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회담] 화이트리스트 복원·반도체 공조…경제협력 가속
미국·EU '자국 우선주의' 흐름 속 공급망 안정화 발판 기대
우주·양자·AI·디지털바이오·미래소재 등 '한일 협력분야' 명시도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이신영 김아람 기자 = 한일 정상이 7일 과거의 갈등을 털고 경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면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어려움을 겪어온 국내 산업계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지난 2019년 7월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의 수출 규제에 나섰고, 다음 달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이에 한국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역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는 맞대응 조치를 취했다.
이런 한일 간 갈등은 3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실마리를 찾았고, 이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으로 한일 양국의 '수출 규제 갈등'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한일정상 "화이트리스트 복원 절차 이행"…업계 '절차 간소화' 기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일 양국의 사실상 '화이트리스트' 복원을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의 대표적 비우호 조치였던 소위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을 위한 절차들이 착실히 이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 역시 "한국을 '그룹A'(화이트리스트)로 추가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이미 지난 4월 24일 전략물자 수출 대상 최상위 그룹인 '가의 1'과 일본 혼자 속했던 아래 그룹 '가의 2'를 '가'로 통합하는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를 관보에 게재했다. 다시말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 재지정하는 절차를 이미 끝낸 상태다.
일본은 나흘 뒤인 4월 28일 한국을 '수출무역관리령 별표3의 국가'(화이트리스트)에 추가하기 위한 정령 개정 절차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의견 수렴 및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남겨놓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정상이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앞서 일본이 지난 3월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철회한 만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모두 해제되는 셈이다.
그동안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권에 들었던 반도체 업계는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 조치를 반기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및 거래처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만큼 이번 화이트리스트 복원이 갖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다만 복잡했던 일본산 제품 공급 절차가 간소화된다는 점에서 업계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 속 한일 공조 가능성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부장 기업들이 함께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공조를 강화해 나간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일본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큰 역할을 하는 만큼 한일 양국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 공조'는 공급망 안정 차원에서 국내 업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기업들은 미국·유럽 주도의 공급망 급변 속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최근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자국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두 정상 간 합의는 '한일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EU를 향해 한일 양국이 공통의 목소리를 낼 여건을 만든 모양새다.
한일 양국은 현재 미국, 일본, 대만, 한국 등 4개국의 '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회복력 작업반'(팹 4),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한일 간 경제 협력은 비단 반도체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우주, 양자, 인공지능(AI), 디지털 바이오, 미래소재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공동연구와 연구개발(R&D) 협력 추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지난 3월부터 두달 간 한일 양국이 일본발 수출 규제 갈등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공동 대처는 물론 첨단 산업 분야로 대화를 확장해 나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한일정상회담은 글로벌 패권 경쟁에 대응할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가속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첨단 과학기술 분야 공동연구 등에서 공고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일 경제 협력을 가속할 구체적이고 신속한 조치가 뒤따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업자원통상부 관계자는 "양국 관계가 이제 완연히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으로 평가한다"며 "이에 따라 반도체 분야를 포함해 양국 간 기업들의 협력이 강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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