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전에 더 유명했던 ‘산티아고’… 야고보의 숨결이 묻은 와인 [김관웅의 도슨트 Wine]
"산티아고로 가라" 역사를 바꾼 교황의 교묘한 한마디
성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던 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세라 다 에스트렐라’ 짭쪼름한 맛·짜릿한 산도 일품
교황의 한마디, 결국 칠흑같던 중세의 흐름을 바꾸었다
1189년 교황의 이 한마디에 새천년을 맞은 중세 전체가 요동칩니다.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있다니…. '원죄'와 '참회'의 굴레에 갇혀 살던 중세 사람들에게 이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1095년 끌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십자군전쟁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외친 "신이 그 것을 원하신다(Deus lo vult)" 연설 못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산티아고로 순례자들이 몰려들면서 가톨릭 세계에서 이슬람 세계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인간 띠'가 생겨납니다.
1096년 시작된 십자군 원정이 이슬람을 향한 가톨릭 세계의 동남진이었다면, 이번엔 가톨릭의 서남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한 십자군 원정대와 달리 순례자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창 대신 지팡이와 성서를 들고 있는 게 달랐습니다. 하지만 동남쪽으로 간 전사들이나 서남쪽으로 향한 순례자 모두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신을 향한 간절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은 왜 산티아고로 가라고 했을까요. 가톨릭에는 3대 성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묻히고 부활한 예루살렘, 초대 교황 시몬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고 묻힌 로마, 그리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먼저 순교한 야고보(James, Jacobos, Iago)가 묻힌 산티아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성지는 예수님의 마지막 발자취가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너무도 멀리 있는데다 이슬람 세계에 있었습니다. 로마는 가톨릭의 본산으로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산티아고는 달랐습니다. 700년대 초 이슬람 세력에 정복당한 이슬람의 땅이었지만 가톨릭 세계는 1000년이 다 돼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나마도 북쪽 해안을 따라 띠처럼 길고 좁다랗게 이어진 땅 뿐이었습니다. 이런 길을 가는 것은 거의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성인을 뵙고 죄를 용서받겠다"는 열망으로 산티아고로 향했습니다. 이슬람 입장에서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순례객들에 대한 두려움도 느꼈을 겁니다. 교황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산티아고로 가라"는 교황의 계속된 칙령은 "다시는 우리의 성지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이슬람을 향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가톨릭의 또 다른 십자군 원정이었습니다.
당시 이슬람의 팽창은 대단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온 이슬람은 수십년도 지나지 않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중서부까지 쳐들어왔습니다. 만약 732년 카를 마르텔이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막아세우지 못했다면 유럽의 스카이라인은 하늘을 찌를듯 서있는 고딕 성당이 아니라 이슬람 사원의 둥근 지붕과 미나렛이 장식하고 있을 겁니다.
#2.산티아고는 교황의 교묘한 정치적 의도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사연도 있습니다. 산티아고를 상징하는 성인 야고보는 제베대오의 아들로 그의 동생 사도 요한과 함께 예수님이 가장 사랑한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했습니다. 오죽 다혈질이면 예수님이 '천둥의 아들들'이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서기 30년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야고보는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다 스페인으로 건너갑니다. 그러나 서기 44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가 유다왕 헤롯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잔인한 죽음을 맞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 옆에 방치됐던 그의 주검을 제자들이 수습해 돌로 만든 판에 뉘어 해변으로 옮기자, 천사들이 돌로 만든 배와 함께 나타났다고 합니다. 바다에 띄워진 이 배는 나중에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 리아스 바이사스(Rias Baixas) 해안을 거쳐 유야강(Rio Ulla)을 거슬러 들어와 파드론(Padron)에 당도합니다. 돌로 만든 배가 지중해를 횡단해 대서양을 거슬러 이베리아반도 끝자락까지 올라온 후 자신이 처음 포교를 시작했던, 죽어서 이 곳에 묻히고 싶다고 했던 파드론까지 흘러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시신은 조개껍데기(가리비)들에 쌓인 채 전혀 손상되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야고보의 제자들은 계시를 받아 시신을 이 곳에 묻습니다. 이후 무덤의 위치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700여년이 흐른 뒤 813년 홀연히 야고보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펠라요(Pelayo)라는 수사가 길을 걷던 중 유난히 반짝이는 밝은 별에 이끌려 리브레돈(Libredon) 들판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빛에 이끌려 동굴로 들어와 야고보의 관과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테오도리우스 주교는 이 무덤을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라 공포하면서 리브레돈 들판에 작은 성당을 세우고 '성 야고보(Saint Iago)가 있는 별들(Stella)의 들판(Compos)'이라는 뜻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부르게 됩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11세기까지만 해도 아주 작은 성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순례객이 쏟아져 들어와 13세기때부터 증축 공사를 시작해 지금의 모습은 17세기가 되서야 완성됩니다.
#3.산티아고는 오늘날 너무도 유명한 명소지만 1000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했습니다. 새천년의 상징이었습니다.
서기 1000년을 앞두고 중세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듭니다. 로마가 멸망하고 신앙이 인간을 억누르던 시기, 새로운 천년은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공포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이 1000년에 일어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1000년이 되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이 허탈해하면서 한편 안도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신이 인간에게 한 번 더 참회할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심판'이 '참회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중세 사람들은 천국에 가려면 죽기전에 일생동안 저지른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성지 순례는 가장 확실한 참회의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중세 세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순례객이 마을을 지나면서 지역간 길이 열리고, 상업 기능이 생기고, 마을이 커지면서 하나둘씩 도시가 형성됩니다.
교회도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낡고 오래된 교회를 허물고 교회를 다시 세우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걸작인 고딕 성당이 도시마다 들어서는 '대성당들의 시대'가 이 때부터 움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성당들의 높은 첨탑은 순례자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순례객과 상인들이 성당 주위로 몰려들면서 식당과 여관, 상점 등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유럽 도시에서 가장 번화가가 성당 주변인 이유입니다.
이렇듯 신에 의해 꽉 막혔던 혈이 신에 의해 다시 뚫리자 칠흑같던 중세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서유럽의 이런 역동적 변화는 나중에 르네상스의 에너지로 폭발하는 원천이 됩니다.
"신이 그 것을 원하신다", "산티아고를 순례하라"는 교황의 이 한 마디 말은 이렇듯 중세 흐름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4.중세 여행에서 돌아와 2000년 전 야고보의 시신이 지나던 그 곳에서 난 와인을 열어봅니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리아스 바이사스의 와인 '세라 다 에스트렐라(Serra da Estrela)'입니다. 리아스 바이사스는 해안선이 복잡한 우리나라 서해안을 특징짓는 말인 '리아스식 해안'의 어원입니다. 손가락처럼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인접한 이 곳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알바리뇨(Albarino, Alvarinho)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토착 품종입니다. 당시 성직자와 귀족만 즐기던 최상위급 와인입니다.
잔에 따라진 와인은 금빛이 살짝 더해진 레몬 껍질색을 띱니다. 잔에서는 흰꽃 향과 서양배 향, 레몬 껍질 향 등 다소 서늘한 느낌이 주를 이루며 패션푸르츠의 더운 향도 언뜻 스쳐갑니다. 이스트향과 트러플 향도 있습니다. 상당히 이색적인 조합입니다. 서늘한 기후의 향에 이스트 향과 트러플 향이라니다.
와인을 입에 넣어보면 깜짝 놀랍니다. 짭쪼름한 맛이 먼저 느껴지고 혀를 베일듯한 짜릿한 산도에 정말 깜짝 놀랍니다. 레몬, 서양배 등의 과실향과 고급스런 비오니에(Viognier), 마르산(Marsanne), 루싼(Rousanne) 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강력한 짠맛과 신맛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입니다. 질감도 아주 가볍고 당도는 아예 없습니다. 와인이 그냥 바스락거립니다. 더 재밌는 것은 짠맛과 신맛이 시간이 지날수록, 온도가 높아질수록 더 강해진다는 겁니다.
고산지대에서 만든 와인은 산도가 아주 좋습니다. 또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자란 포도는 짠 맛이 있습니다. 해안의 염분이 바람에 밀려와 포도 껍질에 달라붙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의 숨결이 묻어있는 세라 다 에스트렐라 와인은 호불호가 분명한 와인입니다. 신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들 정도입니다. 반면 샴페인을 즐기는 미식가들은 굉장히 좋아할 만 합니다. 3만원 안팎에 구할 수 있는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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