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사실상 핵공유” vs “핵공유 아냐”… 핵공유, 대체 뭘까?
미 백악관 관계자 "사실상 핵공유라 보지 않아" 쐐기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왓챠를 구독한 뒤 가장 처음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을 시청했어요. ‘충격적이지만 몰입감이 최고’라는 후기를 들었거든요. 소련 체르노빌 지역에서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주제로 하는 체르노빌은 드라마를 본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용과 장면들이 기억이 잘 정도로 충격적이었어요. 핵에 의한 참사가 얼마나 큰 피해를 낳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됐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핵을 두려워하면서도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파괴력이 어마어마하니까요.
하지만 너도 나도 핵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핵을 보유할 수 있는 국가가 정해져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는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1945년 첫 핵실험을 한 후 가장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후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이 각각 핵실험을 거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은 새로운 핵보유국의 출현을 막기 위해 여러 조약을 체결하기 시작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창설해 핵무기 비보유국의 핵물질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현지에서 직접 사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핵확산금지조약(NPT)를 체결했죠. 핵무장을 유엔의 NPT 체제하에서 공인을 받아야지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공인해주지 않습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을 속칭 ‘핵클럽 가입’이라고 부르는데요. 현재까지 공인된 국가는 이들 5개국 밖에 없습니다.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NPT에 가입한 공식적인 ‘비핵보유 국가’입니다.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할 수도, 개발할 수도 없는 국가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있는 휴전 국가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NPT 체제의 공인을 받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기도 한데요. 우리나라는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우리나라와 같이 NPT에 가담해 자체 핵무장을 포기한 동맹국들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 주기 위해 외교적인 핵안보 제공 약속을 했습니다. 바로 ‘핵우산’이죠.
‘핵우산(nuclear umbrella)’이란 확장억제 전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용어로, 핵보유국이 자신의 핵무기로 비핵보유 동맹국을 보호해 주는 일종의 핵방위 공약입니다. 쉽게 말해 핵무기를 갖지 않은 동맹국이 적으로부터 핵 공격을 당하면 핵을 가진 동맹국이 보복 공격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죠. 라노가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한다면 남한과 동맹국인 미국이 대응해서 북한에 핵 공격을 한다는 뜻입니다. 핵우산에 들어가면 핵을 가지지 않은 국가도 동맹에 의존해 핵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았을 때 과연 핵보유국이 핵 전쟁에 휩쓸릴 위험을 무릅쓰고 핵 공격을 해줄 것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핵우산을 믿기 어렵다는 주장도 존재하는데요. 그래서 미국과 ‘핵공유’를 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핵공유(unclear sharing, 핵무기 공유)’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동맹국과 함께 운용하는 것입니다. 핵운용에 대한 정책 수립은 동맹국과 함께 협의해 결정합니다.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동맹국 영토 내에 주둔한 미군 기지에 배치됩니다. 핵무기가 탑재되는 것은 미군의 전투기·폭격기가 아닌 동맹국의 투발수단입니다. 쉽게 말해 적이 핵 공격을 감행할 시 동맹국은 영토 내 주둔 미군에게서 핵무기를 인계받아 자국 투발수단 등에 싣고 핵보복 공격을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채택하고 있는 전략입니다. 나토 회원국 가운데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 5개 나라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돼 있죠.
핵공유 체제에서도 핵무기 사용 승인은 최종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하게 됩니다. 다만 투발수단 등은 동맹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핵 공격 결정 과정에서 핵우산보다는 동맹국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핵공유를 쉽게 하지 않죠.
이번 한미정상회담 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사실상 한미 간 핵공유”라고 평가해 논란에 휩싸였죠.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은 북핵 확장억제 조처를 담은 ‘워싱턴 선언’과 이를 실질적으로 담보할 ‘한미핵협의그룹(NCG)’ 신설에 합의했습니다. 워싱턴 선언은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차관보급 한미핵협의그룹의 신설 ▷실제 핵무기를 탑재한 핵잠수함(SSBN) 등 전략자산의 정기적 한반도 전개 ▷대한민국의 핵확산금지조약, 한미원자력협정 준수 의지 재천명·명문화입니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이 한미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안보 분야를 꼽았는데요. 김태효 1차장은 “워싱턴 선언에 한국형 확장억제의 실행계획을 담아냄으로써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사실상 한미 간 핵공유”라고 발언한 것입니다.
‘한미 간 핵공유’라는 한국에 평가에 대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국장은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사실상 핵공유라고 보지 않는다”며 이를 부정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실이 핵공유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의 정의로는 핵공유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에 대해 한층 강화한 확정억제 공약을 확인했지만, 핵사용 ‘단일 권한’을 한국과 공유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여기에 핵공유라는 표현이 자칫 한국 내 핵무기 반입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보이죠. 미 당국이 이러한 입장을 밝힌 데는 여당 지도부 일각에서 워싱턴 선언을 핵공유로 기정사실화 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 데 대해 경계심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핵무기 최종 결정권이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입니다.
미국의 핵공유 부정 발언 이후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문제의 발언을 급하게 주워 담았습니다. 조 실장은 “핵공유라는 표현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핵통제동맹, 핵억제동맹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며 “김태효 차장이 이야기한 뜻은 맞지만 핵공유라는 용어를 쓰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죠.
부경대 차재권(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선언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나토급 협의체를 신설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고, 우리나라 자체 핵 개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게 됐다고 혹평했죠. 정부가 온갖 비판을 감수하면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대만 문제 발언 등으로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정도로 미국의 요구를 잘 들어준 것에 비해 성과는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차 교수는 ‘핵공유’ 발언에 대해 우리나라가 미국과 핵공유를 할 수 있는 반열에 오르지 않았는데 섣부른 발언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술핵을 배치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차 교수는 “외교적 참사를 넘어선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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