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인공지능 리바이어던
[뉴노멀]
[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영국에서 제작해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널리 호응을 얻은 에스에프(SF) 앤솔러지 <블랙 미러>는 미디어와 첨단기술이 초래하게 될 디스토피아를 과감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의 후예답게 제작진이 그리는 미래엔 막연한 희망과 낙관이 머물 자리가 없다. 뉴미디어는 관계의 약한 고리를 사정없이 뒤흔들며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인간의 기대를 잔인하게 배반한 기술은 인간을 무기력한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새로운 시즌 출시가 늦어지며 까맣게 잊고 있던 이 시리즈가 생각난 건 며칠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딥러닝의 선구자 제프리 힌턴 때문이다. 그가 구글을 그만둔다는 발표와 함께 세상에 보낸 경고 중 “‘킬러 로봇’까지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대목. 예전이었다면 영화 <터미네이터>의 T-1000을 떠올렸겠지만, <블랙 미러>를 본 이상 시즌4 에피소드 중 하나인 ‘사냥개’(metalhead)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개 ‘스폿’을 연상케 하는 극 중 살인로봇들은 집요하게 인간을 추적해 사살한다.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쫓기는 인간과 추격하는 로봇 개를 흑백 화면에 담아 40여분간 보여주는 게 전부인 이 에피소드는 짧지만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뭔가 세상은 이미 반쯤 망해 있고, 인공지능 시스템 혹은 그것을 장악한 권력이 잔혹한 로봇 개를 동원해 인간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등장인물들은 뭔가 이에 반하는 행위를 하다가 사냥당하는 처지가 된 모양인데, 개 형상의 킬러 로봇이 사용하는 각종 추적, 살상 기술들이 꽤 상세하게 묘사돼 뒤통수를 쭈뼛하게 만든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코드를 생성해 실행하도록 허용되면 ‘킬러 로봇’까지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힌턴 교수의 우려는 얀 르쾽 같은 후학이자 동료의 지적처럼 지나치게 비관적일지도 모른다. 메타의 수석과학자인 르쾽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 이후 펼쳐질 미래가 “두렵다”는 힌턴과 달리 상당히 낙관적이다. 다른 인공지능 과학자들의 견해는 둘 사이 어디쯤에 널리 분포하는 모양새다. 힌턴 같은 이들의 경고에 부응해 사회적 합의 틀이 마련된다고 해도 특단의 조치는커녕 의견 조율부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드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턴의 경고는 일단 주의를 환기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챗지피티(GPT) 열풍 이후 무분별하게 쏟아진 간증이며 산업효과 등에 기댄 장밋빛 전망이 다소 누그러지며 한결 차분해진 분위기다.
<뉴욕 타임스>의 사임 보도 이후 힌턴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다른 여러 경로를 통해서 “구글을 비판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며 “구글이 책임 있는 행보를 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지난 4월 중순 일론 머스크는 <폭스뉴스> 터커 칼슨과의 대담에서 오픈에이아이(AI) 설립에 나선 배경에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심각한 견해차가 있었음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페이지의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위험해 보였으며 그런 사고방식이 구글의 지배력과 결합해 인공지능을 독점할 것이 우려돼 비영리단체 오픈에이아이를 설립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오픈에이아이조차도 지금은 설립 취지와 무관하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됐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과점을 막기 위해 새로운 대항마인 트루스에이아이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머스크 특유의 장황한 논리와 대의명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다만 현시점에서는 여러 관점이 충돌하며 자본과 인재가 한곳에 몰리는 게 아니라 분산되는 것이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장치 아닐까 싶다. 힌턴과 머스크 두 사람 모두에게 격려를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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