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지방소멸과 서울멸종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나는 <지방은 식민지다>(2008), <지방식민지 독립선언>(2015) 등과 같이 과격한 제목의 책까지 내면서 ‘서울공화국’ 체제의 불의를 고발했지만, 이젠 그게 우리의 숙명이라는 체념의 지혜를 껴안기로 했다. 냉소적인 건 아니다. 고발 위주의 방식이 갖는 한계를 절감했을 뿐 여전히 다른 방식의 대안엔 관심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난 2월 진주 <지역쓰담> 대표 권영란이 <한겨레>에 기고한 ‘소멸지수 말고 희망지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걸 보고 반가웠다.
“지방소멸을 사회 공론화하는 과정은 무책임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질 불안감은 어떨까, 오히려 ‘탈지역’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 소멸위험지수보다는 각 지역의 ‘발전지수’ ‘희망지수’를 공론화하는 게 서울수도권 집중화를 늦추는 길이 될 수도.”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장이던 권기석이 지난해 ‘지방소멸을 쓰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도 반가웠다. 그는 “언론은 꽤 오래전부터 지방소멸에 관한 기사를 썼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변한 건 없고 상황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지방소멸 기사를 쓰는 건 ‘여기 이 도시가, 이 마을이 죽고 있어요’라고 선전하는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지역 청년은 자신이 사는 곳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접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지방소멸을 보여주는 기사는 청년들의 ‘탈고향’을 부추길 뿐이다.”
권기석은 “지방소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궁극적 이유는 선거와 정치”라며 더 많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더 많이 득표해야 이길 수 있는 선거 제도가 존속하는 한 한국의 균형발전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분명히 그런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견해는 조금 보완할 필요가 있겠다. 지방민들은 대선과 총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방선거에서조차 지방소멸 이슈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도 강조해두자.
이는 한국의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이 대학입시 전쟁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명문대의 서울 집중’은 지방민들을 ‘잠재적 서울시민’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함으로써 ‘서울 대 지방’이라고 하는 구도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를 ‘국민통합’으로 반겨야 할 일인가? 그렇진 않다. 오히려 정반대로 망국의 길로 들어선 셈이니까 말이다.
“서울을 생물학 종에 비유한다면 이미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조영태가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8, 그중에서도 서울시가 0.59를 기록한 것을 두고 지난 3월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 말이다. 이는 두명이 결혼해 0.5명을 낳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간다면 멸종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영태는 “한국의 출산율이 유독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엄청난 집중”이라며 “지금 청년들, 아이를 안 낳는 30대 초중반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경쟁이 심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다 경쟁”이라며 “동년배만이 아니라 윗세대와도 계속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사는 게 중요한가, 후손을 낳는 게 중요할까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도 못 살겠는데 무슨 애를 낳아. 나부터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처지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심한 경쟁이 불안을 증폭시키면서 의사가 경제적 안정과 부의 축적에 가장 유리한 직업으로 선택됐고, 그래서 생겨난 기현상이 바로 ‘초등 의대반’이다. 지난 3년(2020~2022) 동안 18개 의대의 정시 합격자 중 79%는 엔(n)수생(재수생 43%, 삼수생 23%, 4수 이상 13%)이었으며, 현역(고교 재학생) 합격자는 21%에 불과했다. 이런 살벌한 경쟁 속에서 합격 확률을 높이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일찌감치 의대 진학을 준비하기에 이른 것이다.
경쟁과 서열 숭배를 원동력으로 삼은 ‘지방소멸’과 ‘서울멸종’이 ‘초등 의대반’을 낳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강의 기적’과 한류도 지방소멸과 서울멸종의 결과라고 보는 게 옳다. 특히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그런 한국적 삶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명작이다. 작가 다니엘 튜더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에서 잘 지적했듯이, 한국은 ‘기적’과 ‘기쁨’을 맞바꾼 나라다. 둘 다 갖기 어렵다면, 이제 무엇을 택할 건지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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