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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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장거리 운전 뒤 진입한 톨게이트에서 그녀의 환한 인사는 늘 간신히 참고 있던 졸음을 달아나게 해줬다.
다음으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는 말은 그럼에도 왜 우리의 여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미국 언론인 크레이그 램버트에 따르면 오늘날은 "고객이 일하는 시대" 다.
그러므로 그/그녀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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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고속도로에서 장거리 운전 뒤 진입한 톨게이트에서 그녀의 환한 인사는 늘 간신히 참고 있던 졸음을 달아나게 해줬다. 그런데 그녀가 사라졌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헤맬 때마다 가장 가까운 출구나 갈아탈 노선을 가르쳐주던 그도 사라졌다. 단골 식당에서 내게 알러지를 일으키는 식재료를 알아서 빼주던 그녀도 사라졌다. 그/그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에는 늘 은폐되는 사실들이 있다.
우선, 일자리가 사라져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기계가 그 일을 전부 대신해주지도 않는다. 가령, 1980 년대까지도 사무실마다 있었던 ‘타이피스트’의 노동을 ‘개인용 컴퓨터’(PC)가 대체하게 된다고 했지만, 타이피스트가 사라진 이후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여전히 직장에서 타이핑하고 있다. 아래아한글이나 워드 프로그램이 서류 작성을 대신 해주진 않는다는 말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된 이후 직장에선 모두가 개인용 컴퓨터에 직접 글자를 입력해 인쇄하고, 복사하고, 이메일을 보낸다. 이처럼 어떤 일자리는 사라졌지만, 그 일은 사라진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에게 다른 형태로 전가됐다.
오늘날은 이런 일들이 직장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어딜 가나 이제 ‘셀프’ 가 대세다. 주유소, 식당, 주차장, 마트, 공항, 학교, 병원, 은행 등지에서 우리는 이제 ‘스스로’ 노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령, 차창을 열고 신용카드만 내밀면 내 차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넣고, 다시 주유구를 닫고, 계산해주고, 영수증과 사은품을 챙겨주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드넓은 주차장에서 무인요금정산기 위치부터 찾아야 하고, 장을 보고 나면 직접 내가 산 상품들의 바코드를 일일이 찍고 계산해야 한다. 아무도 대가를 주지 않는데 우리 몫이 돼버린 이런 노동을 ‘그림자노동’이라 한다.
다음으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는 말은 그럼에도 왜 우리의 여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클릭 한번이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인터넷 세상에서 우리가 쇼핑을 하든, 여행예약을 하든, 소득신고서 작성 같은 각종 신고나 무슨무슨 신청을 하든 사실상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클릭은 수십번, 경우에 따라 수백번일 수도 있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원하는 것을 말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던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직접 정보를 찾고, 조사하고, 비교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쓴다.
이런 일을 하는 동시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데이터를 기업들에 제공하고, 비밀번호를 비롯해 우리가 저장한 온갖 데이터들을 관리하고 업데이트하고 백업하라는 명령까지 수행한다. 서비스센터에 전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계가 전화를 받으면 우리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편리를 가져다줬다. 대면 관계의 불편이 사라진 세상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 발달의 명암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조차 주로 말하는 것은, 사라지는 일자리나 신기술 사용에 불편을 겪는 노약자의 ‘역량’ 에 관해서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는 여전히 먹고 입고 더 많이 소비하며 살고 있고, 더 많은 소비는 언제나 더 많은 그림자노동을 야기한다는 사실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미국 언론인 크레이그 램버트에 따르면 오늘날은 “고객이 일하는 시대” 다. 그러므로 그/그녀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기계가 인간을 능가한다는 시대에 왜 우리는, 점점 더 많이 일하고 점점 더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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