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 출근하는 대통령…소통 작심삼일 ‘용심 시대’
당무 개입 등 ‘윤심’ 논란이 정책 혼선 키워…제왕적 권력 탈피 아닌 ‘이전’ 평가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의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용산 시대’ 개막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 10일 만에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청와대 탈피를 선언했고, 취임 당일부터 용산에서 집무를 시작했다. 청와대와 용산공원 등 공간은 열렸다. 하지만 권위주의·제왕적 대통령제와 결별하기 위한 길은 채 열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 결단에 국정과 여당 권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현상이 반복되며 ‘윤심’ ‘용심’ 등 신조어가 등장했다.
■ 열린 공간, 열리다 만 소통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기존 집무실이 있던 청와대는 시민들에게 공개했고, 지난 4일엔 용산 집무실 앞 주한미군 반환부지 30만㎡에 ‘용산어린이정원’을 조성해 개방했다. 대통령 관저를 한남동 외교장관 관저로 옮기면서 최초로 ‘출퇴근하는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용산 이전 발표 당시 “물리적 공간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 의지”(2022년 3월20일 기자회견)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청사 1층에 프레스센터와 민관합동위원회 설치를 소통 확대 방안으로 제시했다.
지난 1년간 이 약속들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민관합동위원회는 정부 출범 전 이미 접었다. 대통령실 청사 내 프레스센터 설치는 이뤄졌지만 의미는 퇴색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언론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을 내걸고 “기자들과 얼마든지 만나겠다” “국민들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 취임 6개월여간은 어느 정도 약속이 이행됐다. 수시로 기자들과 짧은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이뤄졌고,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해 8월엔 내·외신 기자들과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국정 혼선으로 이어지거나 정치적 부담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대통령 메시지의 개방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는 대체로 일치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출근길 문답은 지난해 11월18일 ‘바이든-날리면’ 논란의 여파로 중단됐다.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공식 기자회견은 끊겼다. 순방 귀국길의 관례로 자리 잡은 기내간담회는 첫 순방 이후 접었다. 주요 정책 추진 과정에선 사전 소통과 공론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후통보식 설득이 반복됐다.
대신 취재·보도 방향을 문제 삼아 특정 언론사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는 언론자유 침해 행위가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가짜뉴스’를 언급하며 언론을 압박하는 사례도 늘었다. 국경없는기자회(RSF)의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1년 사이 4계단 하락한 47위를 기록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계기로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겠다”고 했지만 출근길 문답 재개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개최는 확답하지 않았다. 취임 일성이었던 ‘수시 소통’ 약속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용심’ 신조어 만든 ‘용산 정부’
윤 대통령이 내세운 용산 이전의 핵심 이유는 제왕적 권력 탈피였다. 대통령실은 취임 1주년의 변화를 정리해 지난 2일 배포한 자료에서 민정수석실 폐지와 인사검증기능 이관을 ‘제왕적 권력 폐기’의 주요 성과로 들었다. 과거 정부에서 사정 컨트롤타워이던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인사검증의 독립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국정운영 과정에서 대통령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특히 당정 관계에서 윤 대통령의 ‘실력행사’와 여당의 일사불란한 추종이 거듭됐다. 지난해 7월 윤 대통령이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로 언급한 때부터 이상징후가 일찌감치 감지됐다. 이후 비상대책위원회와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까지 ‘윤심’(윤 대통령의 마음)이 결정적 잣대로 작용했다.
여당 특성에 따른 ‘결과적 윤심’으로 보기엔 대통령실의 공개적 실력행사가 도드라졌다. 전당대회 시점 결정 과정부터 ‘용심’(용산의 뜻)이 거론됐다.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 등이 선두권을 달릴 때마다 대통령실이 후보 정리에 나섰다. 끊이지 않은 당무개입 논란, ‘윤심’ ‘용심’ 등의 신조어가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했다. 적어도 여권 내에선 제왕적 권력이 ‘청와대 정부’에서 ‘용산 정부’로 이전됐을 뿐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정책적으로도 윤 대통령 ‘결단’으로 방향이 뒤집히고 혼선이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주 69시간 근로제’ 논란을 빚은 근로시간 개편안은 정부안을 만들어 입법예고까지 했다가 반발이 일자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후로도 최대 근로시간 상한선을 두고 윤 대통령이 직접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거듭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논란이 장기화했다.
강제동원(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서 일본에 면죄부를 준 대일 정책도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서둘러 방향타가 전환된 경우다. 지난해 9월에는 공론화 없이 878억원이 소요되는 영빈관 신축을 추진하다가 뒤늦게 알려지자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를 철회했다. 계획 수립, 추진 과정의 불투명성과 함께 대통령 한마디에 좌우되는 국정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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