마땅하다"고 날을 세웠다.
여야 갈등 양상을 두고 '양곡관리법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당은 지난 3월 여당의 반발에도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을 단독 처리했고, 윤 대통령이 이를 재의요구권으로 맞받아치면서 정국이 요동친 바 있다. 재의요구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상 권한으로 국회를 통과해 정부에 이송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이를 국회에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에 재상정 되고,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찬성이 있다면 법률로 확정된다.
이번 쟁정 법안 또한 전례와 마찬가지로 정부 여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야당이 강행 처리한 만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거대 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소수 여당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에 의존하는 모양새가 반복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여야의 내년 총선 전초전으로 해석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여야가 쟁점 법안에 이전투구를 벌이는 건 총선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 설정으로 볼 수 있다"며 "노란봉투법이나 방송법은 여야 서로에게 정체성인 상황에서 국회 단독 처리나 재의요구권은 지지층 결집과 주도권 싸움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쟁점 법안에 대한 여야 입장 차는 각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궤를 같이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겠다. 노동자도 국민이다"라고 밝히며 노동계 결집을 유도했다. 반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귀족 노조의 불법적 관행을 걷어내기 위한 행동을 윤석열 정부가 했다. 노란봉투법 처리가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선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방송법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방송법 개정안에 국민의힘은 "민주노총과 유관 단체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방송을 장악하려는 민주당의 꼼수"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야당은 지지 기반을 옹호할 수 있는 법안들을 적극적으로 입법하겠다는 것이고, 여당과 정부는 반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라며 "자신들에게 부여된 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이지만 여야가 총선을 의식해 갈등 지향적으로 달리다 보니 정치적 양극화가 더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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