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과거사 보다 현안 집중했다

[파이낸셜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2년만의 셔틀외교 정상화 차원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안보 협력 강화 외에도 주요 현안인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해 한국 현장 시찰단도 파견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과거사 문제와 관련, 기시다 총리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언급한 듯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언급하면서 연착륙을 시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한국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거나 요구한 바가 없는데 먼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줘 감사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한일 양국이 당장 과거사 보다 미래와 현안에 집중하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7일 서울 용산 청사에서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주요 현안과 이날 합의한 내용에 대해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 부분에 대해 정면돌파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 문제는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일방이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현안과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짝도 발걸음을 내디뎌선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이 동북아의 엄중한 안보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언급한 윤 대통령은 "지금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함께 놓여 있다"고 말해 양국의 협력이 중요한 과제임을 주장했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 "이를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주신 데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표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그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었다"는 표현에 대해 "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해, 정부 차원의 사과는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일단 기시다 총리는 이달 말 열리는 히로시마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초청된 윤 대통령과 함께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 등을 제안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앞으로도 말과 행동으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과거사에 대한 이같은 갈음으로 한일 양국 정상은 경제, 안보, 환경 등 주요 현안에 대한 협력 강화 의지를 피력했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한국인 전문가 현장 시찰단 허용과 관련,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총리로서 자국민 그리고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한국 국민의 건강과 일본 국민의 건강 우선순위, 한국과 일본의 환경문제 우선순위를 동일하게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대통령실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특별한 일본과의 관계, 한국 국민에 대한 남다른 우려와 관심을 고려해 일본이 별도로 1대1로 전문 사찰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다음주부터 협의가 구체화될 것이고 이번달 안에는 확실히 파견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미일 안보 공조와 관련 고위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워싱턴 선언에 대한 일본 참여 가능성 언급에도 "한미간 핵협의체가 정착이 되고 그게 활성화된 이후에 한미일간에 확장억제에 대한 논의를 추가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우리가 막 만들어놓은 한미간 핵협의그룹 자체를 3자나 4자로 확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