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산골마을에 퍼지는 싱그러운 ‘클래식 향연’

이강은 2023. 5. 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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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계촌 클래식 축제 5 26∼28일 개최
폐교 위기 계촌초, 오케스트라 창단
정몽구 재단·한예종 예술 프로젝트
‘클래식 마을’ 자리 잡아 대표 축제로
KBS교향악단·박재홍 등 무대 올라
별빛·파크콘서트 등 프로그램 다채

계수나무가 많아 ‘계촌(桂村)’이라 불리는 마을.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다. 해발고도 700m에 위치한 이 마을은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가 열린 지난해 여름 큰 주목을 받았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으로 클래식 신드롬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 등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약 1만명이 산골마을에 몰린 것.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관하는 계촌 클래식 축제는 이 마을에 자리한 계촌초등학교와 인연이 깊다.

1937년 개교한 계촌초는 한때 전교생이 1000명 안팎에 달할 만큼 유서 깊은 학교다. 하지만 전국 대부분 시골 학교가 그러하듯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2000년대 들어 폐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던 학교가 활력을 되찾으며 폐교 걱정도 덜게 된 계기는 2009년 3월 ‘계촌별빛오케스트라’ 창단이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로 당시 강릉시교향악단 창단멤버였던 권오이 교장이 주도해 만들었다. 학교 예산으로 악기를 구입하고 레슨 강사들을 데려와 방과 후 교실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렇게 악기를 배운 산골 아이들의 2010년 2월 6학년 졸업식 연주회는 적잖게 눈길을 끌었다.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이듬해 ‘2018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 기원 연주회’ 등의 무대에 서며 평창 올림픽 유치에도 힘을 보탰다. 2012년에는 졸업생이 계속 클래식 연주 활동을 이어가도록 계촌중학교에 오케스트라가 생겼고, 계촌초 병설유치원은 원생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해 8월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서 열린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의 ‘별빛 콘서트’ 무대에 올라 연주하고 있는 모습. 계촌클래식축제 사무국 제공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2015년 결정적인 도약 기회를 맞이한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사업비를 후원하고 한예종이 운영하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 사업에 계촌마을이 ‘클래식 마을’로 선정되면서다. 이동연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는 최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계촌마을은 폐교 위기에 놓인 계촌초의 오케스트라 이야기가 매력적이어서 뽑혔다”고 말했다.
이후 한예종 졸업생들이 매주 계촌초를 찾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지도하면서 연주 실력도 쑥쑥 향상됐다. 아울러 그해 시작된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부터 지금까지 초·중학생이 함께 무대에 서는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축제의 마스코트가 됐다. 2년 전 계촌초에 부임해 오케스트라를 담당한 장형진 교사는 통화에서 “학생들이 힘든 연습을 견뎌내고 공연도 하면서 성취와 보람을 느낀다”며 “다른 친구의 소리를 듣고 자기 소리와 맞춰가는 조화로움의 중요성과 오랜 시간 클래식을 접하면서 정서적 안정감도 체득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계촌초는 오케스트라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상당수 시골 학교와 달리 학생이 줄지 않고 조금이나마 유입돼 현재 전교생은 36명이다.
제1회 축제 전후 ‘시골 마을에서 클래식 축제가 웬 말이냐’, ‘트로트 등 대중가수 공연도 있어야 한다’며 대다수 마을 주민의 부정적 반응과 비협조적 태도로 어려움을 겪던 계촌 클래식 축제도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계촌 출신 주민으로 오랫동안 축제 활성화에 앞장서 온 주국창(63) 전 계촌 클래식 축제위원장은 “별 기대를 하지 않던 주민들도 점점 생각이 바뀌어 성공적인 축제가 되도록 한마음이 됐다. 평창군도 적극 지원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축제는 무더위와 비를 피해 5월26∼28일 개최된다.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이 이끄는 KBS 교향악단과 2007년 퀸 엘리자베스콩쿠르 우승자 안나 비니츠카야(피아니스트), 2021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 박재홍(〃),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우승자 조재혁(〃), 2023년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현악 사중주단 아레테 콰르텟, 계촌별빛오케스트라 등이 무대에 오른다. ‘한밤의 별빛콘서트’, ‘한낮의 파크콘서트’, ‘미드나잇콘서트’ 외에 석양으로 물드는 마을을 달리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계촌 선셋 런’,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이야기 나누는 ‘보고 읽는 그림책’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내년 10주년에는 더욱 성대한 축제의 장이 마련될 전망이다. 이동연 교수는 “지역 주민들도 ‘클래식 마을’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만큼 특화된 클래식 축제가 되도록 할 것”이라며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해외 클래식 마을과 자매결연도 맺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엔 축제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와 국내외 유명 음악가와 (자매결연을 맺은) 해외 클래식 마을 초청 등 1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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