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일본에 대한 '끝없는 혐오'와 작별할 시간

이상훈 기자 2023. 5. 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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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장
現정세 전략적 모호성 용납 안돼
北中과 맞서려면 日과 협력 절실
기시다 방한 셔틀외교 복원 계기
'日 무조건 반대' 인식서 벗어나야
[서울경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올 3월 윤 대통령의 방일 당시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카녜이 웨스트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논란이 많은 인물이지만 그의 음악적 성취는 이론의 여지가 없고 날카롭고 재기발랄한 지성도 그를 다시 보게 만든다. 그 자신이 흑인이면서 노예제도에 대한 교육을 폐지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한 인물이다.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흑인의 뿌리는 노예’라는 상습적 주입 탓에 상당수 흑인들이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고정관념과 흑백논리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흑인은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세간의 믿음을 깰 목적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뜬금없이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일본 때문이다.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으로 한일 간에 셔틀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 앞서 3월 방일한 윤석열 대통령이 ‘제3자 대위변제’를 통한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한 끝에 새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일본과의 모든 것을 피해자와 가해자 프레임으로만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 간에 전략적 모호성을 용납하지 않는 체제를 건 패권 다툼으로 안미경중(安美經中)이 아니라 안미경세(安美經世)로 바뀐 글로벌 정세,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불안 등으로 우리와 일본의 관계가 한층 밀착할 필요성이 커진 현실을 외면한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보다는 ‘최악의 굴욕 외교’에 집착하면서 4년 만에 어렵사리 마련된 화해 무드 흠집 내기에 혈안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특정 대상에 끊임없는 혐오나 상습적인 호감을 갖는 자체가 그 대상에 대한 노예 상태를 뜻한다. 그게 적개심의 노예든, 애착심의 노예든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미혹하게 만든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남긴 말이다. 윈스턴 처칠의 ‘과거와 현재가 다투면 미래를 잃는다’는 통찰은 너무 자주 인용돼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요원하기만 하다.

사실 일본만큼 한국인의 관념에서 이중적인 대상이 있을까 싶다. 일본은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즐기고 찾는 나라이면서도 ‘노(NO) 재팬’에서 보듯 식민 지배 역사와 얽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쉽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지 말라”고 수시로 압박했다. 국익을 이유로 ‘대만 문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게 낫다’는 논리지만 이들은 일본에 대해서 만큼은 손톱만큼의 균형 감각도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일 외교를 규탄하며 “자위대가 다시 이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을까 두렵다”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전체 역사를 훑으면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 해코지를 많이 했던 중국에는 ‘죽창’을 들자고 하지 않는다. 워싱턴의 통찰을 빌리면 이들은 일본에 대한 끊임없는 혐오라는 노예근성이 뼛속 깊이 자리했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과거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 민족 감정을 들쑤시는 게 기득권 유지에 낫다는 판단을 한 속물 정치인일 뿐이다.

현실 정치에서는 영원한 적(適)도, 아군도 없다. 이제 한국의 국력은 일본보다 못하지 않다. 피해자로서 한 서린 아픔을 가슴에 묻고 가해자를 품을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일이다.

더구나 북한·중국과 맞서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일본과 손잡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처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향유하는 국가다. 이건 북한 정권의 시조인 김일성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기도 하다. 김일성은 ‘갓끈론’을 통해 남한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갓끈에 유지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먼저 일본 갓끈만 잘라내도 갓이 머리에서 날아가듯 남한이 무너진다고 봤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이제는 일본을 불구대천의 원수에서 우리의 협력 파트너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제발 일본에 대한 노예근성을 버리자. 이제는 그럴 때도 됐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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