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있는 유치원, 좋지 않나요" 이경주 국립재활원 여성재활과장
"정해진 방 안에서 정해진 놀이하는 인위적인 분위기 아이에게 좋지 않듯…여성 행복한 임신·출산엔 과한 태교 불필요"
저출산엔 거창한 정책보다 "애 낳은 것 잘한 일" 말해야
"정원이 있는 유치원, 자연이 있는 유치원이 아이들에게는 최적이라고 생각해 정원에서 애들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난해보였나 보더라. 이런 인식이 있다보니 그때는 솔직히 마음이 불편했다."
국립재활원에서 장애를 가진 여성들의 출산이나 부인과 진료를 맡고 있는 이경주(55) 국립재활원 여성재활과장은 아이들이 자연을 접하면서 노는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요즘 한국의 아이들이 정해진 방 안에서 놀이를 하는 인위적인 분위기를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없던 병도 생기고 우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에서 자연스러운 활동이 일종의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산모들과 아이에게 좋다고 하는 과한 태교보다는 "하던대로 하라"고 조언한다. 산모가 아이에게 잘하겠다고 생각하고 신경쓰기 시작하면 쉬운 일도 복잡해지고, 억지로 하는 것들이 늘어가면서 본인은 물론 주변까지 스트레스 단계가 높아져 행복보다는 예민한 감정만 커진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차병원에서 11년간 근무하며 5000명이 넘는 아기를 받았으며, 미즈나래라는 병원의 원장도 지낸 의사다. 현재는 국립재활원 소속의 공무원이다. 특이 이력이다. 공무원 신분으로 과거 의사 시절보다 급여도 적지만 다른 곳에 없는 '여성 재활'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이곳으로 왔다. 산모를 보다보면 산모의 남편은 물론 가족과 친구도 오가면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의사는 산모의 주변까지 더 넓은 영역을 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치료 외에 '치유'의 영역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여성재활'이어서 이 과를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사람들이 애를 낳는 때 진료실에 가족이 따라오고, 나중에는 친구도 데려온다. 어디 사나 등 환경까지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이런 환자들의 환경을 중요시 여겨 보건학도 공부했다. 의학 박사 외에 보건학 박사 학위도 보유한 까닭이다. 그는 미국 병원에서 통합의학도 익힌 '치유 전문가'다. 그는 평생 '여성의 행복한 임신과 출산문화 정착'이라는 주제를 연구해왔고 이제는 영역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이 과장은 "산부인과는 모든 의학이라는 과를 통틀어 아프지 않은 사람을 보는 과이고, 일상 생활을 이야기하는 과이고, 약을 쓰지 않는 과이고, 새 생명을 볼 수 있는 과"라면서 "여성 산모를 보는게 아니라 그의 주변 상태를 보고 환경과 연결하고 관리하며 모델을 만들고 해야하는데, 한국은 의사가 하나의 기계처럼 돼서 이런 접근이 쉽지 않다. 하지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장이 치료의 개념을 넘어 통합의학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것은 미국 유학 시절 시스템이 영향을 줬다. 그는 하버드 조슬린 당뇨센터에서 산과 (내분비)를 공부했는데, 미국에서는 산모와 함께 환경까지 감안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마침 고려대학교가 통합의학을 다루고 있어 고려대에서 계속 공부를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경제 수준이 향상되면서 태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태교 여행을 다니는 등 자원의 투입은 많아졌지만 그렇게 간 태교여행이 아이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등 체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일 예로 이 과장이 처음 통합의학을 국내에서 연구할 당시 산림청으로부터 맡았던 첫 과제도 서울숲과 경기도 양평에 있는 산림지 치유숲중 어느 쪽이 산림치유 효과가 있느냐에 관한 실험이었다. 그는 지금도 추가연구를 통해 숲 등을 활용하는 산림치유, 해조류·물고기·광물 등을 활용하는 해양 치유에 주목하고 있고 최근 논문을 준비중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삶의질을 넓게 보다보니, 일각에선 이 교수를 의사로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내가 의사라는 직함을 달고 의사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산림·해양을 말하고 농업·정원을 말하고 있으니 의사들은 괴짜로 보는 분들도 있고, 상대 파트에서도 자기 분야를 건드린다며 희한하게 보고 경계를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면서 "이제는 모든 것을 융합하는 융합학문의 시대인데도 막상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거부하는 문화가 우리 안에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컨셉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거부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단순 온천보다는 '메디컬 스파'를 열고 치유 프로그램을 병행하면 고부가가치 창출도 가능한 것처럼 앞으로 연구할 부분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지금은 여성재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직장 웰니스'가 궁극적 목표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당면한 국가 현안인 '저임신·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거창한 정책 설계보다는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고, 일반 사람들이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이 과장은 "(사회적인 문화나 분위기부터)사람들이 인생에 제일 잘 한게 애 낳은거라고 주변에 자꾸 말해줘야 한다"면서 "대부분 보면 '왜 이렇게 (아이들을)어렵게 키우지' 싶은데, 좋은 것들을 보여주고 이야기는 짧게 하는게 좋지 '부모를 힘겹게 하는 아이들 가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유익하긴 하겠지만 애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그와 별개로 모자보건학회, 한국여자의사회 등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혼모 문제도 많고, 고아원에서도 아이들이 나오면서 사회에 정착하는 19세~22세까지 여러 문제가 생기는데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나의 영역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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