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당시 많은 분들이 힘든 경험…가슴 아프게 생각”
윤 대통령 “한·미 워싱턴 선언 궤도 오르면 일본도 협력 가능”
한·일 반도체 공급망 구축…미래 기금 등 합의 이행도 재확인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7일 정상회담 결과는 과거사 문제를 ‘미봉’ 상태로 남겨둔 채 한·일, 한·미·일 공조 강화를 재확인한 것으로 요약된다. 이번 회담은 강제동원(징용) ‘자체 배상안’이라는 한국 정부의 면죄부 제공 이후 일본 정부의 호응 정도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로 꼽혔다.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 대한 일본 총리의 명확한 사과, 적극적 배상 참여 입장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입장”으로 해석하며 “양국 관계 정상화가 궤도에 올랐다”고 했다. 일본 측 ‘호응’ 알맹이가 빠지면서 12년 만의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이라는 의미는 퇴색했다.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 측의 호응 수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3월 도쿄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재확인했다. 기시다 총리는 다만 “저는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어려운 환경 아래 있던 분들이 강제징용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당시 힘든 경험을 하신 분들에 대해서 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공식 입장은 유지하되 ‘개인적 심정’으로 과거사 관련 심경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명확한 사과는 하지 않은 데다 일본 측 배상 참여 부분에서도 진전은 없었다. 두 정상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강제동원 배상과 별개로 마련하기로 한 ‘한·일, 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대한 양국 정부의 관심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발표한 해법은 1965년 청구권협정과 2018년 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으로서 법적 완결성을 지닌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앞으로도 입장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 측 제안으로 이달 말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만나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탑에 참배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말과 행동으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가겠단 표현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초점이 셔틀외교 재개 첫발을 떼는 데 맞춰지면서 합의 사항들이 쏟아지진 않았다. 다만 두 정상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한국 전문가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 현장 시찰과 관련, 내주부터 양국 협의가 구체화될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G7 회의를 계기로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일, 한·미·일 공조 강화 의지를 재확인하는 징검다리 성격을 띤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안보와 공급망 등 경제안보 문제, 글로벌 현안 등에서 공조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 간 ‘워싱턴 선언’으로 신설된 핵협의그룹(NCG)을 두고는 “먼저 이것(한·미 간 워싱턴 선언)이 궤도에 오르고 일본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간 NCG 활성화를 전제로 이후 3국 간 확장억제 논의를 추가로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미 동맹, 한·미 동맹, 일·한 그리고 일·한·미 안보협력을 통해 (북핵) 억제력과 대처력을 강화하는 중요성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한국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간 공조 강화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또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 대상국)’ 복원,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 등 지난 3월 도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들의 이행 상황을 재확인하며 교류 의지를 다졌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은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항공편을 두 배 이상 증설하자는 데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청년 대상의 연수 프로그램인 ‘제네시스’ 인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유정인·유설희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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