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손 맞잡은 尹-기시다…‘경제‧안보’ 진전, ‘과거사’ 제자리?
기시다 “강제징용 가슴 아파…화이트리스트 복원 추진 중”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방한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안보‧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한‧일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양국은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을 확인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을 합의했으며 ▲한‧미 간 '워싱턴 선언'이 한‧미‧일 '안보 협력'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과거사' 문제에서는 도쿄 정상회담에서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제 3자 변제안'과 관련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가운데 기시다 총리는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향한 직접적인 사과를 언급하지 않은 셈이다.
'셔틀 외교' 재개…경제‧안보 '협력 강화' 공언
한‧일 정상회담은 이날 오후 3시50분부터 102분 가량 진행됐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박진 외교 부장관 등 소수 참모만 배석하는 소인수회담이 약 40분 동안 진행됐고, 이후 확대 회담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은 새로 시작하는 한‧일 관계가 속도를 내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며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더 끈끈한 연대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따뜻한 환대에 감사를 표하며, 이번 회의에서 양국 관계 진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두 정상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장 시찰단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기시다 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한국 내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서 "일본 총리로서 자국민과 한국 국민들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류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경제 협력의 확대도 공언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우수한 소부장 기업들이 함께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이 분야에서 공조를 강화하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 회담에서는 우주, 양자, AI, 디지털 바이오, 미래소재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공동연구와 R&D 협력 추진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수출 통제와 관련한 당국 간 대화가 적극적으로 이뤄져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에 추가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원상복구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2019년 한‧일 양국은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상대 국가를 제외했으나,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상회복 절차를 밟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일 안보 강화 구상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한‧미 간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담긴 '워싱턴선언'이 한‧미‧일 간 협력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워싱턴선언이 완결된 것이 아니고, 계속 논의하고 또 공동기획, 공동실행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이제 채워나가야 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강제 징용' 두고는 기존 입장 되풀이
관심을 모았던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사과‧반성'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3월 도쿄에서 열린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역시 같은 수준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기시다 총리 한국 측이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을 언급하면서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며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지난 3월6일 발표된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주신 것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바뀔 것이냐'는 질문에 "바뀌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리겠다"면서 "우리가 발표한 해법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으로써 법적 완결성을 지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15명의 승소자 중 10명이 판결금을 수령한 상태"라면서 "남은 분들에 대해서도 원칙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고 충분한 소통을 해 가면서 해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 문제는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일방의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모두발언에서 말씀드렸듯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현안과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짝도 발걸음을 내디뎌서는 안 된다는 그런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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